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목 로 주 점

이바구아지매 2008. 1. 16. 09:41

 

 

 
이런저런 볼 일로 시내로 나갔다.
불과 두 달전에 새로 구입한 핸폰이 그냥 먹통이 되는바람에 삼성전자에 가서
A/S를  받았다. 요즘은 사실 내 핸폰은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
남편 몰래 살짝 누구랑 돈 거래를 해서 독촉할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편 몰래 살짝 마음이 가서 전화번호를 주고 받은 적도 없으니
전화가 거의 무용지물이다.
그런것이 너무 안 써서 그런가 자동으로 먹통이 되더니 내 발걸름을 하게 했다.
오랫만에 시내에 이틀째 나왔다.
바다는 시퍼런색이 잔잔한 물결에 '세월따라바람따라' 쾌속선을  부산으로
출발시키고 삼성조선 앞 바다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석유시추선 비스무리한
 준설선( 퇴적물을 치워주는 일을 하는 )이  떠 있다.
사람들은 포켓에 손 넣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떨어진 돈도 없는데 땅만 보고 가는 사람과 어깨동무하여  내 앞에 바람을 살짝 놓고 가는 멋쟁이 여대생들...
참 예쁘다. 누구집 딸들인지?
나도 저럴때가  있었나?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으로 찾아오라던~"
아  참 들려오는 노래가 좋구나 그런데 이 노래가 어디서 흘러나오나?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내 발길은 또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노래의 근원지를 찾아서...
"어허라 품바가 잘도 논다"
바닷가에 그것도 한 겨울에 각설이가 찾아들었다.
품바타령을 내 지르며 풍물시장이 하얀 천막을 볼록볼록 쳐 놓고 안에는 없는 게 없다. 사냥꾼의 총을 흉내 내어 만든  총도 있고...한 번 쏘아 보고도 싶었지만 혼자니 쑥쓰럽고...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바베큐틀에서 빙빙 돌아가고
무엇이든 천원이면 살 수 있다는 천원짜리(만물상) 그기는 없는 게 없었다.
그런데 물건들이 다 촌스럽다. 살짝 한물간  무엇이든 그랬다.
물건이 그러니 사람들도 어디 창고에 한 동안 틀어 박혀서  
세월을 죽이다가  나온 사람들마냥
느낌이 그렇다.  그래도 눈이 머무는 곳 습관처럼 노트를 몇 권이나 샀다.
책도 별별 책들이 다 있다.
'노인과 바다 ' 노벨상을 받은 헤밍웨이의 걸작선도 3000원밖에 안 한다.
덥석 한 권  집어 들어 사고, 가나가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별 이야기가 가득한 책 한권도 3000원에 사고
땅콩 호두빵 2000원어치를 사고 돌아가려니
"그래 그렇게  부딪쳐보자. 가장 멋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목로주점이 또 흘러나온다.
갑자기 기억속의 내 친구가 눈 앞에 다가와선다
"오랫만이다 나야, 박정희... 목로주점의 박정희 ㅎㅎ"
그래 정희가 좋아한 노래였구나  ㅎㅎ 넌 박정희 대통령이었지
참 수수하고 밝은 친구였는데 게다가  친구는 씩씩한 체육선생님이었다.
시집가기전 하루를 우리집에서 밤새도록 목로주점을 불러댔다
정희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불렀던 그 노래가   정희랑 함께 내 앞에
선다.
ㅎㅎ 가시내 잘 살겠지. 아이들은 다 컸겠지? 
와인보다는 텁텁한 막걸리로 목로주점에서 술잔을 부딪는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리는 친구, 쌀쌀한 날씨에 노래 한 곡이 따뜻했던 골방속 같은 그리움 하나를
끌어 내 준다. 이제 집으로 간다. 어울릴듯 안 어울릴듯한 목로주점을 자꾸 틀어주는 각설이반주단 ...아마 그 중 누군가가 목로주점 노래를 무지 좋아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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