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뱃길...

와리다순경과 총무계장

이바구아지매 2006. 6. 21. 17:01

내가 살던 고향집 앞에는 아직도 일제시대에 지어서 쓰던 파출소가 조금의

흔적을 가지고 오랜세월의 무상함을 말해 주고 있다.

나는  면내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과  결혼하였기에 친정과는 20여분 거리내에 살고 있어

자주 친정에 들린다.

다른사람들은 파출소앞을 지날때 왠지 무섭다고 하지만 내게는 소중하고 그리운 길이 되어 준다.

남들이 지나가기조차 꺼려 하는 이곳에  어릴적 추억이 고스란히 베어 있는 '나의 길'이 되어 주는 곳.

 

 

그 날도 나는 공주님 역할을 담당했다.

왕자님은 '와리다순경'의 아들 그 애 이름은 아주 오래 전에 까  먹어 기억이 안 난다.

공주님과 왕자님은 우리집 마당에서 곱게 놀았다.

"왕자님 식사하시어요,"

"공주,같이 먹읍시다."

왕자님, 사냥은 안 가세요?"

"예 공주님이랑 소꿉놀이나 합시다."

우리집 마당은 어린 나의  눈에는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었다.

한창하던 소꼽놀이가 질리기라도 하면 이번에는  꼬챙이로 줄을 그어 놓고 누가 먼저 달리나 힘껏 달리기도 했다.

'전쟁놀이,칼싸움'도 하고...

 

왕자님은 나와 동갑이었고 와리다순경과 총무계장도 동갑이었다.

와리다순경은 왕자님의 아버지였고 총무계장은 우리 아버지였다.

어린 기억에 두분은 정말로 친하셨던 사이였다.

와리다순경의  아저씨는 지서 관사에서  왕자님이랑 예쁜 아주머니가 살았는데

가끔씩 나를 데려가서 찐빵도 만들어 주고 과자도 먹게 해 주었다.

과자 구경도 하기 힘든 시절에...

 

와리다순경은  우리 아버지와 닮은데가 참 많았다.

술을 좋아하시고 사람들을 반가워하시고 도대체 순경이란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 우리는 마당에서 놀이에 푹 빠져 있으면  와리다순경과  총뮤계장은 앉아서 술을

마시며 껄껄 웃으시다가 또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우리아버지의 18번노래 '애수의 소야곡'

이란 노래를 멋지게 부르셨는데 그렇게 노래하다 두 분은 잠이 들곤 하셨다.

 

그 때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를 '총뮤계장'이라고 불렀다.

공무윈 생활을 하다가 그만 둔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습관이 되어 그랬는지 계속 그리 부르고 있었다.

 와리다순경은  일본 사람도 아니고 말씨는 이북말씨였는데...

 

별명에 맞는 이유가 분명코 있었을텐데 끝네 물어보지 못한채 내가 어른이 되고 말았다.

어린 내 눈에도 와리다순경은 경찰직업이 맞지 않아 보였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하시는 말씀이

"총무계장,우리 사돈합시다.'

'그럽시다. 좋습니다. 좋아요."

그 말은 왕자님과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관사에 자주 놀러가서 맛있는 찐빵과 밥도 먹고 대접을 잘 받았다.

왕자님의 엄마는 참 젊은것 같았다.

나를 이뻐해주니 자주 가고 또 우리집에서도 매일 어울려 놀았던 것

 

그 날은 우리집 마당에서 따뜻한 했살을 받으며 놀고 있는데 왕자님이

총을 들고 왔다.장난감 총과 까만양복을 멋있게 차려 입고 왔다.

정말 피부도 하얗고 멋진  왕자님이었다.

우리는 장독대에서 놀다가  마당귓퉁이에서도 한참을 놀았다.

절구통안에도 총을 쏴대며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왕자님이 기침을 해대더니

빨간피를 쏟아냈다.

나는 무서워서 울어버렸다.

그리고 왕자님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프다고?

 

 

 

며칠 뒤 아버지는 밥상을  받으면서

"불쌍하지 너무 안됐어. 와리다순경 하나 밖에 없는 혈육인데"

"우리 산에 묻어야지요?"

엄마도 슬픈 얼굴을 하셨다.

"그래야지"

 

 

 아이가 죽으면 애기장이라 해서 항아리에 담아서  묻는다고 했다.

왕자님이 죽은 것이다.

결핵을 앓고 있었단다.

왕자님은  아직도 우리산에 묻혀있다.

와리다순경은 슬픔을 안고 다른 곳으로 더나버린 뒤 통 소식이 없었다.

내가 어른이 되도록....일곱살때 일이다.

지금도 친정을 갈때마다 지서앞에 서 있는 커다란 사쿠라  꽃나무와 100년은 훨씬

넘은 작은 화장실의 모습을 본다.

와리다순경도    지금쯤 돌아가셨을 것이다.

총무계장님은 내가 결혼도 하기 전에 돌아가셨고 지금쯤 하늘나라에서도    두 사람이 만났다면 한 잔 쭉 드리키실게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 저런 추억을 안고 살아 간다.

이런 추억은 아련하고 슬픈 추억이다.

 

 

 

29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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