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연탄불도 가끔은 그립다.

이바구아지매 2008. 1. 21. 12:23

 

 

 

벌써 사흘째 비가 내린다.

세탁기 속의 빨래가 갈 곳을 잃었다. 가족이 많아서 세탁물이

날마다 가득이니 늘어 둘 공간도 이미 부족하다

에이 날씨 한번 고약하다

아무리 내가 비를 좋아한다고 겨울비가 달아서 3일째면 좋아할

유효기간도 이미 지났다.

꾸역꾸역 빨랫대에 포개 널었다.

회색하늘 한 번 올려다 보고

비가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다?

 이게 눈이였으면 멋이라도 날텐데...

 

셋째가 영어학원에 간다고 가방을 메고

현관 문을 드르륵 열면서

우산을 펴 든다

"엄마, 비 와요?"

"지금 너 우산을 펴면서 왜 펴는지 몰라?"

"그냥 비 오는지 물어봤어요"

"그래 저게 비가 아니고 눈인가?"

"아니요 비 맞아요 "

며칠째 비가 오니 귀염이도 얼이 빠졌나?

허무개그란 것인가?

 

난 다시

앨범을 뒤졌다.

오늘 일기내용에 맞을만한

분위기를 찾아 본다.

그?게 많은 사진속에서 이 날씨에 맞는 분위기는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말쏘냐

이럴 땐 억지로 까어 맞추어야지

 

"골목길 아이들"

ㅎㅎ 다섯악동들이  모델이 되어 주었던 이 사진

가난했지만 행복일기를 가득 썼던  그 주인공들,

안암동 골목길 아이들

이 사진은 90년 5월5일에 찍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가 안암동에 이사를 갔던

89년에  안암동의 첫 인상은 한 마디로 깜짝 놀라운 풍경이었다.

이 사진에서의 골목길 풍경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깜짝 놀랄만한 잊혀지지 않는 풍경엔 이런 것들이 있었다.

연탄아궁이의 모습

무슨 고래구녕 같은 곳에 연탄을 넣고 둥글면서 옴싹 싸이며

불기운이 고래구녕으로 들어가는 연탄넣는 곳

그기에 코끼리코를 닮은 쇠연탄뚜껑

"아니 이게 무슨 방식이냐? 듣도 보도 못한 이곳에

내가 이살 오다니?"

바로 이웃에는 박목월 시인의 아드님

박동규교수님의 댁이었다.

나는 시를 잘 모르는데

"꽃은 피누나, 4월의  꽃..."

그래봤자 난 하나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고...

 

"6,25때 만든 부엌 아궁이야

이 마을엔 대부분 이렇다니깐?

새댁이 이런 모양 처음보나보네"

 

앗 이 난처함

, 내가 피난을 왔나? 

 

6,25가 발발한지 몇십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선 6,25이야기며 안암골 호랑이가

어쩌고저쩌고...

그런 곳에 이사를 갔던 것이다.

정말 정이 안 들었던 낯설고 어색했던 그 기분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 된다 하였지

 

이 사진은 날마다 우리집에 와서 새벽부터 밤까지 날 괴롭히며 붙어

살던 안암동 악동들이다.

고려대학교 이공대 후문의 벽이기도 한 이곳

아이들의 뒤에 연탄재가 몇 개 버려져 있다.

저 때만 해도 연탄재며 음식쓰레기

를 내 놓으면 차가 와서 담아갔다.

내가 몇년동안 살았던 안암동

고려대학교 와 이웃하여 살던 그 때

우리집으로 날아드는 노란 단풍잎이

펼쳐주던  만추의 풍경

 

가을이면 노란 단풍으로 물든 잎새들이

그리는 풍경은 말할 수 없는 정다움이었다.

학교랑  붙은 담덕택에 계단위로 올라가서 학교로 뛰어 내려가서

캠퍼스에서 4계절을 고스란히 느껴보았다  

어느 계절에도 꽃이 가득하였지만

특히 노란 단풍이 하늘을 가리던 가을의 그 모습은 내 감성을

충분히 흔들었고

겨울의 눈은 거제도,부산에서 느껴보지 못한

설국의 이국적인 풍경을 기쁨으로  남겨 주어서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계절과

나를 따르던 많은 골목길의

아이들이 있어

 세월을 많이 흐르고 보니

제법 괜찮은 그림이 된다.

이젠 그  아이들도 다

자라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나이는 스물 몇살씩은 되었겠다.

 

아이들의 아버지,엄마는 동대문 시장에서 신발가게를 하거나

구두공장을 하기도 하고, 식당집 아이도 있었고...

아침에 아이들이 나가서 저녁때까지 오지 않아도 별로 찾지

않던  아이들

우리집은 그런 아이들의 열린놀이터였다.

 

지금도 나는 아이들의 그늘을 못 헤어났다.

방에 놀러 온 아이들로 가득하다.

추적거리며 비가 내리는데도...

 

 

서울 갔다 온 이야기, 스키를 타고 왔다는 이야기, 미국에 다녀온

기상천외한 이야기.등 온갖  이야기로

범일이와 가나의 호기심을 끌어낸다.

 

비가 내리는 어느 겨울에

골목길의 악동이나

우리집에 놀러 온 아이들이나 세월만 흘렀을 뿐

똑 같이 온 종일을 놀고 싶은 아이들이다.

이 비 그치면 더 깊은 겨울이 될까?

 

오늘같은 축축한 날은 연탄불이  살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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