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엄마와 호박

이바구아지매 2011. 10. 2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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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엄마 생신날에 있었던 호박같은 일.

 

 

 

늙은 엄마를 닮은 호박 세덩이가 보자기속을 빠져 나와 산골처녀처럼 부끄럼을 탄다.

등 굽은 늙은 엄마처럼  밭언덕 풀섶을 숨가쁘게  헤쳐 나와

둥글넙적한 모습으로 내게 왔다.

엄마가  키운 누르탱탱한 호박은  엄마랑  참 많이도 닮았다.

 

여든 여덟  해 세월을 꿀꺽하고도 뱃구리가 차지 않아 늘 배고프다시는 엄마

한끼라도 건너뛰면 이제  양푼이밥도 모자라겠다며  너스레를 뜨신다.

 

"요새는 금방 먹고도 돌아서면 또 배가 고프네 

예전에 아버님 하루종일 배고프다 하시어  숭측을 직인다  (호들갑과 엉터리로 ) 했는데

늙으면 종일 먹는다는 말이 틀린말이 아니더라 내가 그 짝이 난 모양이야

 작년 다르고 올다르다네 " 

 

라시며 초라한  모습을 보이게 되어  미안하다신다.

곱게 늙지 못해서.

그게 어디 자식 앞에서  미안할일인가 세월의 수레바퀴가 삐뚤거리며 모나게 굴러가서 그렇지 ?

.

 

등 굽은 엄마가 들고 온   못난이   호박이나

갈수록 처연해지는  엄마의 모습이나  오십보 백보다.

삐뚤빼뚤  마음대로 생긴 호박에 난 골은  

 엄마가 시집올때

 가마타고   재너머 외가를 떠나 왔다는   산길처럼  꼬불거린다.

 

 

가난한 날의 대명사인 몽실언니를 닮은듯도  하고  어찌보면 간난이를 닮은듯도 한  생김새의 호박.

 

아기 낳은 산모에게 붓기 빠지라고  푹 삶아  주면 산모의 퉁퉁 부은 붓기는 제대로 쏘옥 빠질까?

  채칼로 밀어  장작불에  무쇠솥 뚜껑 달구어 호박부칭개로 편편넙적 구워내면   단맛이라도  옴팡지게  날까?

나를 따라 집에 가서  베란다 한쪽 구석 차지하고  겨우내  시골집 언덕배기 풍경처럼 또아리 틀고 앉아 내다 볼까?

 

 

 엄마,

 작년까지도  빳빳하던 등이  오늘보니  제법  굽어  유모차를 밀어야 할 신세가 되어버린 

누군가가 붙들어 주어야  할 

그런  엄마와 호박은 닮아도 너무 닮았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홀로 사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만 하시는 엄마 .

 

어린시절, 기억속의  엄마는  친구들의  엄마보다 훨씬 더 늙어 보여 막내딸의  눈에 눈물 나게 하더니

축하 해 드릴 자리에서조차  

7년대한 가뭄에 논바닥 벌어지듯   투박한  손과 발을 보고  딸은 안타깝고 면목이 없다.

이제  앞이  거의 보이지도  않으며  동네에서  손순경으로 통했던 

 엄마의 활기찼던  목소리도 이제 힘을 잃었다.

너무 늙어버려  미워진 엄마를 보고

우는 딸을 행해

 

" 사는것이 별것 아니야   사는대로 살아보거라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인기라

다 그런거지 뭐 사노라면 웃는 날도 안오것나  참고 살아야지 참고...그 끝에는 웃는 날이 오기도 하더라.. "

 

늙은 엄마는 오십줄에 걸터앉은  딸이 아직도 막내답게  투정부리는 줄로 착각하신다..

삶이 고단하고 팍팍하여 그러는 줄 알고 ...

 

 

생일날   식당에서 가볍게  추어탕 한그릇이면 족하다고  한사코 우기시며

 그 마저도 부담 느껴 못난 딸에게 호박선물  하는 염치주의(겸손과 양보 순수와 부끄러움을 아는) 엄마?

 .그래서 펑펑 울었다.

호박같은 세상이라고...

까칠하게 굴었다.

 

엄마의 막내 딸,아직도 철이 들지 못했다.

 하얗게  웃으며 생신을 축하한다고 외치며  큰 소리로 노래 불러 드려야 했는데

엄마 마음 몇곱절 더 아프게 하고 말았다.

언제나 엄마를  가슴으로 울게 만드는 별난 재주를 가지고 태어난 딸인지라 어쩔 수가 없나보다.

집에 돌아가면 죄 없는 호박덩이에게   화풀이 실컷  할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사위  j서방은 어린시절 너무  먹어서 질려버렸다며 이제  호박이라면  꼴도 보기 싫다고 하니 

 못 먹는 호박에 말뚝박기 놀이나 한번 해 볼까?

  고약한 심술보를  가진 놀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