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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코앞이다.
하루,이틀,사흘...
차례상에 올릴 제수준비와
며느리대신 손자,손녀 책임지고 살림 살아주는 어머님께 고마움도 표시해야 하고...
잊지 않고 꼬박꼬박 형님집을 찾아주는 시동생부부와 조카들에게도
작은 정성이지만 잊지 못할 특별함을 선물하고 싶은데 ...
이래 저래 머리속이 복잡해진다.
생각이 많아지는 날에는 홀로 걸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바다를 낀 고현천을 따라 걸으면서 며칠 뒤로 다가온 우리가족의 특별한 설을 그려본다.
하늘은 겨울이여서 더 맑고 푸르다.
며칠 전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동치미 맛이 하도 단백하고 아삭거림이 명랑한지라
적당하게 곰삭은 무를 깍뚝깍둑 쓸며 하나, 둘씩 입안으로 톡톡 던져넣고 씹으니
그 아삭거림을 빛깔로 나타내라면 청자빛깔 보다 더 푸른,
그래서 파르라니 떨릴듯한 겨울 하늘 빛깔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해본다.
"매사의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음식맛도 그런기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성을 다하여야
음식의 제맛이 나는기라"
가끔씩 어머니로부터 듣는 말씀중에는
이렇게 며느리의 게으름을 질타하는 호됨이 살짝 들어 있다.
나 역시도 수십년동안 가정주부의 일을 계속해왔지만 그 일을 즐겁게 한 때는
손가락으로 꼽을만큼이다.
갈수록 자질구레한 주방일이 권태롭고 반복의 일상이 싫어진다.
어머니는 참으로 대단하다. 위대하다
한결같은 인내심으로 고추같이 매운 시집살이도 잘 이겨내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오늘이란 정류장까지 왔으니...
엊그제의 일이다.
출근 전 잠깐의 시간을 내서 어머니를 찾아갔더니
주방에 쪼그리고 앉아서 연신 도마에다 칼질로 토닥이며 바쁘셨다
"어머니, 뭐하세요?"
"설에 묵을 창난젓 담을라꼬 안 바뿌나 지은애비도 좋아하고 대전섭이도 억수로 좋아하는 젓갈아이가 "
"요번 설은 간단하게 준비해서 지내지요. 제가 도울 시간도 제대로 없는데..."
"고마 그런 걱정은 말고 , 내가 준비 다 하꺼마 지은에미는 와서 메상이나 들거라
아까까지는 이불 한 채 다시 안 만들었나 바뿌네 설이 다가온다꼬
지은애비가 결혼하고나서 딱 한번 덮고 무겁다고 이불장속에 그대로 둔 것도 요번에 솜 타서 두채로
만들었는기라 한번 볼래 따시고 폭신한기라"
"히야 새 솜이불 덮고 자면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예? 아마 신혼기분이 들겠지예 수고하셨어예"
라며 머쓱하니 서서 설준비에 바쁜 어머니께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어머니의 설준비는 이미 보름전부터 시작이 되셨다니 무슨 할 일이 그리 많으신지 ...
며느리가 엉망으로 어질러둔채 가버린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집안 대청소하시고
갖가지 나물도 미리 말려 두시고 생선 손질 잘 하여 삐득하니 말려 두시고 냉동실에도 언제 준비하셨는지
차례상에 올릴 생선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두 아들이 좋아하는 밑반찬으로 갈치속젓을 넣고 만든 콩잎장아찌, 깻임절임,무말랭이장아찌며
금방 막 담근 배추김치며 어머니는 일찌감찌 설준비를 시작하여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셨다.
미용실에 가서 뽀글뽀글하게 파마까지 끝내셨고 손끝이 정말 야무지고 정갈한 어머니의 설준비는 이제 나흘을 남겨두고 있는 시각...
요번 설 쇠면 일흔일곱살 되시는 어머니도
고까옷 입고 세배하던 어린시절이 살금살금 그리우실게다
이마에 굵은 주름이 석삼자로 골 깊게 패였지만
잘난 아들이 둘씩이나 있어 가진 것 없어도 마음 넉넉하고 푸근하실게다
어머니의 표정은 이미 감추실 수 없는 기쁨으로 넘쳐나신다.
고단함이란 마음으로 다 삯여진듯...
설이 되면 아들이 손자, 손녀들과 찾아와서 어머니가 어릴적부터 입맛 들여 놓은 그 손맛을 기억하며
맛나게 밥그릇을 비울것을 생각하니 그냥 기분이 좋아지신다.
"역시 이 맛이라고 어무이가 해 주는 젓갈맛이 제일이라요 "
라는 아들의 그 한마디에 차 뒷 트렁크가 미어터지도록 바리바리 고향의 반찬들로 가득 채워주실 어머니
다시 객지살이로 돌아 간 아들은 가끔씩 높고 푸른 하늘을 올려 다 보며
맑고 투명한 하늘이 어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하겠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옛날에 엄마 오리가 어린 아가 오리를 데리고 물가로 나갔다.
철부지 아가오리에게 헤엄치는 것을 배워주려고 엄마 오리는 열심히 열심히 수영을 가르쳤다.
시간이 점점 흘러 엄마 오리는 늙어서 헤엄치기도 포기하고
아가오리들은 엄마의 그 자리를 이어 받아 열심히 또 자신의 분신들에게 헤엄치는 법을 가르쳤다 .
설이 가까워지니 명절증후군이 살짝 생기려는 며느리 어쩌면 좋을지?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다 .
우리 어머니는 명절증후군은 커녕 아들이 온다고 벌써부터 싱글벙글 설을 기다리신다
손가락을 열번도 더 폈다 곱쳤다 그것도 부족하여 달력을 보고 또 보고...그리 좋으실까?
물론 착한 동서와 예쁜 손녀들도 기다리시고 ...
어머니는 왜 그렇게도 일을 좋아하실까?
며느리는 지지고 굽고 하는 일 지독히 하기 싫은데
이번 설에는 역할바꾸기 한번 해 보면 어떨까?
남편과 시동생이 차례상 준비를 하고 어머니와 며느리들은 탱자탱자
배 두들기고 누웠다가 앉았다가 고스톱을 치다가 밤 늦도록 친구도 만나고 새벽녘에 돌아오는 것
우리도 남자들이 하는 풍경 그대로 따라 해 보면 참 재미있을텐데...
반란이라구요? 정신이 어찌되지 않았냐구요 조상님께 이 무슨 망발이냐구요??
천만에요 여자들도 잠깐의 휴식은 필요하다구요 .
어머니, 우리 이번 설 특별하게 지내요 (며느리의 간절한 소원 )
자 그럼 우리 편히 쉬어볼까요?
역할바꾸기 아셨죠 딱 하루만~~~
대신 제가 어머니께 안마 해 드리고 차 태워 어머니가 가고 싶은 곳 모셔갈게요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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