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사진

소중한 순간들을 사랑으로...

이바구아지매 2008. 3. 2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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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찾아 간  연초면 송정리 봉송마을 뒷산에는 진달레꽃이 활짝

피었더군요.

 

진달래꽃 가득 꺾어 품에   안고 산 비탈을 내려 오고 싶었습니다.

 튤립이 언덕위에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작은아버지댁 언덕위에 핀 튤립입니다.

아마도 베트남에서 시집 온 "칭티쮸엔" 이 심어 놓은 튤립꽃이 아닌지?...

 

 

 

어머니댁을 다녀 오다가 골목길에서 쮸엔을 만났습니다.

"형님,  안녕하세요, 히히히 "

"쮸엔. 결혼식 한다며 축하해 언제  해?"

"여기있어요.  형님" 

"청첩장이네 4월13일에 하는구나 좋겠다. 이쁜 신부되어야 해"

"네 "

"뱃속의 아가는 움직여?"

"운동?"

"그래 "

"언제 아가 낳아?"

"9월에요"

 

"태교도 열심히 해 아가가 엄마뱃속에서 모든 것 다 들어 노래도 들려 주고,

책고 읽어주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 해 "

"네네네"

"예쁜 아가 낳고, 예쁜 엄마 되어야지"

"네네네"

"병원엔 가 보는거야?"

"오늘 병원에 다녀 오는 길이에요"

"참 동서 베트남 영화 좋은 것 없어 한 번 보고 싶어"

"형님, 베트남 말만 해서 못 알아 들어요. 자막에도 한국말 안 나와요."

"괜찮아 소개 해 줘 "

"갑자가 생각이 안 나요, 적어 드릴게요"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시집 온 사촌동서 칭티쮸엔은 모든 일에

긍적적이고 열심입니다. 4월엔 결혼식을 올리고 9월엔 아가의 엄마도 됩니다.

힘들지 않은지, 아픈 곳은 없는지, 물으니 아프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다

합니다.

 

오늘 보니 얼굴빛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잘 먹어야 하는데 아직도 말도 다 통하지 않으니, 어린나이에 아이

 엄마가 된다니  반갑기도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어려워할 쮸엔이

안스럽습니다.

 

세상은, 인생이란... 전봇대의 전깃줄만큼이나 복잡한 곳입니다.

문화가 전혀  다른 나라의 두사람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부부가  되었고   아이를 임신하여 결혼한다니 축하를 해 주고 싶습니다.

"쮸엔 , 열심히 살아    행복한 4월의 신부 되고 ... "

 

 

쮸엔에게 이 고운 노래를 들려 주고 싶습니다.





결혼 행진곡 (Bridal March ) / 피아노



결혼 행진곡 (Bridal March ) / Bridal Choruw (Pipe 오르간 연주곡)
 
바그너 : 로엔그린 3막중 혼례의 합창(결혼행진곡)
RICHARD WAGNER(1813~1883)




Bridal March / Chorus



Bridal March / 오르간 연주



Bridal March / wind and String

 
(Wilhelm) Richard Wagner 바그너 (1813.5.22~1883.2.13)


독일의 작곡가. 라이프치히 출생.
어려서 드레스덴으로 이사하여 9세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고, 18 세 때 라이프치히대학에 들어가 음악과 철학을 공부하였다.

 

36년 여배우 미나 플라너와 결혼하였으나 불행하게 끝났고 39년 《리엔치:Rienzi》를 작곡하던 중 러시아령(領)의 리가에서 파리로 갔으나 생활은 불우했다.


49년 드레스덴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바그너도 이에 참여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령이 내렸다. 이를 미리 알고 피신하여, 리스트의 집에서 잠시 신세를 지다가 스위스의 취리히로 갔다. 여기에 머무는 동안 그를 돌봐준 베젠동크부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을 《베젠동크가곡집》과 악극 (樂劇)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에 담아 승화시켰다.


64년 봄, 추방이 해제되면서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의 초청으로 뮌헨에 정착하고 작곡에 몰두하였으나 그를 백안시하는 자가 많아 이듬해 65년 스위스의 루체른 교외의 트리프셴으로 이사하였다.

그 해에 뮌헨에서 H.뷜로의 지휘로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상연되어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또 68년에도 역시 뷜로의 지휘로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젱거:Die Meistersinger von N?nberg》가 초연되었으며 70년에는 리스트의 딸이자 뷜로의 부인이었던 코지마와 재혼하였다(전처 미나는 66년에 사망하였다).


이때 그에게는 이미 코지마와의 사이에 3명의 자녀가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69년에 출생한 지크프리트는 훗날 아버지의 음악 지휘자 겸 작곡가가 되었다.
70년 바그너는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여 《지크프리트의 목가: Siegfried Idyll》를 작곡하였다.


바그너는 자기 악극을 상연할 극장 건립을 추진하여, 마침내 76년 바이에른의 소도시 바이로이트에 극장을 완성시켰다. 이 극장 개관기념으로 대규모의 악극 《니벨룽겐의 가락지:Der Ring des Nibelungen》 전곡을 상연하였는데, 전 유럽의 명사들이 몰려와서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그리고 82년에는 《파르지팔:Parsifal》이 상연되었다. 이것이 상연된 후 요양차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갔으나, 83년 2월 13일 벤다르민궁(宮)에서 70년의 생애를 마쳤다.

 
바그너는 거대한 규모의 악극을 여러 편 남겼는데, 이 모든 악극의 대본을 손수 쓴 것은 아마도 그의 악극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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