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그 여자네 집

이바구아지매 2009. 9. 1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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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아주 우연히 그 여자네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

 

 

여자가 사는 집은

바다가 내려 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고  소슬 바람이 심심하게 들락거리며  놀고 있는,

시간조차 똑딱거리던 기억을 잃어버린 채  딱 멈춰 서버린  그런 곳이었습니다.

갯내음이 바람그네를 타고 일렁이는 오후, 갑작스런 방문을

 허락받고 곧 그 여자네 집 뜨락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두 발  얌전하게 모으고 그여자네 뜨락에 서 보았습니다.

전화속으로 들려오던 그 여자의 목소리는 낭낭하여  '콕 '하고 호두알 깨지는 소리를 냈습니다.     반가움을 마구 퍼뜨리며 달려나올 그녀의 모습을 만나기전  잠시 그려 보았습니다.

그녀의 첫인상은 어떤 빛깔일지 ... 

 낯선 그녀를 만나면 나는 또 어떤 빛깔로 다가가야할지... 작은 설레임으로 그 여자네 뜨락을   서성이며 그 여자가 창가로 나타날즈음  내내 가슴은 쿵쿵뛰었습니다.

 

 

작은 인연이 시작되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

마당 지킴이

 

 그 여자가 나타나기 전 그 여자가 꾸며 놓은  뜨락을 조근조근 살펴보았더니 ...

일곱난쟁이와 백설공주가  홀로 사는 그여자가  심심하지 않게

 끝없는 동화를 들려 주고 있었습니다.

작고 귀여운 그것들은  '마당지킴이'라 하였습니다.

 

 

 

 

일년내내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산타크로스도 있었습니다.

 

 

 

 

그 여자네 집 ...

 

 

 

 

그 여자는  나뭇가지에 예쁘게 새집을 달아주어  바다 위를 날다가

 지친 새들이 이곳으로 날아와서

잠깐동안 쉬어가도 좋다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녀가 살았던  그리운 땅의 이웃나라인  

 북 유럽  핀란드 로바니에미의 

 산타마을을 재현 해 놓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여자는 이 곳에서 휴식을 즐기며 살아 온 날들을 추억하며,

또 살아갈 날들을   준비하겠지요? 

 

 

 

이번에는

그 여자가   거실로  얌전하게 기어들었습니다.

물론 그 여자가 반갑게 맞아들여 주었지요.

호두알이 굴러 가는 소리로 반가움을 내지르는 그 여자를

첫 눈에 느껴 보았습니다.

  그 여자가  살아온 날들의 숨막힘과 절절함과  강인함이

얼굴 가득 실려 있음도 단박에  읽어내었죠.

 

수 많은 시간들을 타국에서 보낸 그 여자의 향기는  

독일의 향기인지, 스위스의 향기인지...?

그 여자의 거실에는  이국적인 벽난로가 있었고 ...

내 가물한 기억속에서조차  팔랑거리며 바람앞의 등불이었던  풍경 하나가

심심한 듯 벽난로 앞에 머물고 ,

그 여자가 무료함을 달래었을법한  스위스의 잡지들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고...

 

 

 

 

 

 이튼 정 ...

그 여자의 이름입니다.

얼마전 스위스에서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그 여자네 집에 들어오기 전 이미 그녀에 대한 정보를 대충 들었습니다

위암에 걸려서 지금은 치료하는  시간이라고 ...

"당신은 고국인 한국에 가서 이 병을 치료하세요"

 라는 의사의 강력한 권유로

이 곳 칠천도로  기어들게 되었다고...

 

그여자는 우리나라가 너무도  힘들게 살아야했던 가난한 

  시절에 독일로 날아간 파독간호사엿습니다.

그 여자가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다양한 정보로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낯설고 물 설은 이국 땅으로 날아갔던 파독간호사

그리고 그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그여자의 모습에 반한  

스위스  국적의 남자가 결혼을 청하였고 ,

 결혼한 그여자는 그남자를 따라서  스위스로 날아가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월은 흘러 ...

지금은 따뜻한 남쪽나라  거제도에 속한 부속섬의 하나인

칠천도에 보금자리를 튼 그 여자...

 

 

 

 

 

 

그녀는 함께 간 동행자에게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이야기 하는 동안

집 안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아주 강렬한

빛깔인 빨강 모자를 발견하엿습니다.

처음 만난 그 여자의 내면을  하나하나 들여 다 보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문 앞에 걸려있던  빨강 모자와  아이보리색 모자와 프릴이 달려있는 

스위스풍인  두 개의 앞치마도 느낌이 좋아

사진속에 조용히 담아 보았습니다.

 

 

 

그 여자는 9월인데도 이미 벽난로에 불 피울 준비까지 

 야무지게  디 해 놓았더군요 .

겨울이면 스위스에서는 너무 추워서 스페인으로 날아가

겨울을 나고 돌아온다고 말하던 그 여자,

이 곳은   따뜻한 남쪽나라여서 너무 좋다고

거제도 예찬을 아낌없이 해대던  그여자.. 

하지만  천혜의 관광지로 후손에게 길이길이 물려 줄 땅을

조선소랑 바꾼 댓가는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피력하던 그여자

스위스는 돈이 되는 동계올림픽을 개최하지 않는다고

왜 그러냐고 물으니 자연 그대로를 두고 바라만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

자연을 때 묻히지 않고 잘 보존하는것이 우리가 살아갈 미래가 아니냐고 ..

그것이 스위스의 고집이라고 ...

힘 있게 말하는  그여자가 아프다는 생각을 하자 분명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이 도착하면  그여자는 따뜻한 장작불을 지펴서 따스함을  

  집안 곳곳으로 퍼뜨릴것이며,

솔방울은 타닥타닥 소리를 내지르며 타오르겠죠.

 

 

 

 

그 여자는 날마다 또 하나의 나라를 조금은

 그리워하며 사나 봅니다.

스위스인지,독일인지... 

아직은  완전하게 정착하지 못한  이방인처럼입니다.

 

 

  

 

 그녀는  얼마전에 다시 스위스를 다녀왔다며

그 곳에서 가져 온  원두 커피를 내려주며

잘  알지못하는 유럽의  분위기를  눈 감고 상상해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여자가 전성껏 준비한  가장 한국적인

또 다른 별미 '콩국수'를 한 대접  시원하게 먹었습니다.

그 여자의 손끝은  맵고 참 야무졌습니다

커피도,콩국도  아주 매력적인 맛이었습니다.

 

 

 

 

 

 

그 여자네 거실에서 내다 본 바다 풍경입니다.

정면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바다를 그녀는 무지무지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이튼 정 ...

 

그 여자는 지금  열변을 토하고 잇습니다.

이웃에 사는 별난 성격의 욕심꾸러기 아저씨 이야기며,

몇달씩 집을  비워두고 스위스로 날아갔다

오는 시간이며,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고 불편하여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등...

아 참 이 이런 가슴시린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허리가 'ㄱ'자로  굽어진 이웃할머니는 동이 트기전부터 바다로 나가 일하기

 시작하여 어둠이 내리는 시각까지

등 굽은 채 일하시는 모습이 언제나 가슴깊이 찡하게 파고 든다는

 그여자의 이웃에 살고 계시다는   이웃할머니의 질곡에 찬   삶 이야기도 ...

 

 

 

 

 

 

 

그 여자는 아침햇살이 꽃으로 활짝 피어나서  들어왔다 홀연히  나가거나

어둠이 슬몃 기어들어왔다  슬쩍 비켜 나가는

 저  현관문으로 온 종일  종종 걸음으로 왔다갔다 하겠지요.

 

 

 

 

 

 

그 여자네 집의 풍경은 ...

나직하고  이쁜 대문은   언제나 열려있다하였습니다.

누군가가 그여자네 집을 찾아왔는데  문이 닫혀 있다면 ...

이건  분명 말도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뜨락 뒷곁에 매여 있는 '로미오'

"혹시 줄리엣은 어디 갔나요?"

하고 묻자 

"줄리엣은  아파서..."  

하고 그 여자는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그 여자가 사는 작은  공간은 온통 문학이 펄펄 살아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이 집에서 24시간, 열심히 살아간다고 하엿습니다.

 

 

 

 

 

그 여자가 사는 집  뒤의 언덕길에는 외래종인 독일산 꺽다리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코스모스는 재래종이 훨씬 더 예쁜 것 같아요"

라고 말하자

"그래요 내년에는 예쁜 재래종 코스모스로 바꾸어 심을거예요"

라고 말하던 그 여자
"명숙씨, 잘 가요 " 

라고 다정다감하게 이름 불러 주던 그 여자

바다가 내려 다 보이는 이 언덕에서 아픔이 완전하게  치료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 여자가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바라 보는  펄펄 살아 있는 바다

그여자가 살아가는 동안  이곳에서 행복하였으면 ...

그녀에게 선물하나를 꼭 드리고 싶었는데 우연한 만남이라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민 해 보았는데 ...

아 참 생각이 났습니다 

그여자를 위해 아름다운 시 하나를 대문에 매달아 놓고  가야겠습니다

그 여자가 사는 작은 대문에 시가 걸려 있다면  참 잘 어울리겠지요.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 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언듯언듯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여하고 싶은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은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김칫독 안으로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허리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목화송이 같은 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히,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네집

어느날인가
그 어느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있던 집

여자네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이튼 정,의 집을 방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