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렸을적 요맘 때 봉숭아꽃이 만발했었다
봉숭아꽃물 들인다고 , 치마폭에 가득 따고 조막손에 모아 따서 돌담길 돌아 집으로 달려갔다
봉숭아 꽃물이 곱게 들라고 밤새도록 손톱에 칭칭 동여매고 중얼대며 잠을 설쳤다
봉숭아꽃물이 곱게 들어 희고 고운 반달이 선명할 때 쯤 시집 간 언니가 온다고 했던가?
내게는 시집 간 언니도 없었는데...
손톱끝에 봉숭아 꽃물이 들고나면 어느새 내 마음 깊숙히도 꽃물이 스며 들고 이내 겨울이 내렸다
엊그제 유년의 추억이 가득 한 집으로 가 보았다
여전히 봉숭아꽃이 피어 있었다
혹 내가 올거라고 기다렸을까?
엄마가 밭에 가서 익은 고추를 따 오라며 바구니를 주셨다 어린 나는 바구니 대신에 치마폭에 주릉주릉
고추가 가득 달린 고춧대까지 반쯤 , 부러뜨려 �어 담았다 뭐가 그리 급해서 그랬는지 ...
고추밭을 지금지금 밟으며 성한 고추나무를 이리저리 넘어 다니다가 고추밭을 만신창이를
만들어놓고...
엄마는 고춧대에서 풋고추(끝고추)도 딸거라고 익은 고추만 조심조심 따라고 하였는데. 선머슴처럼 ...
조심하라면 더 나자빠졌다 치마에 가득 딴 고추를 그만 치마단이 고춧대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온 밭에 흩어져서 나딩굴었다.
고춧대는 내 예쁜 엉덩이를 사정없이 찔러대고 ..빨간 고추는 제멋대로
흩어져서 고추밭을 빨갛게 물들이고...
복실이가 집을 본다 혼자서 너른 우리집을 누가 들고 갈까봐서...
언덕베기 위로 올라가면 지독히도 우리를 사랑해준 아버지가 누워 계신다
우리가 잘 사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죽어서도 멀리로 가시지 못했다
친정 집 가는 길에는 늘 눈물이 난다
고생만 하시는 늙은 엄마가 짠해서도 그렇고...
내 자식들이 세상에서 최고인줄 착각하고 더 잘 되기를 바라셔서 집뒤 동산에 묻히신 아버지의
묘소가 보여서 또 눈물이 나고...
시집가는 딸내미 곱게 키워 사위에게 손 잡아 주고 잘 살라고 덕담 해 주시고 가시지 ....하늘길이 너무
멀어 그리 급히 가셨는지?
친정집에만 가면 잃은 것이 많아서 너무 서럽다 아버지를 잃고, 부도를 맞은 자식들 때문에 문전옥답이
다 날아가고 그래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늙은 엄마가 있어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친정집이라도 가면 곧장 돌아온다...망한 집은 훌쩍 떠나 보는 것도 좋을텐데...아집인지?
욕심인지 엄마는 늘 그자리에 붙박이처럼 붙어 사신다.아마도 죽기전에 날아간 그 모든 것을 다 찾아
제자리에 돌려 놓을것처럼..."조상님께 면목이 없어서 죽어서 어찌만날꼬"
라는 슬픈 엄마의 목소리가 늘 귓전에 맴돈다..
그런날에는 도망치듯 친정집을 나온다
내 유년의 고운빛깔이 회색으로 물드는게 싫어서 ...
밤이다 어둠이 까맣게 내린 밤
해녀가 다 까가고 빈껍질만 남긴 성개... 그래도 바다 냄새가 물씬물씬 풍긴다
해녀가 물질 하러 갈 어구들
해녀의 옷, 빨래줄 그네를 타고 해녀의 옷들은 밤새도록 해풍에 실려 춤을 추겠지
날이 밝아올때까지..
밤 낚시를 하는 드리우는 사람은 고기도 낚고,밤도 낚는다
밤 배는 혼자서도 잘 논다 삐걱삐걱 내일아침 어부가 올때까지...
내일 아침까지 배는 이렇게 묶여서 항구를 지키는 파수꾼이 된다
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심심하다며 한잔 술을 기울이기도 하고...
갑판위의 빈 의자는 밤 바다와 친구되어 어둠속을 여행한다
우리들의 어머니, 햇살이 살을 파고 드는 땡볕에서도 일하신다
자식들을 위하여 ...
언젠가 저렇게 일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며 가끔씩 눈물 바람이 날때가 올것이다
아낌없이 주던 어머니의 사랑 ...
풀내,흙내,땀내를 날리며 일하시는 어머니의 무릎이 아프지 않았으면...
허리가 아프지 않았으면...
주름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호호백발이 되지 않았으면...
어느 날 홀연히 어머니는 물처럼,흙처럼 바람처럼 가볍게 날아가실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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