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루게릭병,당뇨병등 여러가지 합병증에 시달리며 투병생활을 하시는 올 해 쉰아홉 되신, 아직은 나이로 보면 아주머니 정도인데
몸 곳곳이 아파서 고통을 당하는 위숙님
병 나기 전 ,얼마나 미인이었으지 첫눈에 알아 봤다.
부산 서면의 잘 나가던 대연각 호텔( 불타버린 유명한 호텔)집 딸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그녀,
지금은 이런 모습이다.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이다. 조금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금방 손가락마저 붙어버린단다.
심한 당뇨 합병증으로 이도 다 빠졌다. 죽힘으로 버티는 그녀지만 그래도 밝고 맑은 성격의 소유자다.
지팡이 짚고 다니는 그녀의 뒷모습은 가을비를 닮았다. 총총거리다가, 타박타박 걷다가
달음질 치는 듯한 모습이 차라리 귀엽다고 해야 할까?
좋다고 죽자고 따라 다닌 사람들이 가득 했을법한 그녀에게 부지런히 물었더니 재미난 이야기를 가득 들려 주었다.
고3인 딸이 하나 있는데 공부도 잘한다고 했다.
7월달에는 다시 뇌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다는 그녀는 가슴 속 양쪽에 체온계를 심어 둔
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나하고 여행가자고 약속을 해 놓고 날마다 어기던 그녀,
밝은 성격처럼 하루 빨리 회복하였으면 좋겠다.
이름이 나 하고똑 같은 이명숙간병사님,그녀는 나 보다 몇살 위인 언니뻘
매사에 열심인 그녀는 밝은 햇살 같은 존재 무엇이든 열심히 하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아픈 환자들을
돌보는 그녀는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보기 좋은 모습, 경남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분 '내 안의 아이'가
2008년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한, 작가를 동생으로 둔 그녀도 글쓰기를 잘 하는 것 같았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 효석'이 살았던 강원도 봉평 땅을 언제 시간 내서 밟아
보자고 약속도 했다.
컴퓨터도 열심히 배우는 그녀가 몸을 많이 다쳐서 3년이나 병원생활을 한 끝에 봉사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간병사가 되었다고 했다. 아직도 전신이 쑤시고 아픈 고통을 감내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그녀가 아프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옥순이할머니, "울어매는 나 네살에 저 세상 갔다구. 울아부지 보고 싶어 경례언니,
이름이 너무 어려와 부르기 심들어 나, 배 고파 먹을 것 좀 주어. 경례언니 내 침대로 와 같이 있자구"
머리가 새하얗게 새어버린 옥순이할머니는 누워만 계신다.
간병사님이 두 할머니를 친하게 지내라며 손을 꼬옥 잡아 주며 우정을 변치말라고 하니
"그래그래 우린 친구야 ㅎㅎ 일로 와. 경례할머니 사흘째 아무것도 못먹었어 맛 있는 것 좀 갖다 주어"
라고 옆 침대의 경례할머니를 챙겨 주시는 아름다운 우정...
"나 좀 일으켜 주소, 우리집에 좀 보내주소, 우리집 영감이 굶고 있는데 밥 차려 줘야 하는데.
오메 나 좀 일으켜 주소. 손님이 왔당께 아이고 엄니, 우리 엄니 좀 데려 다 주소.나 물좀 주시오, 아이고
날 때리네 나 생전첨 뺨을 맞아보네 신문에 나것네 .고생하지 말어. 배가 아파 죽것소, 오메 나 죽네"
몇 가지 말만 온종일 해 대는 경례할머니 하루는 몇 시간을 휠체어에 태워서 운동을 시켜드렸다.
너무도 고생만 하시고 사신 할머니 논때기,밭때기 하나 없어 스스로 노력하여 장만하엿다는 경례할머니의 모습이 무지 안타깝다. 죽도록 고생한 하고 논밭으로 얼마나 나다니셨는지 얼굴빛이 좀처럼 흰빛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요즘은 저녁에 목욕시켜 드리니 아침까지 잠을 잘 주무신다는 치매로 고생하는 할머니 식사 잘 하고 정신 말짱하게 돌아와서 할아버지 밥 차려 드리려 가셨으면 ...
옥순이할머니는 자꾸만 먹고 싶다고 하신다.
많이 드시고 많이 싸는 ㅎㅎ 그래도 정신이 말짱하게 돌아와서 운동도 하고 걸어 다닐 수 있으시면
참 좋을텐데...
아픈 할머니들도 말벗이 필요하고, 우정이 필요하다.경례 할머니랑 옥순이 할머니 손 잡아 드리고 친구가 되라고 하는 가슴 뭉클한 모습 (순간포착)
선자할머니, 늘 웃으신다. "정 공주 한 번 보러 왔소 " 하시며 병실을 찾아 와서 환하게 웃으시는
할머니는 애국지사의 따님, 일제시대 광주의 열차에서 조선의 여학생을 희롱하는 일본의 학생에게 분노하여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그 광주학생운동의 중심에는 선자할머니의 아버지신 김복동할아버지가 계셨다고 한다. 당시에 광주 서중학교에 다니던 학생 김복동이 그 사건으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루었단다. 지금광주학생회관에 아버지의 사진이 붙어 있다고 하셨다.
자랑스런 아버지의 얼을 이어받아 가난하지만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할머니
어제 거제도로 전화까지 해 주셨다.할아버지도 함께 입원 해 계시는데 폐암이라고 하신다.
고통이 더 이상 따르지 않기를 바래본다. 선자할머니는 다친 엉치뼈가 많이 아파서 고통스럽다고
하셨다.
자갈치 시장, 부둣가에 해가 솟아 오른다.
햇살은 병실의 창가를 데워 주기도 하고, 희망의 빛이 되기도 한다.
아픈 사람들이 빨리 완쾌하여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36일 동안 귀염이가 입원 해 있던 병원에서 본 작은 이야기들...(부산남부중앙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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