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뱃길...

우리들의 푸르른 날

이바구아지매 2008. 1. 31. 22:23

 

 

 

 3학년 1반 교실에선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나?

 

그 날 아침 우리는  통학버스에서 내려 학교 운동장으로 우루루

쏟아져 들어갔다.

황토색 운동장은 아무도 밟지 않아 아침이슬이 내려앉아 먼지도

잠자는 운동장은 정말로 얌전하게 누워 있었다.

 

우리교실은 동쪽으로  걸어가서 히말라야싯다

나무가 쭈욱 일렬로  늘어 선 스탠드 뒷쪽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아침이슬은  히말라야싯다 나무에서 보석처럼 빛났다.

 

"배가 출출한데 우리 교실에 가서 도시락부터 까 먹자"

"당근이지 우리가 학교에 오는 즐거움이 뭐겠노 당근 도시락부터

까 치우는거 아니가?"

하고 경진이와 문지가 후다닥 달리며 쫑알댔다.

"저것들 저래가 시집은 우째가겠노 나는 저런 왈가닥들 절대로 안 데려

간다"

"몽아, 누가 니한테 시집 간다고 목을 맸나 걱정 붙들어매라 니 아이라도 나 좋다는 사람  한 트럭도 더 된다 "

하고 교실로 달려가면서  운동장 가득 고함을  남기고 달려가던  문지가

"나 배안에서 밥 달라고 꼬르륵 소리를 낸다  경진아 , 니 배속엔 거지가

밥 달라고 손 안내미나?"

"나는 살좀 뺄라꼬 일부러 밥도 안 싸왔다"

"뭐라꼬 니 죽을라꼬 환장했나 밤 12시까지 어째 버틸라꼬 그라다가

축 사망 한다 고마 내하고 밥 갈라 묵자 밥 많이 싸 온다"

100m 달리기 결승점에 골인하듯 교실로 후다닥 달려

 들어와서 도시락을 꺼냈다.

문지의 도시락은   약국을 하는 아버지의 경제력이 확실하게 빛내 주었다. 당당하게 보온 도시락을 떡하니  꺼내  책상에 턱 하니 펼쳤다.

"햐아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나네 한 입 먹자"

"몽아 니 아까 뭐라캤노  니는 국물도 없는기라 저만치 비켜라 그라고  샘오시나 망이나 단디  좀 봐라"

문지의 도시락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과  된장국에다 오뎅볶음, 멸치볶음, 달걀후라이 와 콩조림까지 ...

"약국집 딸내미 도시락은 다르네  한 입 먹자 "

"그래 까짓거  내 밥 못 먹어서 죽었다고 소문나면 되겠나 한 입만 먹어봐라 자 입 크게 벌리바라"

"음 맛있다 우리장모님 솜씨 최고다"

"급하게 넘기모 취한데이"

몽이는 어느새 젓가락을 가지고 아예 문지옆에 앉았다.

 

책가방을 책상모서리 못에 건 상수는 모자를 삐딱하게 쓴 채 여학생들 책상안을 살금살금 살폈다.

도시락을 책상속에 넣고 화장실로 간 미금이의  벤또는 아직 따끈따끈한채 책상속에 있었다.

"히히 미금이 도시락 반찬은 머꼬  멸치볶음, 마늘쫑 죽순무침  와 맛있겠다.  면장집 딸내미 도시락속도 일급 반찬아이가 한 번만 먹어보고..."

"야 상수야, 니 내 밥 또 손 댔나? 울엄마가 밤중까지 있으면 배 고프다고

가득 싸 주었는데 니가 또 다 까 묵나  "

하고 미영금이가 쫓아와서 상수가 먹고 있던 도시락을 홱 뺏어들고

반찬을 살폈다.그 사이에 상수는 근영이의 책상안에 손을 뻗어

"히히 요건 근영이꺼 요것도 좀 맛있겄제  그래그래 근영이 벤또맛도 기차다 우리 장모 될  어무이들  사위 사랑 한 번 기똥차다"

대성이가 능글거리며 젓가락만 들고 순례를 다니면서 통학차를 타고 온

여학생들의 도시락을 다 뒤져 먹고  아침 첫 수업이 시작되기전에  이미 교실안은 점심시간이 한 번 휩쓸었다.여기까진 좋았다

 

정수가 들렁들렁 돌아 다니다가 창희 도시락을  그만 교실 바닥에

 엎어버렸다.

"앗 , 재수나쁘게 먹어보도 못하고 튀끼자 "

그리고는 치워 줄 생각은 않고 교실 밖으로 도망을 쳐 나갔다.

 

"야 이 자식아 너 그기 서 못 서 죽을래 내 밥 물어내란 말이야"

하고 창희가  씩씩대며 쫓아가고 바람에  쫓기며 학교밖으로  씩씩대며 달려나가는 한 바탕 추격전이 벌어지고 ...

 

 그날 아침, 우리는  샘한테   그 현장을 들켜서  벌을  옹골지게 받았다.

아침에 도시락을  까 먹은 우리는 교무실앞에서 꿇어 앉아  도시락을 든채 팔을 높이 들고 벌을 섰다.

 

 교무실로  들락거리던 선생님은 오가면서 한번씩 우리의 머리를 출석부로  톡톡 치며

 

"그래 너희들은 학교에 밥 까 먹으로 다니나?   배에 거릉벵이가 들어앉았나 "

 

지리선생님의 눈매는 참 무서웠다.

 

"히히 꼴 좋다 아침부터 밥통을 다 까 먹었으니 점심시간, 저녁시간은 안 봐도 뻔하다 학교 앞 할매집에 가서 외상달고 오뎅 먹고 찐빵 사 먹을놈들 아이가  오늘은 학교 앞 할매집에서 딱 보초 설테니 알아서  해라"

 

교련선생님은 또  삐딱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엄포를 놓았다 

 그 날  우리는 정말 밤까지 쫄쫄 굶었다.

 우리는 배가 고파서 지옥의 문턱을 오락가락 한 날이었다.

사실은 우리는 그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마다 그런

풍경을 연출하였다.

날마다 아침에 도시락을 까 먹고 선생님이 들어  오실 때쯤이면  교실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킨다고 바빴다.

ㅎㅎㅎ 지나간 날은 이런 풍경조차도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날은  얼마나 배고팠는지, 뱃속에선 3차 전쟁이 일어나고 , 공부가 눈에 하나도 안 들어왔던  날 ... 내 친구들도 지금은 나처럼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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