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하늘을 들여 놓자.

이바구아지매 2007. 2. 6. 11:10

 

 

우리집엔 하늘이랑 참 가까운 문이 있다.

 

주방에서 여닫이문을 열면 바로 하늘이 성큼 다가 와 있다.

 

요즘은 추워서 주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하늘을 들여 놓지 못하지만

 

봄이 되면 활짝 열어 젖힌다.

 

입춘이 지나니 봄바람마냥 좀 따사로와서 여닫이문을 휑하니 열어 보았다.

 

문을 여니 아직은 찬바람이 떼지어 몰려 든다.

 

바람 뒤로 드넓은 하늘밭이 들어 온다.

 

"엄마, 하늘이야, 햇님이 일을 시작했어. 낮엔 해님이 일하고 밤엔 달님과 별님이

 

일하잖아."

 

"그래 그렇구나 ... 하늘아, 참 오랫만이다. 널 보는데도 서너달 걸렸네?"

 

"엄마, 노래 불러 줘"

 

"그래, 엄마 별이 올라갑니다."

 

"아니야, 가나별이 올라갑니다. 엄마별이 올라갑니다. 아빠별이 올라갑니다. 지은이언니 별이 올라갑니

 

다 소담언니별이 올라갑니다."

 

노래도 욕심내어 다 불러 볼 요량인갑다. 떼쟁이, 욕심쟁이 우리가나

 

"귀염언니 별이 올라갑니다. 범일오빠별이 올라갑니다.깍지 찌고 올라갑니다."

 

"그래서 어찌 되었을까?  북두칠성 되었습니다."

 

 

 

하고 맞장구를 치자

 

"북두칠성 별이 일곱개지 엄마. 우리집에도 일곱명이지 그래서 북두칠성이 되었잖아."

 

우리가나는 북두칠성이 우리별인 줄 안다.

 

우리가족이 일곱이라서 그기에 맞추어 여름날 밤엔 손으로 가르키며 별을 세는  걸 알려 주었더니

 

어느 날 부터 이렇게 노랠 부르기 시작했다.

 

국자모양으로 새긴 '북두칠성'이 우리집 별이 된지는 오래 전이다.

 

우리가나가 옹알이를 할 대부터 그리 가르쳐 주었으니

 

가나는 또 다른 별들은 할머니별, 외할머니별, 삼촌별, 친구별 윤별이할머니별 ... 아는 사람은 다 별을

 

달아 준다.

 

별을 헤기도 하고 노래도 하고 동화도 만들고 별을 보면 참 할 일이 많아진다.

 

꿈도 생기고...

 

 

내가 어렸을적에 울아부지도 별이 유난히도 밝은 날 날 데리고 넓은 마루에 나와서

 

별무리를 보며 어떤 이야기하나를 해 주셨다.

 

오래되어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글쓰기(서예)를  연습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밤마다 마루에 나와서 엄지손가락으로 힘주어 하늘의 별을 보고 한일자만 긋고

 

방으로 들어갔다.

 

매일 그 사람은 그리 했단다.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얘야, 글쓰기 연습은 언제 하느냐?"

 

하고 물으니

 

"아버지 열심히 하고 있으니 걱정마십시오"

 

라고 했단다.

 

매일 하늘을 향해 힘있게 한 일자만 긋던 그 사람이

 

바로 '왕희지체'의 글을 남긴 왕희지라고 했던 것 같다.

 

겨울 밤은  유난히 하늘빛이 투명하다.

 

아버지는 나에게 서예를 가르치려고 무진 애를 쓰셨다.

 

내가 아버질 닮아 서예를 잘하겠다고 하셨다.

 

학교에서도 진주개천예술제에 출전 할 사람으로 나랑 남자애를 선생님께서 뽑아서

 

연습하게 하셨는데 나는 그 남자애가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연습하라고

 

남겨 두면 도망을 가버렸다.

 

그 애는 냄새가 나고 더러운 아이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론 서예가 딱 싫어졌다.

 

아버지를 따라 먹갈이도 십수년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본 경력만 해도 연습좀 하면

 

다른사람들보다 잘 할 수 있는 상황에도 나는 그 남자애로 인해

 

서예는 딱 멀리 해버렸다.

 

참 바보였지.

 

그게 무슨 대수라고???

 

왕희지라는 사람의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밤마다 정성을 쏟아 연습한 한 일자가 훗 날 별무리 가득한 멋진 필체가 되었다던가?

 

아득한 기억이다.

'

"서예는 정신과 혼을 담아야 한단다."

 

결국 난 아부지를 따르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내가 아이를 데리고 하늘을 올려다 보면 울아부지처럼 또 이야기를 들려 준다.

 

나는 내아이에게 훗 날 희망이 될 지표를 설정 해 주고 있는 걸까?

 

내가 아부지를 따르지 않듯 울아이도  제갈 길을 갈 것이다.

 

그런 날이 오더라도 섭섭할 것 없다.

 

별이 있는 하늘이 그냥 우리의 상상의 꿈을 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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