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아름다운 청년

이바구아지매 2009. 2. 1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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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요 능포동이 어디죠?"

캄캄한 어둠속에서 부드러운 서울말씨가 나를 불러 세운다.

"길을 잘못 들었어요 제가 능포동에 사는데 같이 가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차를 잘못 내렸나봐요 버스에 장승포라 적혀 있길래  ㅎㅎ 알고보니 능포동과는 다르네요"

밤 운동을 나와서 장승포등대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가로등 불빛으로 본 서울말씨의 주인공은

얼굴도 핸섬하게 잘 생긴 총각이었다.

이 길로 쭉 가서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꺾어서 라고 설명하기엔 너무도 먼 거리

30여분을 걸어가야하는데 이런 식으로 길을 가르쳐준다는건 어쩐지  성의없다는   생각에

같이 가자고 동의를 구하니 살았다며  안도의 숨을 휴 몰아쉬는 젊은이...

고향이 성남이라는 젊은이는 대우조선소에 취직이  되어  이 곳에 온지가 오늘로 꼭 일주일째란다

아직은 낯선곳에서 뭐가 뭔지도 모른채 적응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걸어가며  이런저런 가벼운 질문을 하다보니

올해 스물여덟살로 사랑하는 연인과는  몇번의 급여를 타게되면  곧장 결혼식도 올릴예정이라는

청년은 소박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 준다.

우리는 지금이 어느때보다  어려운  시기라고  이야기하며 조선소로  직장을 구해 온  젊은이가 정말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며

어떤 부서에서 일하냐고 물으니

"저 용접해요  그리고 대학도 못나왔어요"

하고 주눅들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멋진 젊은이...

너무도 뜻밖의 학력으로 내가 오히려 놀라고 말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백수도 모두가 대졸자들인데 ...사연을 들어보니 정말 착실한 젊은이가 아닌가

집안이 어려움에  처해서 장남인 자신이 동생들까지 다 공부시켜야 한단다

요즘 젊은이의 사고방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너무도 잘 받아들이고

생각이 얼마나  건전한지...

직장생활이  힘들더라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내년쯤에는 거제대학 야간부라도  입학하여 공부하며

자신의 실력을  야무지게 쌓아가면 좋지않겠느냐고  ...

조언이라고  해 봐야 별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항상 실력을 쌓아서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 시켜나가면 조선소에서

직장생활도 희망적일것이라고 말해주니

"서울에서 버스타면 거제도까지  6시간 걸려요  차비는 8만원 들구요  저 잘 왔죠! 이렇게 좋은분도 만나고

저 되게 운 좋은 놈이죠 하하하"

라고 활발하게 웃으니  청년의 스물여덟살이 어둠속에서도 빛난다.

 

 

 

옥수동을 지날무렵  집이 어디쯤인지 다시 물어보니 능포아파트라고...

 " 어 울타리 너머~~~이웃사촌이네

직장생활 멋지게 하고 돈 많이 벌어요.  대학 꼭 가구요.  장가도 빨리 가세요 이웃사촌  총각 ㅎㅎㅎ"

하고 헤어져서 골목길로 들어서니

"잘가세요  오늘  잊지 못할겁니다 늘 행복하세요 "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며 손 흔들며 기숙사로 들어가는 총각의 뒷모습이 야광으로 흐뭇하게  빛나고 있었다.

 

(2009년 2월 17일 장승포 등대로 밤 운동을 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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