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통영의 딸을 구해 주세요 ,오길남박사님, 힘내세요

이바구아지매 2011. 8. 1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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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통영이 술렁이고 있습니다 .

이미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조심조심 전해지던 이야기 속의 충격적인

진실은   바로 '통영의 딸'이 북녘땅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

 

요덕 정치범수용소는 지구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인간 생지옥으로

북한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곳입니다.

수용소에서는 여자들이 생리를 해도 닦아 낼  천 조각 하나도 없으며

,가슴을 가릴 천이 없어 동물처럼 생활한다고 합니다.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곳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버리지 않으면  

살아 남기 힘들기 때문에

자연히 동물화,야생화되어 사람이 짐승으로 변하게 된다는 악명 높은

 이 곳에 <통영의 딸>신숙자씨(69)와 딸 혜원(35)

규원(33) 모녀가  갇혀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통영시민들이

반드시  통영의 딸을 구해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서명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 현장(통영 롯데마트, 현대교회)으로  달려 가 봅니다.

 

 

 

신숙자 (69),오혜원(35), 규원(33)  모녀

 

 

이 사진은 1991년1월  작곡가 윤이상씨가 신숙자씨의 남편 오길남 박사에게

'다시 평양으로 가라'고 종용하며 건넨 6장의 사진 중 한장으로

사진을 찍은 곳은 '요덕 정치범수용소'라고 탈북자들이 증언했다는군요.

 

 

 

오길남박사의 저서, 요덕 수용소의 어둠속으로 잠겨버린

"잃어버린 딸들 오 ! 혜원 규원 " 중에서

 

 

신숙자씨의 고향은 파란 파도가 넘실대는  통영입니다 .

 

 

윤이상은 ....

 

 

윤이상 , 그 역시도 파란 파도를 그리워하며 한시도 고향 통영을

 잊어 본 적이 없다는 통영사람(산청군에서 어릴때 통영으로 이사 옴)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동향이면서 신숙자씨는  피해자가 되었고 윤이상씨는

가해자가 되어버린 꼴입니다.

이것은 분명 이들에게  두개의 조국이 존재하여 빚어진 비극입니다.

 

 

윤이상의 아름답지 못한 권유의 평양행, 재입북을  거절하고   92년 서울로

 돌아온 오박사는 자신의 입북 및 탈북과정과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습니다. 한번 살펴보도록 할까요?

 

 

오길남박사는 1942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부산고와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 한 뒤 독일로 건너가

1985년 브레멘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오박사는

국내 대학에서 교수직을 주겠다고 하였지만

독일 유학 중'민건회' 라는 재독 반한단체에 가입한 적이 있고
1980년 독일로 정치적 망명을 했던터라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국내대학의 교수직 제의를 선듯 받아 들이지 못하였고

 당시 간호사였던 아내가 교통사고와 간염에 감염되어 요양중에 있어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할 형편이었으며, 43세 나이의 그는 조바심을 내었고  

어려운 상황에 북측공작원 고정간첩 김종한이 던진 미끼와 윤이상의 권유로 북에서

연구하며 가르칠 수 있는 경제학교수직과 아픈 아내의 지속적인 치료를 보장 해 준다는

 달콤한 꾐에 쉽게 빠져들고 맙니다.

천권의  경제학서적을 챙겨 북에서 무겁게 가르쳐 보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입북했지만 

 마르크스의 진정한 뜻이 담긴 <자본론>1,2,3을 위시한 그의 경제학적 대작을 북측은 멀리하였으며

  교수를 시켜 주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대남흑색선전에 이용되었으며, 공작원으로 전락하는 등.

 

북으로부터  밀봉교육을 받고  공작원이 되어 독일로 돌아가 두 명의

유학생을 더 포섭하라는 지령을 받았지만 오박사의

부인은 공작활동으로 또 다른 피해자를 내지 말것을 당부하며

 곧장 탈출하여 가족송환을 요청하라고 했고,

 아내의 뜻대로 독일로 오던 중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서 탈출에 성공합니다.

오박사는 그후 5년 동안 독일에 거주하면서 윤이상에게

그의 가족 송환을 간절히 요청했으나

그는  그의 요구를 외면하면서 재입북만을 강요합니다.

윤이상은 “주석님의 은혜를 저버렸다”며 “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가족은 죽는 줄 알라”고 하였으며 .

 북한에 있는 부인과 딸의 수용소 사진과 육성이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를

전하며 북한 복귀를 집요하게  강요합니다.
하지만 협박을 단호이 거절하고 92년 서울로 돌아온 오박사는 자신의 입북 및 탈북과정과

북에 남겨둔 가족의 이야기를 쓴 책을 펴내면서 가족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지만 

 노력의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연이 언론에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북한인권운동을 펼치는

 한 시민단체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독일 등지에서 반한(反韓) 활동을 했으나 북한에 대해서는 결정적으로 오판한 많은

지식인들에게 경종을 울린 '한국판 실화, 파우스트'에 견줄만하다는 이 책은 북한을 이해하는데

있어 진실을 추구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매우 가치있는 사실적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줄것이라고 합니다.



 

 

 

방수열목사(50,통영시 동호동  현대교회 담임목사),

 

 그는 통영의 작은 교회 목사로

우연한 기회에 이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북한정치범수용소인 요덕에  '통영의 딸'이 갇혀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후

  통영의 딸이 풀려나서 그리운 땅 통영으로 돌아  올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잔악한 인간말살이 자행되는  요덕 정치범수용소가 사라지도록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요덕 정치범수용소의 잔악한 실상을  알리는 전시회도 하면서...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현재 이 서명운동은 힘이 실려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

 

 

 

 

 


 조선일보등 언론은 물론이며 방송3사 또한 이 사건을  이슈화하여 연일 보도하고 있으며

반기문  UN 총장에게도 통영의 딸이 고향에 올 수 있도록 노력 해 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사진전시회

 

 

 

 

 

제가 찾은 날도 중앙일보사에서 이른 시각부터 취재를 나왔더군요.

방수열목사님과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하였지만  중앙일보가 열심히  심층취재를 하는 바람에

인내심이 부족한 저는 다음을 기약하고 물러났습니다.

 


 

북한의  여섯개  정치범수용소

 

"툭하면 (국내)인권을 거론하던 민주당은 실질적 인권개선 효과 운운하는 모양인데, 효과 여부보다도

 ‘상징성과 절급성’에 더 비중을 두면 안 될까? 한나라당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표로서 대결하려면 이런 법안에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그런데도 미적거리는 한나라당은 집권 여당이 맞는가?

 얼마나 애절하고 안타까우면 통영시민이 팔 걷고 나서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한테 하소연했겠는가.

우리 정치의 무능함과 무기력에 한숨만 나온다."<시사매거진 서준원 정치학박사>


 

 


 현대교회 집사님과  동행 해 주신 백세청풍님도 서명행사에 정성을  보탭니다  

통영의 딸이 제발  살아 있기를... 그리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끝없이 기도한다는 사람들...

 

 

 

제발 살아 있기를...


신숙자씨의  통영초등학교, 통영여자중학교 동창인 김순자, 이선자, 주덕기 ,주길자 씨(왼쪽부터)가

경남 통영시 서호동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신 씨의 구명운동에 나선 모습.

통영의 눈물겨운 아름다운 우정을  봅니다.



 

 

 

통영시 도천동 윤이상 기념관에서

 

이번에는 도천동에 있다는 윤이상 기념관으로 갑니다.

기념관의 2층으로 올라가자 윤이상씨의 흉상이 보입니다 .

왼쪽의 '윤이상 씨의 '흉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만들어 보내 준

선물이라는데  당시에 이곳으로 들여 올 때도  말이 아주 많았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는 그의 세계적인 휼륭한 음악작품만  놓고 그를 평가 할 수 있을지.

기념관에  음악이 흐르고 있지만

클래식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해서인지 동서양의 화합이 주제라고 하지만 통 알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생각나는 것은 불쌍한 '통영의 딸' 신숙자와 그의 가족들뿐입니다.

신숙자와 윤이상 ...과연  음악처럼 용서와 화합이 쉽게 이루어질까요?

통영은  이 어려운 숙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조국으로 돌아가 내 지난 과오에 대한 죄값을 받고 조국의 힘으로

가족을 구출하는 것입니다.

 

 

 

 

 

 

 

 

통영 현대교회앞에서 ...빨강머리 앤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신숙자씨 모녀를 구하자는 서명운동은 

통영현대교회(통영시 서호동 171-15)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통영의 딸,

그녀는 결혼식날 웨딩 드레스도 입어 보지 못했고,  사진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발 살아 있어  주기를 진심으로 빌어봅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구명운동에 동참하는 우리가 되어 보는것은 어떨까요?

 

오길남박사님,

울지마세요 그리고  힘내세요.

북에 두고 온 1,000권의 경제학 서적도 꼭 되찾을 수 있을겁니다.

 

 

 

 

 

 



▲ 오길남씨는 “나는 가족을 파멸로 이끈 바보였다. 나는 꿈에서 아내와 두 딸에게 호소한다.

  짐승의 꼴이라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

 

 

여기는 통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