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행복,사랑, 그리움

이바구아지매 2007. 1. 26. 07:21

 

 

이른 새벽 나 혼자 컴앞에 앉았다.

 

분위기를 잡아본다.

 

음악이 잔잔하게 흐른다.

 

'메기의 추억'이  노래 되어 리듬을 타니 가슴속에서 웅크리고 수십년동안

 

잠자고 있던 정리 되지 못한채 다락방으로 오른 오래 된

 

그리움들이 또아리를 풀고 스물스물 기어나와

 

추억의 모자를 벗는다.

 

'나를 아시나요?'

 

'나를 한 번 떠 올려 봐'

 

'왜 나를 쳐 박아만 놓아요?'

 

' 나도 컴컴하고 칙칙한 다락이 싫어요'

 

이리 데모를 하네.

 

다락에 쳐 박아 놓은 것들 중에는 여러 개의 '스크랩' 바인더들과  오래 된 일기장들...

 

우리 신랑이 보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이야기들도 잠자고 잇다.

 

그렇다고 내가 다락을 오르진 않는다.

 

생각으로 정리를 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생각하니

 

행복해지고,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벅차다.

 

먼저 스크랩 바인더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봐야지...

 

이 스크랩 바인더는 다섯권으로 분홍색3권과 초록1권 노랑1권으로

 

3권정도는 우리 아이들의 글솜씨와 내가 써 준 쪽지편지( 도시락편지)

 

이 도시락편지는 우리 큰 딸 지은이가 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때까지 도시락을 싸주며

 

맛있게 먹으라고 노란색쪽지에 메모글 넣어 준 글

 

그리고 글을 한자씩 알아 가는 큰 딸의 신통함을 스크린에는 못담아도

 

꼭 흔적 남기고 싶어서.

 

시, 산문, 동화, 만화 등을 엉뚱발랄하게 표현한 게 좋아서...

 

그런데 연필로 쓴 글씨들은 세월과 함께 흔적을 지워 가고 있을 것

 

다시 정리하여 스캔으로 떠서 남길까?

 

스캔이 타버렸는데 돈이 마련 되는데로 다시 구입 할 예정이다.

 

스크랩속엔 내 주위에 내가 아는 사람들이 활자속에 나올때는 어김없이

 

했다.  93년도에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이영진이로부터 역시 서울대 법대를 나와

 

검사가 되었는데 옷 벗고 송광사로 간 대성스님(옥영보)

 

그리고 자잘한 감동을 준 '고부일기'를 낸 어느 평범한 아지매랑

 

카페를 잘 운영한다고 소개 된 선배 '조정숙'  이 외에도  무수히 많다.

 

스크랩한 내용들은 나의 관심사들이라서 이사를 다녀도 버릴 수 없는

 

돈과는 무관하지만 나의 정성이 들어 있는 소중함이다.

 

우리 신랑이 별 좋아안 할 내용은 역시 일기인데

 

오래전 그러니까 서울에서 한 동안 살다가 돈 떨어지고 고향으로 귀향하였을 때

 

몇년간 느낀 넋두리와 가슴아픈 상처가 들어 있는 일기장몇 권

 

그 일기장엔 내 삶의 악몽들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 일기장엔 손을 대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쓰는 버릇땜에 누구에게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실생활의 발가벗은 그대로가 들어 있다.

 

우리 신랑이 본다면 아마 불태워 버릴지도 모른다.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고시공부하면서 힘든 내 생활과 어느 날 남편이 좀 이상한 행동을보였을 때

 

그리고 한달가까이 는 나도 살아 있다는 생각이 아니 들때 이야기다.

 

내 인생의 최고 힘든시기였다.

 

그 때 주변에선 고시공부하다가 자살한 사람이야기도 내 주변에서 들릴 때였다.

 

나는 늘 웃었지만 마음이 병들어가고 있을 때

 

한마디로 나는 두 얼굴로 살았다.

 

마음은 병들어가고 육체는 웃어야하는 ...

 

그리고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도 아빠의 흔들리는 나약한 모습으로

 

살던 그 시절의 일기장 색으로 말한다면 회색이었다.

 

 

서울이 그리운 이유는 바빴지만 젊음과 꿈을 향해 도전했던 시절이었으니???

 

서울이 그리운 이유는 내 주위엔 꿈을 이룬 사람들이 포진 해 있었다.

 

안암동시절엔 시인'박목월'의 아들인 '박동규'님이 서울대교수로서 바로 이웃에 사셨고

 

좋은 책만 펴 내는' 한길사'가 내 이웃이었고 안암동호랑이가 우리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물론 서울대근처에도 살았다.

 

울신랑이 다니던 고려대학교랑은 너무 멀어 안암동으로 이사했던 89년

 

첨엔 안암동동네가 6.25의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 있어 무척 불편햇지만

 

대학의 젊은 열기에 역시 행복찾기에 성공했다.

 

지금에사 생각 해 보면 나는 서울을 사랑했고 이제는 그리워하고 있다.

 

서울 사는 친구들이랑 더 친하는 이유는 내 삶의 활력과 꿈을 이루어가려는 과정이

 

그 곳에서 시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젠 다 과거다.

 

젊음을 언제까지나 내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순진함이 있었고...

 

또 한가지 애틋하고 사랑하는 것은 한 권의 앨범이다.

 

우리 큰 딸 애가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로 가져 가서 못 돌아 올 뻔한 것

 

'흑백사진 모음집'

 

여긴 우리 친정집의 역사가 살아 숨쉰다.

 

일제 강점기의 역사가 그대로 사진속에 있다.

 

울아버지의 학교생활, 할아버지의 그시대 복식과. 일장기를 단 학교, 일본순사, 일본 선생

 

그리고 구식결혼의 모습,  이 밖에도 그 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여러가지 사진들이다.

 

영도다리가 배 지나면 올려 주던 모습 전차가 다니던 길

 

어린 내가 부산 살때 찍은 사진들...

 

이런 사진을 보며 그리움이 묻어 나는 것은 당연지사

 

흑백사진속의 백미는 나랑, 울신랑이 나란히 서서 초등학교 사진을 박은 것이다.

 

친구들은 말한다.

 

"자세히 잘  봐  둘이서 손도 잡았네 에구 웃긴 것들..."

 

오늘 아침 나는 과거의 나를 한 번 찾아 되돌아 가  보았다.

 

어느듯 희멀건하게 아침이 도착했다.

 

또 짬이 나면 내 지나가버린 흔적찾기를 해 보며 지나간 삶을 반추 해 보는 의미 있는 시간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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