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거위의 꿈

이바구아지매 2008. 1. 12. 16:21

 

 

   

 

 

 

오랫만에 도서관에 들렀다.

열람실의 문을 밀고 들어서려니  문안쪽에서 잘 생긴 남학생이 금방 문을 열어주면서 인사를 꾸벅 했다.

"누구지?"

"선생님, 저 성윤입니다 이 성윤  거제외국어학원 선생님 !!!"

"어 그래 성윤이 오랫만이다. 도서관에 왔구나  참  너 어디사냐?"

"옥명아파트요 "

'아버님, 동생 다 잘 있지 야 너 몇년만이지 기억력 참 좋다.

날 다 기억 해 주고 ..."

"귀염이는 잘 있겠죠 ?"

"칫 자식 귀염이랑 한 학년이었지 "

"저도 해성중학교 귀염이랑 함께 졸업해요 "

"많이 컸네 고등학교는 어디로 진학하냐 대학에 가선 무얼 전공할거냐?"

"00학교에 가구요. 미대에 갈려구요."
"아빤 회사 잘 다니시고? 결혼은?"

"했어요 새어머니 참 좋은분이에요  잘해주세요"

"그래 열심히 공부 해 새어머니 말씀도 잘 듣고  그래야 하늘나라 가신 엄마도

기뻐하실거야"

 

이렇게 몇 년만에 만난 반가운 아이 성윤이 우연히 도서관에 갔다가 가끔씩

궁금해하던 성윤이네 가족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성윤이 말을 들으면 참 잘 된 것 같다.

'그래 잘 살아야지 세상에 엄마 없다고 못살거나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되지'

오랫만에 보는 성윤이의 키는 몰라보게 자라있어 인사를 하지 않았으면 몰라볼뻔 했다. 다행이다 새 엄마가 잘 해 주신다니  그렇겠지 내가 아는 성윤이는

새엄마의 사랑도 흠뻑 받을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십년동안 난 학원을 했었다.

'거제외국어학원'이라고   남편이 고시공부를 그만둘즈음 우리에겐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외국어학원이었다.

난 영어실력은  형편 없었지만 상담하나는 정말 잘 했다.(ㅎㅎ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하다니...)

그래서인지 아이들도,어른들도 학원에 와서 나를 찾는것이 제일먼저 하는 일이었다. 학원이란건 학교보다 더 복잡미묘한 부분이 있어서 많은 상담이 필요하다 전화상담이든 직접 마주하던  마음을 이끌어내는 상담이 잘 되어야

학원을 믿고 맡겼다. 학부모들은 그러니 학원하는 사람들은 이중삼중 부담을 늘 안게 된다. 수업내용과 만족도 그리고 평가한 결과  학원비, 상담결과, 선생의 실력 또 한가지를 더보탠다면 서비스차원 아 또 한가지 빠질 수 없는 것은 분위기 ...

 

내가 성윤이를 만난 것은 그 애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이었다.

그 애가 우리학원에 엄마랑 찾아 왔었다. 엄마는 단발머리에 모자를 썼던

아주 깔끔한 느낌을 주는  첫인상이었다.

 

나한테 상담을 하고 난 후 등록을 하면서 

"선생님, 우리 성윤이 꼭 부탁할게요 꼭요 저는 말만 엄마지 엄마도 아닙니다.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엄마라구요 꼭 부탁할게요"

그리고 눈시울을 붉히다가 돌아갔다.

 

다음날부터 학원 문이 열리면 수업시작과 무관하게 일찍 오는 성윤이는

강의실에 가방을 던지다시피 두고는 아파트앞 놀이터로 달려갔고

성윤이가 지나간 자리엔 제대로 되어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개구장이었다.

선생님들은 성윤이가 학원에 있는 한 학생 떨어지겠다고 걱정을 하면서

그냥 내 보내는 게 좋겠다고  하였다.

말이 쉽지 학교에도 모범생만 있는게 아니듯 학원도 마찬가지였다.

환영을 못 받는 성윤이 

"조금만 더  지켜봅시다 제가 타일러볼게요"

하지만 성격이 별난 아이가 어른도 고치기 힘든 별난 성격이 하루아침에

바뀌어지나?

몇 번 데려다가 타일러 보아도 별 달라지지 않고 여전히 아이들이 별난 성윤이땜에 학원을 끊겠다고 하고 실제로 몇몇은 성윤이를 핑계대며 학원을 그만두기도 했다.

 

그 날도 강의실에 가서 책상을 정리하다가 성윤이 가방이 책상끝에 걸쳐져 있다가 와르르 쏟아졌다. 

그리고 오똑 얹힌 한권의 노트는 일기장으로 별나기만 한 성윤이가 일기는 제대로 쓸까? 하고 궁금해져서 훔쳐보면 안되지만 성윤이의 마음을 알기 위해선

꼭 읽어보는 게 좋을 듯 했다. 그렇다고 별 기대는 안했지만

 

"0월0일 날씨 맑음

오늘은 엄마가  서울 병원에서 돌아오시는 날이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갔다가 공부를 마치고 학원차를 타고 집앞에서 내렸다.

현관 문을 열자마자 "웩 윽 윽 "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쫓아 들어갔다.

엄마는 벌써 거실 바닥에 토를 가득하고 힘이 없어 벽에 기대어서 한 손에는 쓰레받기와 걸레를 함께 쥐고  많이 힘들어서 어쩔줄 몰라 하셨다.

"엄마, 내가 치울건데 왜그래 엄마는 방에 가서 누워 있어

성윤이가 다 한다구 엄마 이러는거 싫어"

"성윤아, 미안해 엄마는 늘 이모양이지"

"다음부터는 절대로 아무것도 하지 마 가만히 누워만 있어

밥도 하고 김치찌게도 하고 라면도 다 끓일 줄 안단말이야"

라며 나는 악을 바락바락 쳤다.

엄마는 미안했는지 설그머니 쓰레받기와 걸레를 기대놓고 방에 들어가셨다.

서울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오면 엄마는 토를 엄청나게 하신다.

그래도 나는 엄마의 토는 냄새도 안 나고 치우는것도 좋다.

왜 그럴까? 그건 당연히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머리도 하나 없어서 가발을 쓰고 다닌다

방사선 치료를 많이 받아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토를 하던 똥을 싸던 오래만 살아 있어 주면 좋겠다.

 

 일기를 읽고 난 훌쩍거리며 울었다.

그리고 선생님들게도 부탁했다.

 성윤이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 애는 어른보다 나은 아이라고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고 한번

더 안아주라고  선생님들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성윤이를 불러서

일기장을 본 것을  이야기하고 엄마가  살아계시는 동안

  말잘듣고, 멋진 아들이 되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고 착한 어린이가

 되는 것이라고  당부하였다.

 

그렇게 2년을 우리 학원에서 공부한 아이 물론 성윤이 엄마는 몇 달 뒤에

죽어서 화장을 했고 나는 불쌍한 성윤이랑 동생 성민이를 아버지가 퇴근 할 시간까지 돌보아주는 일을 자청했다.

그래봐야, 학교에서 내 준 숙제며 피아노학원 보내기 등과  학교에 가져 갈 준비물 챙겨주기 숙제 함께 도와주기 등이 고작이었다.

 

성윤이 아빠는 늘 내게 미안해 했고 어느 날 이사를 갔다.

뇌종양으로 고생만 하고 빗만 잔뜩 남겨 놓고  안타깝게 떠난 엄마.

 

"나 같은 사람은 죽으면 지옥갈겁니다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잘해 준 게 없어요

선생님 ,성윤이아빠한테도 너무 미안하고..."

"그렇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엄마는 아무래도 좋아요. 그냥 곁에 있어주기만

하면 돼요"

할 말이 없어 그렇게 말해 준  나, 그 말이  귀에 쟁쟁하다

 

 오늘  우연히  성윤이를  다시 만났다.

많이 의젓하고 착하다 옛날 개구장이 모습은 하나도 없으니...

 흐뭇하다  이제 그림쟁이가 되고 싶다는 성윤이의 꿈이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참 기분 좋은 날이다. 도서관에 가면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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