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속 유월이 꼬리를 흔들며 달아나려 합니다
누웠다가 앉았다가를 몇차례 반복하다가
집 근처에 있는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 다녀오려고 집을 나섭니다
올해로 6.25사변이 발발한지 60주년이 되는군요
여전히 우리는 통일이 되지 못한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부끄럽고 슬픈 현실을 보면서...
경남 거제시 고현동 362번지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6.25사변이 발발하자
아무런 조건없이 우리나라를 도와 준 고마운 16개국이 있었습니다.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프랑스,캐나다,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태국
그리이스,네들란드,콜롬비아,이디오피아,필리핀,벨기에,룩셈브르크
우리는 오랫동안 그들에게 별다른 보상도 해 주지 못한채 '빚진자'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
한국전에 참전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다치거나 포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그리스와 터키 두 나라는 철저한 앙숙관계(화해했다는 소문이 있긴하지만)였지만
6.25 사변에 함께 참전하여 나라를 지켜 준 특별한 나라들입니다
다행히 올해는 6.25참전국에 감사광고를 만들어 전세계로 송출하고 있다니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하고 뜻 깊은 일입니다.
장마기간이라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산을 들고 다녀야합니다.
이 곳을 찾는 젊은이들이 있어 보기좋습니다.
6.25사변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세대이지만
전쟁으로 인한 휴유증은 (이산가족, 전사자, 전쟁부상자 등)
우리에게도 부모형제들이었기에 깊은 상처로 전해집니다.
탱크전시관을 지나갑니다.
전시관의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올라가면서 전쟁에 관련 된 중요한 인물들을 봅니다
인민복을 입고 뒷짐지고 서 있는 왼쪽줄 맨 앞이 전쟁원흉 김일성입니다
지구상의 유일한 왕조국가를 세운 ..
에스컬레이트 오른쪽에는 이승만대통령을 선두로
맥아더장군이
김일성의 뒤로는 모 택동이 서 있습니다.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자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포로들이 생겨났습니다.
무려 17만명이나 되는 포로를 따로 수용할 공간이 필요했으며
거제도가 포로수용소 최적지로 선택되었습니다.
섬이여서, 물이 풍부하여, 넓은 지역, 등등의 이유로 ...
디오라마관에서는 포로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상상하지
못할 끔찍한 격전의 모습과
친공,반공으로 나뉘어져 이데올로기의 사상, 이념 대립으로
포로수용소내의 또 다른 전쟁이 포로들간에 벌어졌으며 그 잔혹했던 살생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1950 년 6월25일(일) 새벽 4시, 모두가 잠든 사이에
북한인민군이 남한을 선제공격하여 왔습니다.
졸지에 당한 날벼락이라
순식간에 낙동강전선까지 적의 손에 넘어갈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일본에 머물던 맥아더 장군이
한국의 헤이그 대위로부터 전쟁이 발발하였음을 통보받고 즉시 날아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였습니다.
1950년 10월 19일 야간에 중공군 선두부대 12개사단이 입록강을 도강하면서
중공군의 개입 ,인해전술을 펼쳤습니다.
친공포로들이 심리전을 위해 무수히 만들어 낸 전단지들..
그런 와중에도 전쟁문학이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연표
1953년 8월15일 정부가 서울환도하기까지 .
휴전을 반대 해 보았지만
UN 측과 북한측에 의해 1953년7월 23일에 휴전안에 서명하었고 곧 휴전이 되었습니다.
UN측 대표 M.W 클라크 미군사령관과 북한측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 펑더웨이에 의해 ...
그리고 2010년 6월 현재까지 휴전중.
전쟁은 압록강 철교도 사정없이 쳐부수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양산한 포로들은 거제도로 ...
포로수송선
포로를 태운 LST수송선은 거제도의 장승포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초가집이 가득한 장승포항에 .
1951년 2월부터 6월사이
포로를 집결시킨 장승포항 그리고 군용트럭에 포로들을 태워
장승포,아주,옥포,연초삼거리를 지나 연사교 (MP다리)를 통과하여 고현일대의
포로수용소에
수용시켰습니다.
포로들의 생활은 어떠 하였을까요?
물이 귀해 빨래는 또 어떻게 했는지...
철조망에 빨래를 널어 말리기도 하고.
연극공연도 하였다니
놀랍습니다.
문화생활까지도 할수 있었다니.
짚차 , 돗드 준장이 탔을지도...
철조망속의 포로들
포로사상대립관
포로의 사상대립 ,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데올로기가 낳은 자식들
학살,폭동,투쟁
MP다리 ...
1952년 5월 7일 '돗드 준장'이 친공포로에게 납치되자
이 지역 주민 1,116세대를 소개시키고 출입을 통제하고 유엔군 헌병검문소가 생겼으며
곧장 다리 이름도 연사교에서 MP 다리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 연초교' 가 되었습니다.(여전히 우리는 MP 다리라고 부르고 있는역사적인 다리)
실제로 MP다리 모습은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된 다리입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거울처럼 맑아서 은어떼, 붕어,문저리,천어 피래미, 똥구등
별별 고기가 헤엄쳐 다니던
연초천과 고현만의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으로
MP다리 아랫쪽 공터에는 흥남에서 피란온 피란민들이
몰려들어 움막을 짖고 마을을 이루어 살던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MP다리가 빨강색 철다리라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
오늘날 ,전쟁의 상처와 아픔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MP다리 ...
실제로 MP 다리가 있는 연초면 연사리 임전마을의 '연초교' 이름을 달고 선 다리가
역사속의 생생한 생명체로 고증되어 제 역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포로검문소도 다리입구에 만들어 놓게된다면 생생한 현장감을 살려주어 좋을것같다는...
이 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MP다리를 지나가면서도 잘 모르고 지나갑니다
포로수용소가 시작되는 첫 입구이지만 무심코 지나가게 되는...
포로들이 목욕하는 풍경도 재현 해 놓았습니다.
급식준비 하는 ...
일반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가 이발도 해 주고.
전쟁은 아이들에게도 비켜가지 않고 그들을 덥석 물었습니다
나이어린 포로들이 많이 생겨났으며...
제네바협약과 국제법 관례에 따라 포로들도 독서는 물론 각종 운동까지 할 수 있는
자유도 주어졌습니다.
1951년 거제도의 전경입니다.
이때부터는 조선도시로 거듭나는 시기였죠..
2010년 현재의 거제도는 전쟁의 상처와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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