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나의 소나기

이바구아지매 2011. 7. 3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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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소나기가  아침부터 달려가네 어디로 가는지... 억척같은 자갈치아지매처럼.

산도  바다도 왕거시리 빗자루로 후려치듯 투닥투닥  차르르 소리지르며   지나간다.  

오늘은 또 누구의  약속을 깨뜨리며 통쾌한  심술잔치를 벌리려고  ...?

작년 여름에도 소나기는 미친년 널뛰기하듯  달려가더니만 ...

 

소나기가 몰려오면  착한 약속은 곧장  쓰러지고 말지

난 다 알아  

 

그해 여름,   

내 시린 기억속에서도  그날은  무지막지 소나기가 퍼부었는 걸 ...

그날 가족들과  포도밭으로 떠날 때만 해도  하늘은 높고 햇살은 종일 불태울 기세였지

포도밭의 까만 포도는 천상의 과일이란 칭찬을 받아 먹고 까맣게 익어  

단맛을 꿀꿀내고  맛을 먼저  본 눈은  포도에게 맛있는 윙크를 끝없이  보냈지

햇살은 손바닥만한 잎새뒤에서도  살랑살랑 춤추며 미소지었고..

난 그날

1년만에 ,꼭 1년만에 만나기로 한 너의 모습을 애써 떠올려 보려  해도  통 기억나지 않았어.

하지만 얼마나 마음 설레었는지 ...

그런데 말이야  슬프게도

나는 그날 너랑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로부터  자꾸만  멀어지고 있었어.

조바심이 났지만 어떡하겠어.

 또하나의 나 ,그림자에게   약속장소로 나가보라 귓속말도 해  보았지만  무조건 따라가겠다고

우기니 어쩔  수가  없었어 .  그럼  멀찌감치에서  천천히  뒤따라 오라며 눈 흘겼지.

 그리고  김해포도밭으로 갔었어

식구들은 착한  내게서 무슨 낌새라도 챈것마냥 작정하며  놀려 먹으려는듯

무조건 포도이야기만 쏟아내는거야

오늘은 포도밭에서   맛있는 포도를 실컷 먹고 배부르면 포도밭 근처에서 방 빌려   아예 자고 가자고...

아 이 일을 어떡해 ...고민고민 ...그런  순간   빤짝하고  에디슨선생이 나타나서 살짝 힌트를 주지 않겠어...

드디어 때 맞춰서 배가 살살 아파오고  머릿속은 18살에 딱 알맞은 거짓말이 생각났고  엉거주춤한

거짓말이었지만 맛있는 포도맛에  따져묻지 않고 식구들은 너그러워져고.

 무사히 예쁜 거짓말을 통과 한 그날의  기분이란...

마침내 100m 달리기하듯 다다다닥 차를 타고 달렸지...부산역광장으로 ...

  하지만 우리들의 약속시간은 무심하게도 이미 다섯시간 전에  달아나 버렸어 ...그래도 , 그래도 혹시  네가 기다리고 있을까?

가다가 손가락점으로

'점아점아 콩점아'를 수 없이 쳐 보기도 했지만 점꽤에  확신이 서지도 않았어.

 '그래도 가 보는 거야  없으면 말고'

내 작은 발자국은  ktx만큼이나 빠르게 달려 가지 않았을까?그렇게 열심히 달려가다

그만 느듯없는 소나기를  만나거야    억수 같은  소나기가 갑자기   퍼붓더라고.

불길한  예감, 날씨는  1년만의 약속을 또  하나의 월남전으로 만들어버리려고?

다낭전투에서도 그렇게 비가 내렸을까?

억수같은 비 , 소나기 ...내려도 너무 내렸지 

나 살아 가는 동안

 그 해 여름 그날만큼 소나기가 세상을 순식간에 집어 삼키는건  보지 못했어. 

그날 빗속으로 얼마나 달렸을까?

약속한 부산역 광장의 시계탑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갔지만   ... 없었어

.비를 흠씬 두둘겨 맞고 역구내로 달려 갔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

허탈한 기분으로  한바퀴 휘이 돌아서  

다시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집으로 돌아 가는  나의 뒷모습은 얼마나 쓸쓸했을까?

하늘거리는 파란물방울 무늬의  원피스와 담청색  샌들도  본래의 빛깔을 잃어버린채

  심술궂게 물웅덩이를 찾아  철벅거리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어  슬픈  기분으로..

그런데 등뒤에서 빗소리에 묻어  날아드는  큰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어. 

"000, 너 비 그렇게 맞으면 감기 걸린다  여름감기 무서워  "

무심코  돌아보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작년 이맘때 본 녀석이 등뒤에서  나처럼 비를 맞고 서 있었다...

"나 비만 안 왔으면  계속 기다리려고 했는데 ...네가 올때까지...비 너무 쏟는다...

나   방금 막 기차표 샀어... 너무 젖었다 내가 닦아줄게 ...  "

하고 손수건을 꺼내 내  젖은 머리를 닦아 주려는데

"아니 필요없어  내가 닦을거야 "

지금  생각 해 봐도  난 참 고약한 계집애였어   

 우리가  처음 만난 그날도  오늘처럼 쌀쌀맞게 굴었지

일년 전 부산으로 가던 뱃전에서  처음 본 내게   말을 걸었다고, 악수를 신청했다고 퇴짜를 놓고 사정없이 

 뺨을 때려주었다 .그날 우리가 탄 배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탔던  '새마을호'였지

조금만 더 약 올렸더라면  어쩜 태평양 바닷속으로 밀어버렸을지도  몰라.

그날 내가 본 네  모습은 적어도  제법 잘 나가는 불량배 같았거든,,, .

"시간이 없네 곧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야  나 갈게 공부 열심히 해 그래서 원하는 대학도 가고...

이건  집에 가서 먹어 너 줄려고 조금 샀어 "

하고  무조건  빵봉지를 덥석 안기더니

냅다 달리는거야 훤칠한 키를 구부리며  소나기속으로  

잘 가라는 말도 하지 못했는데 저만 손 흔들며  달려 가더라...

 

오늘 만나면 작년 여름에 뺨 때린 것 정말 미안했다고,  꼭 사과하려고  했었는데...

 

 

 

 

 

  그래 그 때 적어도 착한 여학생답게  뺨은 때리지 말아야 했었어...

 

 오늘도 소나기는  누구네 약속을 또 깔아 뭉개려고 심술을 입에 물고  달려간다.

   벨기에의  워터루로 승리를 위해 억수같은 비를 몰고 달리던  나폴레옹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