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가을의 기도

이바구아지매 2009. 9. 28. 05:01

 

 

아침이면 물안개가 살며시 내려 앉는 마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을은 비밀스럽게 꿈을 꾼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전해 듣고 그 마을이 궁금하여

 이른 시각에 찾아 가 보았습니다. 

"천곡마을"

표지석이 오래 된 이끼를 달고 고독하게 서 있는 모습이 그 옛날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해주기라도 하듯..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끼 보다 도드라지는 그 무엇이 주렁주렁 매달려서 돌이끼에 멋을 더하더군요

바로 담쟁이입니다.

 

 

 

 

아침 햇살이 숲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에

한 늙은 나무를 만났습니다. 

나무는 온통 넝쿨로 휩싸여 나무 본래의 모습이  사라졌지만

특별한 느낌이 다가옵니다.

물론 넝쿨사이로 담쟁이 잎새를 끼운 풍경은 앤이  연출하였지만 나름대로 썩 잘 어울립니다.

가을이란 이유 하나만으로도  숲속의 분위기가 기도하는 간절함까지 묻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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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해 맑은 숲 속의 아침 , 나무 위로 나풀나풀 올라가서 그리움을 토해내라고

소리치는 담쟁이 잎새들의 하모니가 펼쳐지구요.

 

 

 

 

미리 떨어져 누운 모습은 또 어떻구요

처연한 모습은 아니지만  고와서 서럽습니다.

 

 

 

 

 

 

 

 

 

 

그래,

저 잎이 떨어지면

나의 생명도 진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어.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나뭇잎들이 떨어지면

내 인생도 끝이 난다고.


진실도 아닌 것을

진실로 믿고 있었다니...


그러고 보면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야.


난 이제 더이상

나뭇잎이 떨어진다고 해서

내 인생마저 끝난다고 생각지 않아.


할아버지께서 목숨 바쳐

내게 주신 교훈을

나는 도저히 잊어서는 안되지.


아무렴,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지.


할아버지의 죽음을

헛되이 해선 절대 안 되지.*********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중에서 ... )

 

 

 

 

 

그래도 툭툭 떨어져 눕는 잎새를 보니 왠지 공허해 집니다. 

 

 

 

 

 이렇게 올 가을도 나뭇잎새처럼 툭툭 떨어져 눕겠지요.

 

 

 

 

 

물안개를 품은 시골마을길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

 

 

 

 

더욱 허허로워지는 것은 요것 때문이죠

사람이 죽으면 가는 ...  묘지라는 섬뜩한 곳

 

 

 

 

 등 굽은 할아버지를 보는 기분도 허허로워지고

 

 

 

 

 

등 굽은 할머니를 보는 마음도 찡해지고 ... 

 

 

 

 

들녘에 서서 온 몸에 녹을 덕지덕지 달고 세월을 흘러 보내는 작은 양철집

고 귀퉁이에도 담쟁이가 기어 오릅니다.

담쟁이가 저리 기어 오르는 이우가 무엇인지...

 

 

 

 

이런 풍경에 그만 눈물이 납니다.

가을을 오지게 타는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 여자는 요새 마음이 몹시  아픕니다.

그래서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는 ...

근처의 나뭇가지가 떨구는 한잎의 잎새에도 그  꼴을 못봐 살짝 고개 돌립니다.

외로움의 포로가 된 그 여자가 보내는  요즘의 아침풍경입니다.

 

모두들, 가을 너무 타지 마세요

그러다가 가슴이 뻥뻥  뚫리면 어쩌나요? 

 

이렇게 얄궂게 버석버석 , 서걱서걱거리며 다가 온 가을이지만

진정으로 진정으로 "가을" 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