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뱃길...

맹수기가 부산 가던 날

이바구아지매 2007. 2. 28. 02:48

 

 

겨울이 거의  물러 난 지금,  아직도 땃땃한 아랫목이  그립긴 마찬가지다

 

내 나이도 추위를 뼛속 속속들이느낄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시린 겨울을 보내고도 내복바지를 벗어내지 못하면서  오랫동안 잠재웠던 낡은 추억하나가 살포시

 

문풍지사이로 나를 내다본다

 

내 기억속의 칙칙폭폭 디젤기관차를 타고... 내가 부산을 떠난 뒤 6년만에 가 본 부산에 대한 생경한 모습

 

에  신기한 그 때 모습을 그려 본다

 

 

그 해 겨울도 몽창시리 추벗다

 

내가 6학년 겨울방학이었네  1972~3년경 주먹구구로 따져봉께 ...

 

손을 꼽아 기다리던 방학에 부산 큰오빠네 집에 갔는기라

 

우리 큰 오빠는 그 때 결혼을  하였고 '미성건설주식회사' 경리과장님이었고

 

부산서면에 아주 멋진 이층집을 짓고 사셨는데 그 멋진 집에 내가 방학이라고 안 갔나

 

어렸을 때 부산에 몇 년 살긴 했지만 아버지를 따라 거제도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6학년이 된 그 때는 아주 심한 촌년이 돼갔고

 

말씨랑, 옷이랑 소극적인 성격까지...

 

보따리 하나만 딱 들모 고마 식모같았을끼고마는

 

그런 촌발날리는 나였음에도 그 당시에 내가 입은 바지는 호랑이 무늬가 그려진 판탈롱

 

바지를  안 입었나 그 판탈롱 바지는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서 첨으로 입은고 유행을  이끈셈이었제

 

그 바지는 부잣집에서 시집 온 우리올케가 막내 시누이한테 해 준 예단선물이었는기라

 

5학년에서 6학년 올라갈 춘계방학(봄방학)때  결혼 한 큰오빠의 부인 새 언니가 해 준 그 바지랑

 

반짝이 꽃리번이 두줄로 예쁘게 수 놓인 빨강색 스웨트를 입고  학교에서 으시대었던 그 날을 기억해

 

보면 지금도 웃음이 막 안 나나

 

이렇게 나는 깔롱을 부리고 부산으로 안 갔나 잘 사는 큰 오빠네로...

 

내 눈에는

 

 

세상에서 우리 큰오빠가 젤 잘생기고 똑똑하고 또 부자였는기라

 

그 때는 친구들을 만나면

 

"너그집에 방이 맺개고?  니 방이 있나? 너그집에는 테레비 있나?"

 

이렇게 물었던 시절이었으니깐

 

맹수기는 버스를 타고 먼지나는 시골길을 달려서 옥포 뱃부두에 내렸고 부산 가는 '영복호' 를 타고

 

멀미를 길길히 해 대면서 우찌 근근히재꾸로 부산에 도착했는기라

 

부산에강께 영도다리가 싹 들어 올리 주고 우리배가 그 밑으로 지나갈 때는 개선장군맹키로

 

어깨가 어슥했다아이가

 

멀미는 언제 했냐고??? 신이 나서 부산의 높은 건물들을 신기한 눈으로 살펴보고

 

17번 당감동행 버스를 타고 부산상고 뒤에 안 내렸나

 

오빠네는 부전1동이었고 함께 간 넷쨰 오빠를 보고  집에서 말로만 들었던 큰 오빠네

 

2층집을 찾기 시작안했나

 

"오빠야, 저기 육교 밑에 2층집이 있네 저기 큰오빠집이가?"

 

"아이다 그라모 요기 2층집이 천지빼까린데 다 큰오빠집이라꼬?"

 

"아 그라모 2층집이 억수로 많나 다 주인이 다리나?"

 

"그라모 주인이 다 다리제 부산에는 사람들이 억수로 마이 산다아이가?"

 

'햐  멋지다 오빠야 저게는5층짜리도 있고 7층짜리도 있네?

 

머한다꼬 저리 높은 집을 지았노? 저런데는 살모 멀미도 나고 내리올때는 우찌내리오노?"

 

"됐다고마 차차 알게 될끼다 고마하고 집에나 가자"

 

"너무 재미있다아이가 육교라쿠는기 다 있고 그랑께 그렇제"

 

"가마이좀 가자 순경이 시끄럽다고 잡으로 오것다"

 

"부산에는 길에서 씨버리모 잡아가나?"

 

"그래 '고성방가' 하모 순경이 잡아가삔다"

 

"부산이라쿠는데는 참말로 우끼네 우리집앞에도 지서 있는데 나는 순경 항개도 안 무섭다"

 

"요게 순경은 다리다 도시순경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엄따"

 

"그라모 우리동네 순경보다 더 쎄나?"

 

"그렇제 빽이 훨씬 쎄다"

 

"나는 순경은 호리뺑뺑이로 봤는데 아잉가베?"

 

"인자 다 왔다  저 봐라 '서면성당'이라꼬 보이제 저 뒤에 2층집 새로 진 2층집이

 

큰행님 집인기라"

 

"와 우리오빠집 좋네 하얗고 억수로 부자가 오빠가 돈 억수로 잘 버리나?"

 

"모린다 집만 커고 좋다고 다 부자는 아이다"

 

이러는사이 멋진 2층집 앞에 도착했다

 

대문은 굳게 닫혀 있고 오빠는 벨을 눌렀다

 

"오빠야, 와 대문은 이리 잠가 논노? 우리집에는 대문도 안 달아 놧다아이가 띠삐고

 

말라꼬 대문을 잠가 놓고 성가시거로 이라노"

 

"도시는 도둑이 많아서 안 그라나 조심해야 한대이 도둑도 있고 아도 잡아 가고..."

 

"누구세요?"

 

"벨소리를 듣고 벽에서 또 사람소리가 안 나나 참 희안하네 오빠야, 나 혼자 왔시모

 

집에도 몬 들어 갈 뻔 했다아이가 우찌하는 줄 알아야 하제?"

 

"아이구 우리 막내 시누왔네 들어가자 어서 온다꼬 멀미 안 했나?"

 

큰 새언니가 나와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면서 막 물었다

 

"언니, 잘 있었어예 집이 참 좋네예 언제 이리 잘 지었었어예?"

 

"아이구 멋이 이리 신기하꼬 우리 막내시누가...?"

 

"하모예 차도 억수로 마이 댕기고 육교라쿠는것도 있고 서면로타리라는 것도 얼매나 멋진지

 

안 놀랬읍니까?"

 

"인자 온다꼬 고생했응께 밥 묵고 푹 쉬었다가 낼 동물원에도 가 보고 식물원에랑

 

극장에 가서 영화도 보고 그라자"

 

 

나는 그 날 온통 신기한 부산이란 도시에서 얼매나 신기하고 놀랬는지 한 숨 잠도 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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