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나타샤를 노래한 오장환, 백석, 김광균

이바구아지매 2013. 10. 2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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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고향이 있어서

 

      오장환

 

 

잠자는 약을 먹고서

나타샤는 고이 잠들고

나만 살었다

 

나타샤는 마우자. 쫓긴이의 딸

나 혼자만 살었느냐

고향이 있어서...

 

또 다시

메르치요. 메르치요. 메르치요 메르치.

매양 힘에 겨운 사무를 보고

점심시간 지붕우에 나오는 즐거움

 

나타샤의 어머니와 마조 앉으면

우리 옛날은 모조리 잊으십시다

어두운 지붕 속에서...

 

엄마가 주무시던 밤

높은 다락 안에서

능금이 썩는 냄새에 잠을 못 잔 밤이 있었습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이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탸사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눈 오는 밤의 시

 

                        김광균

 

 

서울의 어느 어두운 뒷거리에서
이 밤 내 조그만 그림자 우에 눈이 나린다.
눈은 정다운 옛이야기
남몰래 호젓한 소리를 내고
좁은 길에 흩어져
아스피린 분말이 되어 곱-게 빛나고
나타-샤 같은 계집애가 우산을 쓰고
그 우를 지나간다.
눈은 추억의 날개 때묻은 꽃다발
고독한 도시의 이마를 적시고
공원의 동상 우에
동무의 하숙 지붕 우에
카스파처럼 서러운 등불 우에
밤새 쌓인다.

 

 

 

3편의 시는   '나타샤'라는 이름이 공통으로 등장하고 있다.

 

 

★.

오랜만에 꾼 꿈을 하얗게 기억하며 새벽 2시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꿈도 없는  날을  재미없이  잠만 자다 깨어나는 정도가  일상이었지만

간 밤의 꿈은  선연하였다.

나와는  1%의 관련도 없어보이는  

러시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름의

' 나타샤'가 나타났다.

뜬금없이 꿈속으로 나를 만나러 온  나타샤를 자다밀고 

일어나서   검색을 시작 했다.

 친절한 검색창은  나타샤가 등장하는 3편의 시를 찾아

안내 해 주었다.

 

오장환, <고향이 있어서>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김광균, <눈 오는 밤의 시>

 

 

"나타샤는 마우자, 쫓긴 이의 딸 "

  오장환의 < 고향이 있어서 > 가 먼저  고개 내민다. 

마우자는  러시아 사람을 가리키며 

<아라사의 소문이 자주 들리는 곳>

러시아 혁명 후 탈출한 백계 러시아인이  그쪽과 만주에 흩어져 살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길고도 구별이 잘 안되어서 러시아 소설 독자들을 어지럽게 해주는 인명 가은데서 나타샤는

 소냐와 함께 아주 친숙한 여성 이름이다.

그래서 백석도 김광균도 서투르게밖에 시를 쓰지 못했던 사람들까지도 나타샤를 노래했다. 

 

 

북국 여성의 이름이 눈과 함께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백석의 시에서는  흰당나귀까지 곁들여서 환상의 아름다움을 돋운다.

좋아하는 먼 사람에게 붙인 이름이든

실제 마우자의 딸이든 나타샤라는 고유명사는 작품 속에 현실치외법권적인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이에 비한다면  오장환의 작품은  나타샤를 주제로한 기상곡처럼 들린다,

화자와 나타샤가 쓸쓸한

사랑을 하고  스물한 살이 안된 나타샤가  잠자는 약을 먹고 죽었다는 사실밖에 분명한 것은 없다.

나타샤라는 이름을 마음껏  

써보기 위해서  씌어진 이를테면  기호의 선율이다.

오장환의 작품은  분명히 실패작이다. 그러나 성공한 시보다 실패한 시가 

 시의 성질을  더 잘 드러내지 못하란 법은 없다.

시는 탐나는 말 특히 그 기표를 두고 시인이 벌이는 사랑놀이기도 하다.

또 나타샤라는 북국의  여성 이름에 혹하여 가상적  그녀와 사랑을 하고  흰당나귀 타고 

 장가가는 꿈을 꾸게 되었으며 그것이 백석 시로

귀결되었고, 그러한 한에서 나타샤는 기표가 단초라고 생각해 보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참고자료출처 <시란 무엇인가> 유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