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짜로 보면 나에게 참으로 뜻깊은 하루다
역사적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는 날이며 개인적으로는
1986년3월1일 정오에 제2의 인생을 출발하는 뜻깊은자리
하얀면사포를 쓰고 주례앞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검은머리 파뿌리가 되고
죽음이 둘을 갈라 놓을 때까지 서로를 사랑하겠는가?
라는 주례사에 "예" 라고 대답하고 결혼생활을 어찌해야 잘 하는건지도 모른채
앞만 보고 달렸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집엔 이벤트라는 것에 적응이 잘 안 되어 있어서 오늘도 그냥 조용히 보내고 있다
아침에 깨어나서
"오늘 우리가 결혼한지 21주년이야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까?"
라고 남편한테 물으니
"돈 여유가 있으면 부산 댕겨 오자 우리딸들 잘있는지 궁금하다"
한 참 생각했다
좋은 일이긴한데 최고로 유익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 해 보자며 대답을 늦추었다
백병원에는 친구의 어머님 두 분이 영안실에 안치 되어 있었고 당연히 부조금과함께
조의를 표하러 가야하고 아무리 생각 해 보아도 부산 갈 시간이 안 난다
"여보, 오늘은 딸들한테 갈 시간이 안되겠어 상가에 가야하고
아이들 낼 등교도 하는데 부산에 가면 못 돌아 올 수도 있잖아 일기예보랑...?'
"그래 다녀오는덴 좀 무리긴하지"
"부조 가지고 상가에 다녀 오자"
나랑 남편은 동기동창이라서 남자도여자도 친구가 거의 똑 같다
즐거운일이든 슬픈일이든 함께 그 자리에 가는 게 습관이 되었다
서울에서도 친구들이 내려 온다고 나한테 미리 전화연락과 메일이 도착했다
마산창원에서도 거제에 가면 나랑 만나자고 남자동창들이 연락해왔다
어느새 우리들의 결혼21주년의 의미는 상가에 가는것에 묻혀 버렸다
서울에서 내려 오는 친구들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서 지금은 거제대교에
다와간다며 알려 오고 나는 마음이 바쁘고 오랫만에 미용실에 가서 염색도 하고 새치를 친구들한테
보이긴 싫어서 ... 단정한 머리로 드라이까지 하고 만반의 준비를 다했는데
"니는 저녁에 오이라 나만 먼저가께"
이러는 남편의 말에
다른때 같으면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가는데 이상하게 그리하고 싶잖아서 혼자 보냈다
"친구들이 나 안오면 섭섭할까?남자 동창들이라도 나에겐 허물없는 친구들인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본 정도는 아니고 나도 때론 그런 자리에서 내가 더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도 좀 그
렇고 해서 그냥 있었다
창원에서 온 '아하'는 꼭 나를 만나자고 해서 그러마라고 대답했는데
나는 밤에 오라는 말을 듣는 순간 포기하고 가기가 싫어졌다
갔으면 반가운 친구들보고 돌아가신 분들께도 조의를 표했을텐데
20년이상 못 만난 친구들도 있는데...
아이들이랑 집에서 그냥 있었다
누우니 머리도 아프고 이도 아프고 몸살도 나고
상가에 간 남편이 전화를 햇다
"친구들이 왔는데 올래?"
"아니 됐어 그냥 인사하고 와 몸이 아파서?"
나가봐야 1시간거린데 서울친구들은 일찍 간다고 하잖는가?
나는 혼자 밝은 기분을 내 보기로 했다
먼저 우리학교 카페에 들어가서
"친구들아, 축하 해 줘 오늘이 신원춘(내외) 정연광, 옥명숙의 결혼21주년을 맞는 날이야
앞으로도 열심히 살고 행복하게 잘 살게"
라고 ... 그리고 음악방을 돌아다니며' 축하합니다' 란 노래를 수 없이 들었다
아이들에게도 말했다
"아빠, 엄마 결혼21주년이야 우리아이들 착하게 자라 줘 심부름도 잘 하고"
"엄마, 우리집에는 생일 ,결혼기념일. 빼빼로데이니 이런 것은 선물로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라고 했잖아요 오늘 엄마가 하고 싶은 게 뭐죠?"
"아무것도 없고 너희들이 싸우지않고 사이좋게 지내며 평소랑 똑 같이 자기 할 일을 잘 하는 것이야"
이렇게 참으로 조용하게 하루를 보낸다
지금은 밤이다 아주 조용히 오늘을 보낼 것이며 섭섭함이란 걸 몰아내며 즐거워지는 법을
스스로 찾는다 밤에는 오붓하게 맥주 한 잔 나눌까?
남편의 몸 컨디션이 안 좋으니 그것도 무리다
이것도저것도 아니면 나가서 밤하늘의 별이나 실컷 볼까?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 한권 사고
조용한 일상에서 앞으로 더 잘 살아가겠다는 계획 한 번 세워보고
21년 전의 결혼식을 잠깐 떠 올려 본다
우리의 주례를 서 주신 분은 6촌오빠였다
걸어두었던 양복을 내려서 먼지 탈탈 털어 입고 주례선생님앞에
당당하게 걸어나왔던 신랑과 사업이 부도 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오빠의
손 잡고 신부입장 했던 눈물겨운 결혼식이었지만 웃으며 잘 살아 온 우리들...
결혼식을 비디오에 담았던 걸 보니 1996년 3월 1일 행운예식장이라고 적혀 있질 않았나
우리어무이는 그 비디오를 보고
"너그가 성공하고 나모 내 꼭 저 날에 다시 멋진 결혼식 올려 줄끼고마는?"
하하하 우습다 우리어무이 그 말 아직도 기억하시려나?
10년 뒤의 결혼식이라고 비디오에 잘못 적어 넣은 ~~미래의결혼식~~
나는 이벤트를 별 좋아하지 않는다
안 하던 행동을 하면 오히려 어색해서 싫다
그냥 조용히 아이들이랑 지내며 내 인생의 후반전을 계획해 보련다
무엇보다 좀 더 건강해져서 하고픈 일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음 좋겠다
남편도 회사생활도 열심히 하고 죽어라고 하는 영어공부 좀 더 효과적으로 풀어먹는 공부였음 좋겠다
머릿속에만 담고 늘 부족하다고 하니 뭐가 그리 부족한지 겸손이 지나치다
머릿속에것 빼 내 놓는 일좀 했으면... 내가 바라는 일이기도 하다
친정아버지가 그러셨다 너무 많은 걸 머리에 담고만 가신 어른이라서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는데 남편은 그리 안 했으면 좋겠다 훗 날 아쉽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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