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한 바퀴

엄마의 하늘바다에 '북새가 떴네'

이바구아지매 2013. 9. 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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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새가 떴네'

 

 

 

해질녘,

 어스름이 사방을 물들이는 시간,

무심코  눈길이  베란다를 넘는다.

  여름을 걷어 내는 마지막 광기인 양 하늘은  붉은 토악질로  바다를  

단박에 선연한 핏빛으로 물들였다.

 

 

 

언젠가 봄빛 스러지던  날 ,

지심도의 동백숲을  따라  걸어간 적이 있었다. 

동백나무 우거진 숲을 걸어가는데,

 

빨간 동백꽃송이가  '톡'  하고  떨어지더니 곧장  언덕을 타고  굴러가서 

적당한 간격으로 흩어져  

길고 빨간  동백꽃터널을 만들었던  동백꽃의  그 봄이  다시 생각났다. 

나무위에서 한번 ,  땅에 떨어져서  또  한번,  

두 번 꽃을 피운다는

동백꽃은 그날  처연하게 아름다웠다.

내  기억 속 해마는 지심도의 추억만으로   배고픈지  이번에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디 젊은  나이의  엄마를  다시  떠올렸다.

 

 

기억속의 엄마는  그랬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해질녘이면 

언제나  마당가에 서서  먼 하늘을 올려 다 보며

 입버릇처럼  한마디의 독백을 하곤 했었다.

"북새가 떴네

오늘 북새는 뉘집 각시처럼  참하네 .

나,  시집 올 때 입었던  여섯폭  다홍치마 색깔이네"

또 다음날은 

" 오늘 하늘로 뜬 북새는  '이금이 ' 시집 올 때 신었던 비단꽃신 색깔이네"

어느날은   또  

"오늘 북새는 바느질 솜씨 좋다고 십 리 밖까지

소문났던  울어매가  챙겨준 

 반짇고리 속  골무색깔을 하고 있네 "

어느날 해질녘엔   또

" 음력 칠월 열아흐렛날 저 북새는 

까만 머리 쫑쫑 땋아  동여매고  중매쟁이 중매서겠다고 찾아오던 날

부끄러워 건넌방에 숨어 

일없이  만지작거렸던 그 고왔던  댕기색이네  "

라시며 연신  중얼중얼 하셨다.

 

어린 내가 엄마옆에서  보았던 하늘바다를 물들인  북새는   

오빠가 읽고 있던  책  스탕달의 '적과 흑'  토마스 하디의 '테스'

책 표지 색깔이랑 비슷하게 닮아 있었다.

또 한 권의 책으로  만났던  강한 빛깔 하나는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백설공주'

  작가 야코프 그림(Jacob Grimm),

그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백설공주로 고쳐 써내려 갔고, 책은  

세상의  어른, 아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백설공주를  탄생시켰다. 

권선징악의 주제가  깔려 있는  백설공주는

못된  마녀 왕비가  예쁜 백설공주를 죽이려고  건넨

 독이든 사과를  받아든다.

착한 백설공주의 작고 흰손에 들려

공주의 입속으로 들어가기 전  

다홍으로  고혹적이던  빛깔의 사과 역시

 오래오래 기억의 창고에  들어 앉았다.

 

 

2013년 9월3일 ,

 음력 칠월 스무여드렛날  저녁 7시 3분경

북새로 물든 다홍의 바다는  또 하늘이 물들인 놀라운  미장센이다.

아름다움을 읽는 심미안으로   바다를  깊게 들여 다 본다.

 

  엄마가  가마 타고 시집 올 때  입었다는 고운치마 ,

 언젠가  아버지 찾아

 가는 길에   입고  갈  엄숙한 옷이라며

장농속 깊숙한 곳에   넣어둔 

6폭 다홍치마  펼쳐 놓은 빛깔이다.

 

오늘은 나도  다홍으로 북새 뜬  하늘바다가 사라지기 전 엎드려 흠뻑 마셨다.

 

엄마의 찬란헸던 하늘바다의  북새,

그 순수를 생각하며 ...

 

 

 

 

 

 

 

 

 

 

 

 

 

 

 

 

 

 

 

엄마의 하늘바다엔 언제나 다홍의  북새가 물들어 있었다.

 

 

 

 

 

 

 

 

사랑해  북새,  '노을'의  방언으로 거제, 통영,고성,진주,남해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아름다운 말

 

 

 

 

 

2013년 9월3일  오후 7시 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