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09:00 경 동사무소 앞 공터... 열명쯤으로 짐작되는 아지매들이 수른거리며 봄햇살에 타지 않겠다고 필사적으로 칭칭 동여매다시피한 모습이 아침풍경으로 다가온다 아직 햇살은 지구를 데울 기미도 안 보이는데... "호메이는 단디 챙겼나 ..." " 영자네야 니 도시락 반찬 뭐꼬 ...나는 우리 손자들 묵다 남은 김치꼬래이하고 깻잎대엿장 담았다 " "나는 마른 멸치하고 고추장만 담았다 " "참 화장도 야무지게 했네 ...수야네는..." "그라모 일하다가 지나가는 멋진 감탱이라도 있으모 분내라도 실컷 풍겨야제 그래야 쭈글망탱이라도 함 쳐다보제 우 하하하 노망났다 노망났어 주책이 백단도 넘어야 ... 늙으모 죽어야제 " "여자의 변신은 무죄 ...나 루즈색깔 우떻노? 요게 그 진달래색깔 아이긋나 진달래꽃 맹쿠로 튀고 예뿌나?" "지랑하고 자빠졌네 문디 쥐새끼 대여섯바리는 잡아묵은년 같네" "그람 니는 그 눈꼬랭이가 다 머꼬 시커멓게 찍어 바르고 기부스한거 말이다" "으 이기 그 유명한 '마릴린 먼로'라쿠는 세기의 미인 눈 화장법 살짝 빼낀것 아니것나 ㅎㅎㅎ"
아침햇살도 시끌벅적한 갱상도 아짐들의 소란에는 두손 두발 다 들고 만듯 동사무소 앞 소나무 그늘로 비켜선다...
가만 자갈치시장만큼이나 목소리높은 이 삶의 현장에 딱 한사람 멀찌감찌에서 얌전하게 서 있는 여인이 있다 나이는 40 줄에 들어섰을까? 이곳에 합류하려면 적어도 60을 넘어서야 한다던데... 단발머리와 검은 안경테를 바쳐주는 안경알이 제법 돗수 가 있어뵈고 도저히 이런 삶의 원초적인 풍경에 안 어울리는 이지적인 여인... 그녀가 몹시 궁금했다 ... 그녀는 자신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얌전한 화장을 하였고... 오늘 처음으로 이 장소에 합류한듯 어색한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에도 베낭 하나 달랑 메여있다...
그녀가 이런 삶의 현장에 합류하게 된 사연이 있는지? ... 지켜봐도 말한마디 하지 않는 그녀, 하긴 도대체 누구랑 어떤 대화를 나눈단 말인가? 혹여 화장에 대하여 ...라고 대화의 주제를 내 주었다면 몰라도... 60~70대 여인들의 걸쭉한 대화에 끼여들기는 영 멋적다. 엷은 화장으로 이지적인 그녀의 모습은 은은한 라일락꽃을 닮았다. 그녀도 베낭속에 호미를 넣었겠지 ... 그녀가 한낮의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서 풀을 멜 상상을 해 보니 도저히 어떤 풍경도 그려지지 않는다. 마침 돌아서서 몇발짝 걷는 그녀의 오른쪽 다리가 절뚝거리며 리듬을 타는 것을 보게 되었고 ... 그랬었구나...그녀의 오늘 하루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진행되었으면 참 좋겠다.
내일 아침에 다시 이곳에 와 보아야겠다. 그녀가 많이 궁금하므로...
하하호호 그리며 일터로 향하는 그녀들의 짧은 수다가 내 삶의 활력소로 기어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명자꽃처럼 입술을 넙적하게 그리고 톡톡쏘는 분내를 날리며 일터로 가는 그녀들... 땀으로 범벅이 될지라도 예쁘게 화장하고 거울부터 보는 그녀들의 변장술에 탄복하며 ...작은 행복 비타민 하나를 발견한다.
2009년 4월 8일 공공근로 가는 사람들의 풍경 (능포동사무소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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