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헤~~~라면은 롯데라면 우리 입맛에 그만이오
롯데라면 좋아 ~~좋아 ~~~~ 바늘 가는데 실 간다.
김치깍두기는 역시 롯데라면입니다. 롯데라면, ~~롯데라면"
이 카피는 1965년 우리나라 최초의 '롯데라면 ' 광고였다
배삼룡과 구봉서 그리고 예쁜 여배우와 또 잘나가는 코미디언한사람이 더 나오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이 때 라면 한 봉지 가격은 10원이었고 처음 맛본 라면. 그 웃음 자아낸 라면에 얽힌 추억이야기 하나 들려 줄까?
울 큰오빠는 나랑 16살이나 차이가 나서 내가 어렸을 때 오빠는 벌써 어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때는 여름이었고 나는 8살 국민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첫 여름방학이었다.
부산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던 큰오빠는 부산서면에서 잘나가던 '감로당제과'의 큰 아들과
젤 친한 친구였는데 그 날도 큰 오빠는 그 집 장남과 막내랑 같이 방학을 우리집에서
며칠 지내기로 하고 왔었다.
부잣집 아들들은 생전처음 보는 롯데라면 한상자와 감로당제과의 양과자를 가득
가져왔었다. 그리고 어깨에 힘을 주었다.
나는 그 때 본 롯데라면의 박스에 해님그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며칠동안 우린 그 라면에 대한 호기심으로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맛있는 양과자는 일찌감치 동이 나고 울어무이는 그 많은 가족들을 위해서 한 여름 땡볕아래서도
백솥에다 국수 두다발과 라면 두봉지를 넣고 물을 또 두세바가지 붓고 끓이셨다
우리는 마당 평상 도래상에 옹기종기 붙어 앉아 난생 처음 먹어 보는 국수+라면을 한 그릇씩
받아 먹었다.
맛이 약간 니끼한것 같아서 비위에 좀 거슬렸다.
부산에서 온 나와 동갑내기 머스마는 대뜸
"라면만 끓여야 맛있지 이게 무슨 맛이야"
"야, 이새끼야, 니가 울어머이 맘을 아나?"
난 다 알았다
라면만 삶으면 며칠 못가서 다 동이 난다는 사실을...
그 날 난 그 머스매와 싸웠다.
"니만 부산 사나? 나도 부산 살아밧다. 범내골에서 오래오래 살았다 부산 산다꼬 재나?"
오빠들은 웃기만 했다.
며칠 뒤 울아부지, 울어무이 오빠들이 다 부산으로 가셨다.
큰 오빠가 군대에 간다는 것 같았다.
나는 어른들이 다 가고 난 집이 내세상이었고 며칠 뒤에 오신다꼬 했으니 기분이 째졌다.
그날 밤 동네에 사는 언니, 오빠들을 우리 집으로 오게 했다.
모인 사람들은 국민학교1학년에서6학년까지였는데
내가 주인이라고 모든 것은 내가 리드를 했다.
안청에서 꺼내 온 듣도보도 몬한 '롯데라면'을 박스째 들고 나와서 동그란 눈을 한 동네오빠,언니들한테 허풍스럽게 자랑을 해 댔다.
'양초귀신'이란 이야기를 읽으면서 친구들도 많이 웃었을 것이다.
새로운 물건에 대한 호기심과 훈장님의 체면때문에 양초를 고기로 알고 삶아 먹고 속에 불이 났다고
물속에 뛰어 들어 웃음을 자아낸 그 이야기처럼 나도 그리 훈장님처럼 허풍을 떨며
울어무이처럼 부엌으로 가가서 백솥에다 밤에 장작불을 때어서 물을 몇바가지 붓고 라면을 5개를 넣고
끓였다. 장작불에 금방 라면이 끓어 올랐고 빨리 먹자며 방에 가지고 가서 한그릇씩 퍼 주니
첨에는 더달라고 난리더니 막상 한 숟가락씩 먹어 보더니 아무도 안 먹었다.
나는 자꾸 먹으라고 재촉을 하고 ... 내가 먹어 보니 너무 니끼했다.
할 수 없이 먹던 것들을 구정뮬통에 버렸다.
그래도 반솥 정도 남아서 그냥 두고 잠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서 백솥뚜껑을 열어 보니
"움마야, 나 몰라"
"머꼬, 와그라노 벌거지라도 있나?"
몇살 많은 언니가 놀래서 다가왔다.
"언니야, 분맹이 어제밤에는 반솥만 안나난나? 그런데 지금 또 한 솥이 되삣다 우짜노 이기 무신
일이고 ~~~라맨이 요술로 부린는갑따."
"그럿네 참말로 우끼네 라맨이라쿠는거는 무도무도 안 쪼라드는긴갑따 진짜 신기하네"
"언니야. 근데 저 라맨 우짜꼬 저래 나노모 울어무이가 머러큐낀데 우짯꼬"
"나도 모리제?'
"아~~~참 그라모 되것따. 땅에다 파 묻어삐모 되는기라"
우리는 나가서 땅을 파고 허옇게 퉁퉁 불은 라면을 묻었다.
낮에는 더워서 꽃밭덤벙으로 라맨상자를 통째로 들고 갔다.
목욕을 한탕 하고 나오니 배가 촐촐해서 라맨을 이번에는 생으로 먹어 보기로 했다.
라맨봉지에 해님이 방긋 웃었다.
봉지를 툭 찟어서 라맨을 또 반통가리로 뿔라서 갈라 먹었다.
이번에는 맛이 고소하고 참 좋았다.
스프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서 물에다가 툭툭 던지니 둥둥 기분좋게 떠내려갔다.
울아부지,울어무이는 부산에서 돌아와서 딸내미가 흙에 묻어 논 라맨을 보고
"라맨이 죽었는가베 요개다 장사로 지내났네"
하시고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지만 얼마나 아까우셨을까???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라면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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