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새벽에는 깨를 볶지 마세요.

이바구아지매 2009. 2. 24. 21:49

 

 

 

새벽, 저절로 눈이 뜨인다 .

전기장판의  온기로  등이 따끈함을 옴팡지게 느껴본다.

어둠사이로 머리맡에 둔 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정각 3시

늘 이 시간이면 가뿐하게 깨어나니 정말 신기하다 .

꼭 이 시간이면 소변이 마려우니...

내 방광은 알람같은~~~

그러니 일어나기 싫지만 누워서 해결할 방법도 없으니...

일어나서부터는 신경 쓸 일도 많아지고,

 거실의 소파에서 잠든 남편을 깨우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까치발로 욕실로 go~~

어둠속에서 볼일을 보고 ,

잠이 도망갔으니 아침준비나  좀 해 봐야지...

주방으로 사뿐사뿐 각시발로  숨 죽이며 걸어가 문을 열고 들어서서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어 본다.

곧 이어

두리번두리번 무슨 일부터 해야할지  먼저 쭉 훑어보니

눈이 읽어 낸 첫 번째 풍경,

밥하려고 씻어  담궈놓은 쌀이 퉁퉁 불어서  스덴대야에 수북하다.

밥 욕심이 많은지 갈수록 쌀을 많이 불린다

경제가 어렵다고 야단들이니   우리집도 예외는 아닌지라... 아니 다른집보다 인구밀도가 높아서

어려운 살림살이에 허리띠를 심하게 졸라매야 하는형편

우리집 아이들은 흥부집 아이들처럼     군것질과 간식거리가 풍족하지 않으니

밥이라도 가득먹여 배 곯지 않게 하려는   흥부각시의 마음으로ㅋㅋ...

아직 아침이 오려면 ,아침밥을 짓기엔  시간이 너무 이르니 행동도 느리고 게으르다.

씽크대에 뒤죽박죽으로 담겨져 있는 컵 몇개를  물에 흔들어 건져내고 나서도 무슨 일을 먼저할까

결정하지 못하고 망서리며 주방을 왔다갔다 하니 밖에서 나뭇잎 구르는 소리가 난다

갑자기 나뭇잎이 어디서 날아들지?

집근처에는 나무도 없는데...

가만 귀 대고 잘 들어보니 빗소리다

요즘 거제지방은 비가 잣다

가뭄이 어느정도 해갈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밤10시경부터 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자다가 일어나서

비몽사몽간에 비설거지를 꿈결같이 끝내고

도로 잠들었는데

 깨어나니 또 빗소리가 ~~봄장마가 들었나?...

토닥토닥 하는 창 밖의 빗소리가 깨소금 볶는 소리같다

"참 깨를 볶자"

그저깨부터 깨소금이 떨어졌는데 빗소리를 들으니 깨를  볶아야겠다는 생각이 떠 오른다.

씽크대 윗찬장 타파통에 넣어 둔 깨를 꺼내서 흐르는 물에 담궈 씻어 채에 바쳐서

물기를 뺀 다음 후라이팬에다 넣고 숫가락으로 휘휘 저으니 뜨거운 불기운에 어느 새

물기가 달아나고 빗소리를 닮은 깨소금이 톡톡 튀어 오른다

허여멀건하던 깨들이 노릿하니  고운  색깔을 내며 볶이니 더한층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익은 깨들은 점프를 하여 넓은 세상으로 톡톡 튀어 나가기도하고

점프를 해도 별볼일없이 후라이팬속에 그대로 담기기도 하는 작은 깨알들의

반란이 우습기도하여 지켜보는 난 정말 더 웃긴다 좁쌀같은 깨소금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

누가 새벽부터 깨소금을 볶는가?

이른 시각에 깨소금을 볶다니 .그래도 할일임에는 분명한 사실...

아 그러니 또 할일이 생각나네

 이번엔 샌드위치를 싸 봐야지...

부사 한개를 잘 씻어 돌려 갂은 다음 총총총 채를 쓸어 그릇에 담고

다시 냉장고에서 양배추를 꺼내서 역시 총총  쓸어

짜투리, 혹은 부스러기 채소 몇가지를 긁어모아서 비비고 섞어서

 한 입 먹어보니 달작지근한것이 아이들이 참 좋아하겠다

ㅎㅎ 샌드위치 일곱개를 번개같이 싸서  눌러놓으니

오늘 아침준비 끝~~여기까지는 기분이 차암 좋았다.

다시 볶은 깨 식히려고   둔 후라이팬 위에 걸쳐놓은 숫가락으로 깨소금을 반스푼 떠서

나도 모르게 입에 툭 털어 넣었다

교감신경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오른손이 즉흥적으로 ...

"앗 뜨거 "

순식간에 입안이  뜨거워서 난리가 났다

얼마나 뜨거운지 입안이 화상을 입은것 같다

재수가 나쁘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어진다더니...

입안이 얼얼하고 갑자기 입술까지 벗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3도 화상쯤 물집이 잡히고 얇은 살껍질이 벗겨지고

새벽부터 입안에 대형사고가  앗 ,재수없어 ...

새벽부터 누가 깨를 볶으라고 했더라면  원망하고 잡아 먹으려고 난리를 쳤겠지만

아무도 시키지 않았으니 화풀이할곳도 없고

참 어이없는 새벽

누구의 탓이라고 화를 내고 분풀이를 해야 속이 시원하겠는데

새벽부터 나를 깨워서 깨볶게 한 핑계쟁이는  ...그래 바로 너였지!!!

창밖에서 토닥토닥하고 깨를 볶으라고 충동질 한 너 ~~

빗소리 , 너 때문이라고  !!!

비, ~~ 떼에찌 ~~

에고   입안이 쓰라리고 아려 ~~~ 고소하게 싼 샌드위치는 그럼 누가 먹어???

 

 

 

 

 

'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 오는 날의 수다  (0) 2009.03.06
아들이 쓴 자기소개서  (0) 2009.03.05
능포항에 비 내리면...  (0) 2009.02.22
졸업  (0) 2009.02.20
초코소라빵이야기  (0) 2009.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