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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골목길로 찾아 드는 버릇이 생겼다
남들이 보지 못한 것 찾아 다니기
골목길이 주는 드러내지 않은 매력을 찾아 꼬불꼬불 들어 가 보기.
시골집들은 대개가 그러하듯
골목길로 빙글빙글 돌아 들어가
비스듬하고 비좁은 공간을 지나가다가
어떤 경우에는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가
부딪힐정도로 좁은 공간의 골목길도 만나게 된다
추봉도의 골목길도 그랬다.
그렇다고 미로찾기 게임만큼 찾기가 어려운 길은 아니다.
학자할머니네에서 좁은 골목길로 내려 오다
탁 트인 큰 길 사통팔달길을 만났다
그리고 예곡마을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나 인사드리고
궁금한것을 여쭈어 보기도 하고.
오늘도 어김없이 추봉도에 있었다는 포로수용소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을 드렸더니
폐교가 되어버린 그쪽으로 함께 동행 해 주겠다고 하신다.
더운 날에
그런데 참 어이없게도
메모노트와 필기구를 차에 놓고 와버렸으니
설명 해 주셔도 금방금방 다 까먹어 버리게 생겼으니
헛수고 야무지게 하고 말겠다.
기억력이란 그리 믿을것이 못되므로.
이 마을에서 태어났고 여태껏 사셨다는 할아버지의 성함조차 까 먹어 버렸으니
이런 황당할데가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단 몇분뒤에 기억의 끄나풀을 놓아버렸는지 ...
이럴 때 가장 바보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필기구와 카메라와 메모용노트는 필수.
전쟁터에 총을 놓고 맨손으로 간 군인과 다를바가 없다
83부대며,군용헬기장이며 예곡마을 뒷쪽 산허리로 돌면 나오는 몇 개의 반공호며
다 알려 주시기로 하셨는데
차가 너무 멀리 있어 가지러 가기엔 조금 무리인듯...
아까 지나왔던 추원리쪽으로 할아버지께서도 무척 아쉬운듯
그냥 가신다 (그도 그럴것이 앤이 좀 매력적인가 ~~훨)
추봉분교쪽에도 다시 가 보는것이 좋겠지만 .
준비부족으로 정말 아쉬운 시간이 되고 만다
여태껏 이런 실수 해 본 적이 없는데
더위 먹었나? 골이 지끈지끈 아픈것이...
그런데 등때기는 또 어디쯤인가?
그냥 길 바꾸어 골목길 걷기로 ...
가끔씩 자신이 한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때
화풀이대상으로 걸어도 좋은 길 .
작은집 마당가에 예쁘게 피어난 꽃들도 보며 이번에는
할아버지께서 알려 주신 측백나무 숲으로 올라 가 보기로 마음 먹고.
들깨향을 맡으며 혼자 걷는 길.
추봉도에는 조가 잘 자라는 특산물인 모양이다
곳곳의 밭에 조가 고개 숙인 채 햇살에 여물어 가고 있다.
황토밭에서 팔랑대며 간간히 바람결에 날아 오는 들깨향도
조용한 추봉도에선 아가의 고사리손쯤으로 느껴진다.
꼬불한 길, 밭으로 가는 길을 따라서 걸어 간다.
바다를 바라보며 누워 있는 황토밭도 지나고
오래 된 이끼 다북하게 낀 돌담길도 지나고.
가다가 돌아서서 마을도 내려 다 보고.
고추밭에서 익어 가는 고추도 만나고.
그런데 울타리 대신 그물을 쳐 놓은 이유는?
흙냄새 좋고 바닷바람도 좋다.
돌과 이끼와 풀과 바람의 만남만 이어지는 추봉도.
포로수용소의 잔해들은 다 이런 풍경이 되었고.
집안 남새밭 같다,
제법 올라갔나?
우물터도 만났다
물은 맑아서 식수로 사용하는듯
물에 손대어 보니 아주 시원하다.
우물의 역사도 60년은 훨씬 넘었겠다.
해송과 바다그림
지금도 쉬지 않고 역사는 흘러간다
해풍을 마시며 자라는 밭작물들은 맛도 좋겠다.
떨어진 감
이런 튼실한 돌담들도 60년은 족히 되었을것이고 .
엎드려서 돌이끼 냄새도 맡아 보고.
혼자서 터벅거리며 걷는 발자국 소리와 헉헉대는 숨소리와
지친 심장소리도 함께 듣는다.
이곳은 몽땅 포로수용소 자리였다는데
이끼옷 입은 돌담들은 비바람 지나간 세월의 무상함만 느끼게 한다.
이제 세월이 조금 더 흘러가면 후손들의 눈에 비쳐짐은
정말 생경함만 ...
열심히 걸었는데
오늘도 불만족이다
준비부족이란 핑계일뿐 ...
비바람으로 무너져 내렸나?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돌담
성글게 생긴 그물울타리엔 날아댕기는 나비, 잠자리, 매미들이 걸려도
몸부림 잘 치면 빠져 나가겠다
어찌보면 인간의 욕심에도 작은 너그러움이 존재해 보인다
바람과 하늘과 바다와 ...윤동주님의 시 하나가 어울리는 바닷가 마을.
들깨밭을 총총히 지나가서 빨간 함석집 마루끝에 앉아 잠깐동안 쉬어 가고 싶다.
이미 오래전부터 혼자 걷는 고독을 즐겨서
이젠 혼자라서 불편한것은 없는데
오늘은 조금 지루해지려네 .
이쯤에서
나는 왜 걷는가?
라는 나에게로 향한 질문이 던져지는 순간
예곡마을회관이 나타난다
그래
걷는다는것은 또 다른 만남을 위한 준비 ?
단박에 지루함을 날려 버린다.
신선한 바닷바람같은
할아버지를 만난다
정현무(78)할아버지
저기 추원부락 앞에는 사자상도 있었제
미군사령부와 막사도 있었고
넓은 공터에서 깻단을 정리하는 할머니의 뒷모습도 사진속에 저장하며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마을
여름에는 흰모시적삼과
부채와 그늘이 ...이정도면 신선놀음?
포로수용소유적지 흔적이 거의 확인되지 않더라니
한산도에 소개당하여 몇년만에 다시 돌아와서
엉망진창이던 그 터를 개간하여 문전옥토로 바꾸느라
그 악몽들을 걷어 내어 버렸다고
먹고 살기 위하여
지금은 추봉도사람들도 악착같이 없애버린 흔적에 대하여 너무도
아쉬워 하고 있다고
전쟁의 상처는 그렇게 두고두고 마음에 짐을 지웠다고 ...
정부에서 조금만 더 일찍 서둘러 주었더라면
보상이라도 조금 해 주었어도
하긴 뭐 정부도 돈이 없었으니...
우린 참 슬프고 아프게 살았던 민족이었지
모질고 독한 가난한 살림살이 속에서.
할아버지의 말씀은 참으로 슾퍼 보였다.
추봉도의 바다빛깔은
하늘과 바다가 역활바꾸기한 모습이다.
추봉도의 살아 있는 역사 , 정현무할아버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손바닥에 적은 작은 이야기 .
빙그레 웃으시던 섬같은 할아버지
하얀 옷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백의민족
할아버지께서 주신 부채로
부쳐보니 바다냄새가 솔솔
상...쾌...해...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썪는줄도 모르겠어요
라니
한바탕 호탕하게 웃으시던 할아버지.
그리고 이내 쓸쓸한 침묵으로 ...
깻단을 말리려고
두 할머니가 바쁘신데도
바라보는 사람은 한가롭게만 보인다
그...림...같...은
그림같지 않는가?
젊었을 때
영화배우 신성일처럼 인물이 잘 생겼을것 같은 청년 정현무
추봉도 처녀들한테 인기짱은 두말하면 잔소리.
할아버지, 혹시 추봉도에 공룡과 익룡도 살았나요?
겨우 몇천만년전 일인데 기억 해 보세요
함께 뛰놀지는 않으셨는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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