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달이 노는 바다

이바구아지매 2008. 7. 17. 06:45

                                                     ~  새로운 시작~블로그에서 빌려온 사진

 

달이 떴다.                              

오랜만에 만나는 달은 볼이 통통하니 스무살 아가씨의 볼살처럼 곱다.

달력을 보지 않고 나왔는데 보름에 가깝나보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어부가 아니라도 자연 바닷물때와 달(월력)을 비교하기

일수다.

 

칠월 열여샛날  밤은 공기조차  맑고 투명하다.

밤 바다는 연극의 무대인냥 고혹적이고

바람이 살랑거리니 여름밤이라기보다  차라리 초가을의 바람 맛 같다.

 

 

딸아이랑(둘째) 둘이서 아령을 들고 집을 나섰다.

운동을 한답시고...

곧 찻길을 건너고 산허리를 잘라 만든 해안도로를  아직도 숨소리 고르게

내지 못하고  헉헉거리며 오르니 다리에 알통이 생기고 발목 인대가 힘들어 한다.

언제쯤이면  산허리와 고갯길도 힘들어 하지 않고  오를 수 있을까?

 

오늘 밤은 바람맛을 제대로  느끼라고 그러는지 바다도  잠잔다.

 까만 바다가  달로  물드니  꼭 모시홑이불을 깔아 놓은 듯 시원 해 보인다.

 

하얀 모시 삼아 씨줄,날줄로  엮어,  배 곱게 짜서  깔아놓은듯

 정갈한 바다 빛깔에  문득  시집올 때  가져 온 모시홑이불이 생각난다.

 

 

나 시집갈 때  우리집은 부도(큰 오빠가 하던 사업)를 맞아 엉망징창이었고 막내딸에게 줄 특별한

혼수도 제대로 장만못하자 어쩔줄 몰라하며   친정엄마가 마음 담아 마련 해 준 모시홑이불이

염치없이 떠 오른다.

밤 바다를 보니 달빛으로 물든 풍경이 엄마가 더운 여름에 덮으라고

 마련 해 준  모시이불이 깔려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무리 여름이 더워도 안 덮으면 배 앓이를 한단다 너는 어릴 때부터

 배가 자주 아프다고 해서 걱정이다. 더운 여름에도  꼭 이 모시홑이불을

덮고 자거라 까실까실하니 좋을끼다"

 

그렇게 해서 두 딸이 시집갈때마다 손으로 직접 짜서 만든(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서 보관 해 온) 모시이불을 혼수로 주셨다.

 

'별걸 다 혼수라고 다른친구들은 시집갈때 요란벅쩍지근하게 해 가던데...'

내 마음은 우울하고 슬프고 답답하기만 했다.

  그렁그렁 눈물을 머금고 모시이불을 받아  들고 내방으로 가서

문을 꼭 걸어 잠그고  모시이불을 내동댕이치며 발로

자근자근 밟아버렸다.

"별게 다 혼수품이래 참 더러워서 이깟것은 거렁뱅이한테나 주면 딱이야"

하고 펑펑 소리내서 울었다.

눈이 퉁퉁 부울때까지 서러워서 ...

 

그리고 시집와서도 한 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장농구석에서 빳빳하던 모시홑이불이 풀기운이 다 가시고 헐렁거리며

이쪽구석에서 저쪽구석으로 쳐 박히며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

 

큰 아이가  여섯살,둘째가 네살이던 그 해 여름 우리가 살던 안암동 집은

무지 더웠다.

아이들은 날마다 덥다고 징징대고 나는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해 줘야

할지를 몰라서 맨날 도시락을 싸 들고  담 넘어 안암동 고대캠프스 

운동장의 커다란 은행나무밑만 찾았다.아이들이라고 무조건 뛰고

놀려고만 하지도 않았다.

 

때로는 낮잠도 자야 하고 ,밤에도 쾌적해야 잘 잤다.

 

우리가 살던 안암동집은 일본식 집이어서 다다미가 깔린 거실도 갑갑했고 다락방도

 햇살을 받으면 지붕위의 기와가   더위를  흡수하여 바로  다락방으로 쏟아 부었다. 

 아이들은  땡땡여름에 어른도 참기 힘든  더위의 고문을 받다시피하고...

안암동의 여름은 햇살과의 전쟁이었다.(그 때 우리집에 에어컨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낮이란 시간을 흥분한채 갑갑하게 보낸 아이들에게 밤은 절대적인

 휴식이 필요로 했지만 밤이면 또 다시   열대야의  연속이라 여전히

칭얼대며 몸부림을 쳐대어서 배앓이라도 할까봐서 어쩔도리없이

 별별짓을 다하다가 장농속에서 굴러 댕기던 모시이불을 꺼내서

덮어 주었다.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아이들은 새벽까지도

   이불을 걷어차내지 않고 돌돌 말아서 감고 곤히 자는게 아닌가?

갑갑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음날부터 아이들은  모시이불을 자기것이라고 우기면서 낮에도 덮고

 밤에도 덮고 애지중지하였다.

 

아이들이 잠깐  할머니네로 가고 난 사이에는  느긋하게 혼자서 모시이불을  

덮고 누워보니 얼마나 편하고 촉감도 부드러웠던지...그 때 그 기분은 

 잊혀지질 않는다.

 

 

밤 바다가 모시이불을 덮고  기분좋게 잠잔다.

고기잡이  배가 저만치서 오고 있다.

통통통 소리 내며 불빛을 깜빡인다.

잠든 밤바다가 깰까 봐서 조심스럽다.

 

바다를 내려 다 보니 시간이 가는 것도 아깝지 않다.

잊고 있었던 아마득했던 기억속의 모시이불이  잘 있는지 집에 가면

찾아봐야겠다.있으면 다시 꺼내서  올 여름을  또 까실까실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버리지는 않았으니 찾으면 장농 깊숙한 곳에서 쪼글거리는 할매모습을 하고  나오겠지.

 

 

(2008년 7월16일 삼경, 능포동 해안도로에서 바다를 내려 다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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