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사진

그리운 사람들

이바구아지매 2008. 1. 17. 19:01

 

 

외할머니 회갑이다.

외할머니는 회갑상 중앙에 앉으시고 왼편엔 고등학생인 장손이 앉았다.

예쁜 우리 엄마는 오른쪽 끝에 서셨고  이모는  왼쪽끝에  꿇어앉았다.

 

멋진 외삼촌들이 서 계시고 아버지는 맨 뒷쪽에 서서 고개를 쭉 빼고 계신다.

아무리 봐도 외삼촌들은 잘 생기셨다.

정말이다. 배우처럼 잘 생긴 외삼촌들 , 게다가 공부까지 많이 하고 좋은 직장에 근무하고 계셨으니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아 우리 외숙모를 속타게 한 둘째외삼촌(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두루마기 입은 훤출한 남자)은 아버지랑 동기동창으로  학창시절의 라이벌관계

 

언젠가 우리집에서 술상을 앞에 놓고 두 친구가  오가는 말

"니캉 내캉 우째 처남매제지간이 되었노?"

외삼촌이 그러셨다.

"니 우리 이금이한테 잘해라  우리 이금이 니 주기 아까웠다 하하하"

라고 농담하며 술잔을 주고 받으시던 외삼촌도 돌아가셨다.

 

 

나는 외할머니를 살아계실때 본 적이 없다.

골골 아프시다가 돌아가셨단다.

 

내가 어린시절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외가, 나한테 외할머니 같았던

큰외숙모의 넉넉한 보살핌...잊지 않고 가슴에 품고 산다.

 

까만 양복을 입은 세째외삼촌은  교장선생님,옆에 서신 분이 큰외숙모

큰외숙모는 마음이 넓고 후덕하여 아랫사람들을 잘 챙기고  인정이 많아

살기 어려운 이웃들에게까지 덕을 베풀었다.

 그래서 그런지  외갓집 둘째 오빠는 훌륭한 교수님이 되셨다.

우리나라 민물고기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연구 활동하시고 계신다.

 

 오빠는 방학 때 고향에 오면  우리들의  손톱밑의 때를  시시콜콜

어찌나 검사를 하는지 겨울에도 손을 깨끗하게 씻지 않으면 외숙모가 맛있게 비벼 주는 콩나물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미군부대 통역원으로 근무하던 막내외삼촌, 나랑 동갑인  아들

영신이는 외사촌으로 배우같이 생긴 꽃미남었다.  영신이가  내게 

   들려주던 서울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재미있었다.(혹시 나 모른다고 거짓말을 둘러 댄 것은 아니었는지?)

 

방학 때 서울에서 내려 오면 서울이야기를 듣느라고 밤을 새기도 하고

내가 중학교에 다닐때 서울아이들은 AFKN 방송을 보고, 듣고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하였다. 흑백TV 가 방송되던 시절에

우아 대단하다 서울아이들 ...나도 중학교에  다닐 때 영어가 좀 재미있었다

ㅎㅎ 그 땐 참 쉽다는 생각도 했고 열심히 하여 유학도 갈거라는 엉뚱발랄한  생각도 했다.

 

2학년이 되어 갈 무렵부터 영어가 점차 어려워지기 시작하자 나는

 미국에 유학가는 것을 포기했다.

"영어야, 본국으로 돌아가라"

이렇게  나는 단순 무식한 계집아이였다.

ㅎㅎ 사진속에 없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꾸역꾸역 나온다.

그 때 서울아이들은 영어듣기도 열심히 한다는 별난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에  써 먹으려고  그랬을까? 거제도에 살고 있던 나는 참으로

우물안 개구리였다.

 

갑자기 그런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가 살아난다.

꽃이  많고 감나무가 가득했던 그리운 외가 지금은 다 서울,부산 혹은

외국으로 떠났다.

 

이렇게 사진 한장만  달랑 남긴 채...

 

 

 

 ** 50년은  훨씬 넘은 사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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