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댄 싱 퀸

이바구아지매 2008. 1. 19. 16:39

 

오랫만에  어머니댁에 갔다.

마당에 들어서니  열린 정지문 사이로 톡톡 나무타는 소리가 나고

연기가 굴뚝으로 뭉개뭉개 피어올랐다.

"어머니, 계세요?"

마루밑에 곱게 벗어 섬돌위에 얹어 놓은 하얀 고무신 한켤레 구두 두켤레가

마루밑에서  가지런했다.

배가 땡땡하게 부른 고양이가 산달이 다 되었는지  뒤뚱거리며 갈갈 소리내며

양지녘에 살짝 엎드리며 눈이 게슴츠레해지는 모습을 보며 한 번 더

소리질러 불러 보니

"누가 왔나?"

하고 창호지문이 열렸다.

TV소리가 높아서 내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나 보다.

열린 문사이로 벽에서 긴 벽시계가 뎅뎅 거리며 시계추가 느릿느릿하지만

일정하게 바늘이 왔다갔다 하고 벽윗쪽 사진틀에는 어여쁜 '댄싱퀸' 들이

활짝 핀 꽃처럼 고운 모습으로 사진 찍어서  꽂아 놓은 액자가 내려다 보였다.

얼른 장작 가득 땐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지금 뭐하세요?"

"내나 생선 쪘다 저 아래 순경집에 저거어무이 생신이라고 명태하고

가자미  저게 활활 붙는 장작불에 쪄 달라안캤나 맛있겄다고 ..."

온 방안은 생선 비린내로 가득하고 발 디딜틈없이 찐 생선들이 하얀 통깨와

실고추로 몸단장을 하고 생신잔치집에 갈 채비를 다 마쳐가는 시간에 내가 들이닥친 셈이었다.

특별히 내가 어머니를 도와 드릴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럴 때 참 심심하다 할일없이 눈은 사방을 훑다가 아까 마당에서부터

눈에 들어 온 직사각형의 사진틀 속의 예쁜'댄싱퀸' 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어무이예, 이 때가 어무이가 몇살이었지예? 참 귀엽게 생겼다

맨 뒤오른쪽  늘씬한 미인은  정혜언니 엄마고  아이는 태희

앞쪽 줄 오른쪽 끝에는

덕순이엄마 ㅎㅎ 참 예쁘다. 그 옆에는 평석이 엄마 ,그리고 그 옆에 까만 치마

흰저고리의 귀여운 언니는 연광이(우리 시어머니)엄마 ㅎㅎ 다 예쁘다. 저렇게 이쁠때가 있었구나 "

"지금 뭐 하노 다 늙어빠진 늙은이들 아이가"

"사진속에는 이제 스물 한두어살 되겠는데예 ?"

"하모 그때사 나이가 얼마되었나 나사 열일곱에 시집왔고 그 때가  스물넷이나

되었는갑다  앞이마가 톡 볼가져서  참 못생겼제"

'아니라예 어무이처럼 생기면 귀엽고 깜찍하고 예쁜 미인입니다 얼굴도 자그마하고 둥글넙적하면 못생긴겁니다."

"우리 그때만 해도 나처럼 생기면  인물도 아인기라  얼굴은 퉁퉁하고 손도 퉁퉁하고 엉덩이는 둥글넙적해야 아도 순풍순풍 잘 놓고 일도 잘하고 그란다캤제

나처럼 작고 몽돌몽돌한 인물은 인물이 아인기라  참말로 우습제"

"참 이쁩니다 다 어디서 이동네로 시집왔지예? 친목계일동이라 적어 놨는데예"

"평석이 엄마는 연사에서 시집오고 ,정혜네는 명동에서 시집오고, 나는

아주배골에서 시집오고 , 덕순이 엄마는 방깨에서 시집왔는기라.

영혜네는 장승포에서 시집오고  헌주네는 덕포에서 시집오고 ... 다 산다고 욕 봤는기라 "

"ㅎㅎ 그러고 보니 다들 동네 대표로 뽑혀서 송정으로 시집왔네예"

"그렇다고 봐야제 총각들한테 뽑히가 시집왔으니 그렇네  아이구야 그러고보니

우리는 스타들이네 맞제 하하하"

"예 맞아예 스타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름을 붙였는기라예

댄싱퀸이라고예

"그기 무신소리고 내사 모리것다"

"낼모레 어머니 우리집에 오시면 요걸 가지고 댄싱퀸에 맞추어 멋진 편집을 해 놓을게요 와서 보세요 이쁜 여인들 ㅎㅎ"

 

그리고 사진이 이렇게 출장을 왔다.

지금은 연세들이 지긋하여 일흔을 넘으신 우리들의 어머니 

댄싱퀸  그분들에게 이 노래를 받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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