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막걸리를 담그다.

이바구아지매 2008. 10. 15. 17:09

드디어 막걸리를 담근다

얼마만인지...

김말련여사(시어머니)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며칠동안 누룩을 밤이슬 맞히는 정성으로 막걸리 담그기를 시작하셨다

누룩은 절구통에다 넣고 잘게 부순 다음 여러 날 밤이슬을 맞히고...그러면 누룩에서 나는 특유한 냄새를 없앨 수 있다는데...

찹쌀을 물에 불려서 무쇠솥에 넣고 술밥(꼬두밥)으로 찰지게 쪄 내고...

장작불을  가득 때서 방안도 후끈후끈  찜질방으로 만들고...

 넓고 고운 돗자리에   술밥을 골고루 펴서 부채 부쳐서 식히고...

 술밥이 식어가는 동안   고슬고슬 맛나서 집게손가락으로 찹살밥 꼬들거리게 모아쥐었다 콕콕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놋쇠주걱으로 골고루 넓게 펴고  뒤집어가며 술밥을 식히니 옛생각이 모락모락 술밥의 연기를 타고 올라간다.

 

 

 

 

 

내가 살던 연초에는   술맛좋기로 소문났던 연초술도가가 있었다..그집에는 국민학교를 함께 입학하여  처음으로 나랑 짝꿍을 했던  성희가 살았었다  성희는  할아버지가 술도가를 하는 바람에 어릴적부터 술배달을 많이 다녔다  술배달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계속되어서 방학 때 집에 오면  술배달을 참 많이도 하였다 성희가  대학1학년 여름방학 때였나?  그 해 여름은 살인적인 더위였다고 기억된다 폭폭 찌는듯한 가마솥더위에 술배달을 하고  집으로 가던 중에 목욕을 하려고 열녀천에 뛰어들었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스무 살,   그 해 여름의  슬픈  기억이 또  술밥으로 되살아난다.

 

 

 

 

 

 

어머니는 다시 술독을 몇번이나 헹구워 오시고..

술항아리속에 술을 해 담그는 풍경이 도대체 몇년만인가?

이 기회에 어머니께 잘 배워서 언젠가 나도 술을 직접 담아보리라.

 

여름에는 술밥을 단단하게 쪄서 물기없이 누룩과 술밥을 골고루  잘 섞어담고  위에는 연한 감잎으로 잘 덮어서 그늘아래에 두고 사흘이 지나면 술채에 바쳐  물을 적당히 붓고 조물조물 술찌개미를 짜내면  아버지도 좋아하시고 건너마을 병수아저씨도 좋아하는  밀주(막걸리)가 되었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술을 그르면 술채에서 주룩주룩 양은대야에 받치던 술을 손가락으로 콕콕 찍어 먹어보고 종기로 가득 떠서 홀짝거리고 먹다가

술에 취해서 쓰러져 자던 기억도 나고'...

시골집에서는 집집마다 밀주를  담아 먹기도 하여 종종 이웃집에 가 보면 엄마들이 불 때는 아궁이 앞에서 머리에 수건 두르고 술 그르던 모습이 참 보기좋은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의 으뜸이라고 스스로 단정했다..

아궁이의 장작불이 발갛게 타 오르면 엄마들의 볼도  발갛게 익어 올랐다 불기운인지, 콕콕 찍어 맛 본 술맛의 취기때문이었는지...

손님이 남기고 간 술상에 가서 술잔에 남은 술을 쪽쪽 소리내며 마시고...일찍부터 막걸리 맛을 알아버린 유년의 뜨락을 언제 한번 다시 재현해 볼까보다

 

 

 

 

 

겨울에는 따뜻한 방에다  일주일 정도  두면 발효되어 먹을 수 있다는 막걸리 ,

어머니 살아계실 때 제대로 배워 볼란다

 

 

 

 

 

 

 

 

 

 

 

 

 추위가 싸아하니 몰려올 즈음  아궁이에 장작불 때 놓고 술채를 받쳐 놓고 톡톡

 치며 술찌개미 냄새를  풍기는 풍경을 ...

 

 어머니 살아계실 때    따사로운  부뚜막에 오두마니 앉아서

술 그르는 모습에 또 한 번  흠뻑 취해보면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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