비가 내린다.
이런 날은 시간을 종잡을 수가 없다.
아침일찍 기차소리 알람이 울려줘야 하는데 창문에 아주 가끔씩 비가
부딪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겨울비는 날씨답지 않게 얌전하다.
마음울쩍 한 날이 되려나?
종일토록 비가 내리면 분위기 잘 타는 나는 싱숭생숭 할 것이다.
"여보, 10분이야 출근준비 해 줘"
"아니 벌써 10분이라고? 큰일났네 언제 준비다하냐?"
"뭐 천천히 하면 되지"
"천천히 하면 회사 안 가겠단 소리?"
"밖에는 촉촉히 비가 내리고 이런 날 회사 가기 싫다 그냥 우산 쓰고 거리를
쏘다니던 그 때가 생각나네 마음이 울쩍한 날 거리를 쏘다는 게 제일좋은데
그렇제? 각시야 우리 오늘 회사 빼 먹고 데이트나 갈까?
너긋하게 누워서 딩굴다가 ..."
"하긴 회사 가기 싫겠지 나는 회사도 안가는데 혼자가고 날씨까지 이러니..."
평소대로 떡국을 끓이고 옷과 양말을 챙기고 물을 데우고
남편은 떡국을 먹고
"아니 5시15분밖에 안 되었네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괜히 설쳐댔잖아"
"그래 근데 왜 일찍 깨웠어 ?"
"아까 내가10분이라고만 했지 6시10분이란 말 안했어"
"기차소리는 ~"
"웬걸 기차소리는 못들었는데 ..."
"시간은 넉넉하고 잠은 깨고"
"에이 아까 꿈궜는데"
"무슨 꿈?"
"응 우리동네 만이아저씨가 하늘나라 간 꿈 참 안되었어 막 울고 있는데
자기가 깨웠단 말이야"
"왜 만이아저씨 죽는 게 그리 슬펐어?"
"응 그 아저씨 얼마나 착하고 불쌍했는데 알잖아 현숙이하고 양숙이,주원이
세 아이들 두고 일찍 아내가 죽었잖아 암으로 내가 국민학교5학년때
죽었으니 아이들이 어려서 막내 주원이는 그 때 겨우두살이었지
그 날 상여가 나가는데 동네사람들이 더 많이 울었어
그 집 사정이 하도 딱해서 ...세월은 참 잘도 흘렀어
사는 사람은 어찌해도 살게 되어 있다는 말이 맞아 만이아저씨 내가 고등학교3학년말엔가 돌아가셨어 아내가 없는 사람은 일찍 돌아가신다는 말이 맞는지
그 아저씨 꿈을 꾸었어 "
"그 아저씨 니 연애편지 배달 많이 해줬제"
"우리 아버지가 심하게 단속하니 그랬지 연애편지는? 위문편지지 ㅎㅎ"
밖에는 비가 느긋하게 내리고 ...
"칙칙폭폭 "
알람소리가 나고
"아이들 공부 좀 제대로 시키고 겨울방학을 제대로 잘 보내야 일년이 수월한거
알제 특히 귀염이 이젠 고등학교 진학하는데 잘해야지 원하는 대학도 가고"
"잘 알겠습니다 걱정말고 다녀오세요"
"가나도 올 겨울이 중요하고, 범일이도 이제 6학년이면 예비중학생이다.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는건 엄마가 잘 해야 하는 것 잘 보살펴 문제 생기면 빨리 이야기하고 "
다른날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니 별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일찍 일어난 새가 모이를 많이 주워먹는다고?
남편이 출근하고 촉촉한 비를 손바닥에 받아 보며 기름 냄새 나는
신문을 빼어 들고 종종 걸음으로 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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