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용초도이야기(2)

이바구아지매 2010. 8. 2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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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시각에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걸어가는 곳으로

우리도 뒤따라 간다

대구아저씨께서 이미 알려 주신

포로수용소 흔적을  보러 부지런히  걸어가다가

 

 

 

 

 버스정류장에 들러  섬안내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여기서 대구아저씨는 자신의 집에  들러서   잠시 쉬었다 가라며

몇번이나  권하셨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나중에 들르겠다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섬할머니들은 억척스럽고  부지런하시다

그늘모자 눌러 쓰고 일하러 가다가   우리 부부를  만나자마자

더우니 포로수용소는 천천히 가도 시간이 충분하니

마을회관에  가서 우선 선풍기 틀어 놓고 시원하게 쉬며 휴식부터  취하라신다

용초도에서   마음씨 고운  섬할머니들을 만나니

오랜만에 친정집 다니러 온 느낌이 든다.

 

 

 

 

 

 

  정말로 용초도에 포로수용소가 있었구나

안내표지판을 보니 더위에도 불구하고 흥분이 먼저 찾아든다.

용초도의 포로수용소 흔적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서빨리 가서 만나 보고 싶은데...

 

 

 

버스정류장 그늘진곳에서  천진한 모습이 담뿍 묻어나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혹시 할머니, 이 곳에 포로수용소가 들어 올 때 지켜 보셨어요 기억나는 것 있나요?

어떻게 포로수용소가  이곳에  들어왔어요?"

"그때 일,  어제처럼 환하게 기억 나제

한밤중에 키가 팔척 장승같은 군인들이 큰 코를 앞세우고 막 들이닥치는기라

군함을 몰고 왔다쿠데

그라더마는 자고 있던 동네사람들을 다 깨워서는 저 건너  본섬(한산도)로 다 쫓아삐는기라

자다가 날벼락을 맞고 영문도 모리고 우리는 쫓기갔는기라 "

유또아(80) 할머니께서는 그날의 기막힌 기억은 용초도 사람들은 잊지 못할  것이라 하신다

코를 앞세우고 들이닥친   피노키오같은 사람들은 미군을 말함이었다

아직도 코큰 그들이 미군인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할머니의 증언중 

"제일먼저 새각시, 새처녀를 빨리 실어내라"

라는 말을 잊을수가 없단다 

멀개,오빠, 도금바우,작은영개,큰영개,느추레,탄기방,야소포,진두,하포, 

이삼

할머니의 말이 하도 빨라 정확하게 알아듣고 쓰기가 힘들다

기록은 하였지만 마을 이름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군함이  용초도에 들어 온 1952년 5월  어느 날 ~~ 

100가구의   용초도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인근 한산도로 내몰렸다.

소개당하기전

당국은  

용초마을이장님께 (000) 미리 연락을 취하여  주민들을 한산도로 옮겨 가라는 통지서를 보냈지만

별것 아닌줄 알고 그냥 포켓속에 구겨넣어 버린채 까맣게 잊고 있다가  

한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마을사람들

그때 미군들이 용초도에 들어왔을때는 섬이 비어 있는 무인도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뭔가 앞뒤가 맞지않는 얘기다. 무인돈 줄 알았으면 

 왜 소개하라고 통지서를 보냈을까?)

이장님의 사소한 건망증으로 졸지에 빈손으로 내쫓기어

소개민으로 전락한 불행했던 사람들

지금도 그 때의 일만 생각하면 몸서리쳐진다고...

(이들 할머니 중에는 60년전 6.25전쟁후 이 마을로 시집와서

전해들은  얘기를  한다는 것도 헤아려야한다.)

 

 

 

 

 

 

 

 

지금부터 58년 전 한 밤중에 쫓겨 간 마을사람들의

피난살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는데...

 

 

 

 

 

"배급을 주어 먹고 살려니 배가 고파 죽을지경이었제 

고생고생 말도 마라.  

너무 힘들어서 부산이나 마산으로 떠나간 사람들도 많은기라 "

그런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중에  또아할머니 옆으로 낫이 보인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난다.

 

 

 

 

 

" 팔대장승들 키는 전봇대만하고

코는 또 어찌그리 큰지  기이하게 생겼대 "

"할머니 그 사람들이 미군이었어요 코 큰 사람들 말입니다 "

 

 

 

 

 

"포로수용소가 생길 무렵이 5월이었제 보리가 익어 빠른집에서는 보리타작 조금했고 대부분은 못했는데

보리쌀이라도 들고 피난 간 사람들은 배가 덜 고팠제  그리 살기를 4년간이나 무시라무시라 "

그럼 왜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용초도,추봉도까지도 포로를 분산시켰을까 ?

그 해답을 찾자면  아마도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1952년 5월7일 친공포로들에게 돗드소장이 납치 된 사건이 있었고

악질포로들의 난동은 날이 갈수록 포악해져  수용소내에서는 또다른 전쟁이 연일 벌어지자

수용소내의 정보를 수집하여   비밀리에 북으로  보내는 등

이런 골치아픈 악질포로들을 분리수용해야 할 공간이 다시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 곳은 절해고도이면서 물이 풍부해야 하는 곳이었다

바로 그 곳이 '용초도'였다.

 

 

 

 

 

 

 

 

 

 

마침 중학생이 배를 기다리는지 ...이런 한낮에... ?

 

 

 

 

배가 도착할 시간이 아닌지?

다시 학생이 이쪽으로 온다.

 

 

 

 

 폰으로 게임을 하는지

문자를 날리는지?

하여튼 열중이다

한번 불러본다

"어이 학생~~"

 

 

 

 

무료하게 배를 기다리며 왔다갔다 하다가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한다

"사진 한장 찍어 줄래?" 

그리고 포즈를 취했다

버스정류장에서

가만히   사진을 확인 해 보니 없다

찍히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디로 가는 길이야  다니는 학교는?"

"한산중학교 2학년 김경민입니다"
정말 예의바르고 착한 학생이다

그런데 한산중학교는 낮에 가도 되나?

아침에  가지 않고?

오호라 배를 타고 다니는 학생들은 뱃시간에 조절하여

오후반으로 편성했나보다 학교측 배려로...?

 

 

 

 

 

우리 착한 경민이는 이장님댁 아드님인기라

배를 타고 한산도로 통학을 하는기라.

 

 

 

 

거제도 고현 참 살기 좋지요 ?

 거제시에서 둔덕과 한산도와 용초도를 잇는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했어요

그럼 얼매나 좋겠어요

우리의 소원은 다리를 밟고  한산도로 나가는 것

첫번째소원도 다리

두번째 소원도 다리

세번째 소원도 다리 ...우리의 소원은 다리...

 살아 생전에  그 다리를  걸어서 건너 한산도, 거제도로 가 보는기라요

그런데 거제시에서 한산도를 거제시에 편입해 주면 그렇게 해 주겠다고 하였고 , 

통영시는 그리되면  통영이 팍 죽어버린다고

거절했어요  이젠 그 간절한 소망이 물건너 갔는기라요  라시며 안타까워 하시는 할머니.

 

과연  그리되면  통영이 죽어버릴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훨씬 더 멋진 도시로 거듭날것 같은데

용초도는  또 언제까지나 절해고도로 남아 있어야 하나 ?

안타까운 용초도사람들...

 

 

 

 

 

 몸컨디션이 좋지 않은 남편이  도착하자마자 마을회관에서

그만 누워버린다

그리고 이내 잠들었고 .

 

 

 

 

 

 마을회관 벽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  8시도  안되었는데

에구머니 미안하게도

경민이가 다니는 학교는 피노키오가 다니는 학교인줄로 잘못 알았지뭔가

경민아, 미안 해 ...

 

 

 

 

 

 

 

 

회관에서 창문으로 찍어 본 용초마을 

 

 

 

 

 

경상대학교에서 기증한 책들  

 

 

 

 

 

우아 수준이 상당한 책들

용초도사람들의 지식수준  대단히 높다  

 

 

 

 

 

 100살까지 자신있게 살겠다는 각오도 대단하고.

 

 

 

 

 

 책이 있어 좋다

누군가가 찾아와서 책을 읽게 된다면

이 아니 보기 좋을까?

 

 

 

 

 

 

 

 

 

남편을 남겨 두고 홀로 나선다 . 

용초도 돌아보기...

 

 

 

 

 

용초마을회관을 나와 걸어서 500미터쯤 갔을까

그늘이 시원해 보이는 정자나무가 나온다

그 아래로  용초도포로수용소 안내표지판 이 나오고

 

 

 

 

 

포로수용소 안내표지판의 화살표를 보고 언덕위로 올라 가려다

용초마을에서 오시는 할머니들을 만나게 되었다

바닷가로 청소하러 가실거라고 들었는데? 

 

 

 

 

 드디어 코앞에 서신 할머니부대 .

 

 

 

 

 또아할머니는 뒷태도 이쁘시다

집에 가면 시원한 먹을거리 대접하겠다며 일하러 가는 도중에도 

 친절하게 손님접대를 생각하신다.

더운 여름에 섬으로 찾아 든 여인이 자신을 찾아 온 손님같은 모양이다

말씀만으로도   무지 고맙다. 

 

 

 

요기서 잠깐 쉬자시며.

 

 

 

 

 

 

 

 여름이어서 빛나는 정자나무 아래...

 

 

 

 

 연세가 많아서 다리가 너무 아파

이렇게 아이들이 타던 보행기에 의지 하고  걸어가시는  할머니들

여태 고생만 하시고도 용초도를 못 떠나시는 어여쁜 사람들.

 

 

 

 

 

또아할머니는 한산도에서 시집 오셨다고 하셨나?

이런 바보같이 또악이할머니의 친정동네가 어디였는지 빠뜨렸군  중요한  기록하나가 빠졌으니

가을이나 겨울에 꼭 다시 가봐야겠군

그 때 찾아가면  밭에 가득 심어 놓았던 고구마도 얻어 먹고 하룻밤 신세도 지고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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