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이랑 약속한 시간에 맟추어 송정집에 헉헉 거리며 달려 온 집
"어무이예? 저 왔는데예? 방에 계십니까?"
기척이 없어 방으로 들어 갔더니 방바닥이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오늘 무얼 많이 삶았나? 방이 이레 따시노 철철 끓네 혹 노루뼈다귀 고았나?'
교회에 가셨나 보다
오시려면 두세시간 있어야 하고...
방바닥에 누워보니 황토방이 찜질방이라 잠이 곧 쏟아졌다
그렇다고 잠 잘 수도 없고 억지로 TV를 켜 보니 TV에 재미를 못 부쳐서 그런지 항개도 재미없다
심심하니 이것저것 어무이의 물건에 스르르 호기심이 생겨서 실건 위에 얹혀 있는 세 개의
농위부터 둘러 보았다
농 위에는 어무이의 아들들이 대학 졸업할 때 학,석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들과
두 아들이 결혼 할 때 찍은 사진들이 액자에 끼어져서 농위를 훤하게 밝혀 주고 있다
이 모습들은 어무이의 방 풍경중에서 가장 자랑스런 풍경이다
어무이는 저 사진들을 보며 힘겨울때 위안을 삼으실끼다
항상 정갈하게 정리 된 어무이의 작은 황토방 나는 시집 와서부터 이 방에 들어올때면 평안한 느낌을 받
아서 이 방을 좋아한다 몸이 찌뿌둥하다가도 요 방에만 와서 한 숨 잠을 자고 나모 고마
개운해지기때문에 동네아지매들도 농한기나 비 오는 날엔 이 방에 와서 한 숨 자고 가는 작은 흙방
그 방을 오늘 나 혼자 독방차지하고 방안을 둘러 보는 참이다
핫대에 걸려 있던 어무이의 한복치마를 살짝 밀어 보니
장농위 구석에 못 보던 앨범 몇 권이 놓여 있어 얼마나 궁금한지 다섯권을 한꺼번에 내렸다
'무신 앨범이 몬 보던기 이레 많노 우떤긴지 함 보자'
앨범다섯권을 착착 열어 대충 구경해 보니 이 앨범들은 우리 어무이의 한이 맺힌 앨범들이다
우리어무이의 가슴에 묻은 두 아들의 학창시절과 군대생활이 담겨 있는 앨범들이었다
1986년 어무이의 셋째아들이 큰 형님의 결혼식을 5일 남겨 두고 군대에 가서
군대생활 1년만에 자살했다고 청천벽력같은 비보를 접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의
시신을 화장하여 한강물에 뿌린 첫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셨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늘 미안한 맘으로 살아간다
사연은 슬프고 기막히다
대학2학년때 군댈 갔는데 이미 우리 시동생의 몸은 많이 아픈상태로 군대 면제 판정이나
상근정도의 판정을 받아야 할 상태였지만 현역으로 입대하여 내가 결혼 1주년일때 휴가를 나왔고
그 때 결혼 축하를 못해 주어 미안하다고 케익을 사 온 시동생 휴가 때 내가 지켜 본 느낌으로는
몸이 많이 안 좋아서 군대생활이 힘들다는 판단이 섰고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형한테 몇차레 이야길 했
지만 남편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내 말을 흘려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가지 행동이 불안하였지만 결국 그냥 휴가를 끝내고 부대에 복귀한 다음날
자살이란 비보를 접했다
아홉장이나 되는 유서를 남겨 놓고...
총으로 머리를 관통시켜 자살했다고 했다
너무 잔혹한 모습을 차마 부모님께 보일 수 없어 남편이 큰 형님 자격으로 유서대로 화장하여
한강에 뿌렸다
그 당시엔 군사정권시절(전두환) 의문사??? 죽음이었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우리 어무이는 자식들이 공부를 잘 해서 서울대학이며, 고려대학
이런일류대학에 진학하여 공부하는 자식이 자랑스러워서 아무리 심이 들어도 심 든 줄 모르던 우리어무
이의 가심에 이런 날벼락이 떨어졌다
죽은 목숨을 뒷처리 하는 과정도 두 형님은 허술하게 대처했다
큰 형님, 둘째형님은 군댈 안갔다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였기에 군대생리를 잘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다 공부욕심만 있었지 다른 곳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무지한 형님들...
오늘 앨범을 넘겨 보니 셋째시동생이 마산고등학교에 다녔던 학창시절과
대학생활 할 때의 일부 사진이 환하게 웃으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으로 남겨 있었다
내 생각에 어무이는 이 사진들을 밤마다 보시는 것 같다
자식이 죽으면 어머니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우리어무이는 자식 둘을 가슴에 묻으셨다
막내아들... 넷째의 죽음또한 오지기 슬픈 기억이다
막내아들은 군대를 다녀 왔고 곧 자동차정비업을 했는데 당뇨란 무서운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다가 2년전에 이 세상을 떠났다
통영에서 화장하여 통영앞바다가 내려 보이는 난망산 언덕위에서 바람에 실려 날려 보낸 자식
그 모습도 생전의 잘 생긴 모습으로 앨범 가득 들어 있어 내 맘을 또 한 번 울렸다
밤마다 가슴에 묻은 자식들을 꺼내 보며 눈물흘릴 울어무이의 슬픔이 내 가슴에도
전해 온다 기타를 잘 치고 노래를 좋아해서 꼭 가수 한대수의 목소리를 빼다 박은
셋째 시동생의 노래는 녹음하여 들어보니 한대수랑 구분이 안 될 정도였고 노래도
'물좀 주소' 란 한대수의 노래를 들으며 오래전 기억 속의 시동생을 떠 올려 보았다
넷째시동생... 내가 시집 오니 고등학생이었는데 얼마나 착하든지 서울에 갈 때 졸업 후 데리고 갔었다
정이 많아 우리아이들에게 얼마나 잘 해 주었는지
모두가 대학에 진학하면 경제적으로 너무 심들다며 취직을 하던 시동생
늘 대학에 가라고 당부했던 나...
결국 대학도, 결혼도 못해 보고 이승을 떠났다
어무이 없는 시간 동안 어무이의 슬픔을 또 찾아 내고 나니 허허로운 맘이든다
"집에 누가 왔나?"
"예 어무이,"
얼른 앨범들을 도로 그 자리에 오려 놓고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나갔다
"밥 묵어야제"
"아니라예 어무이는 예?"
"나는 교회에서 묵었다"
눈을 자꾸 비비대니 어무이가
"니 울었나? 무신 일이 있었나?"
"아이라예 봄바람 때문에예'
우리는 바라보며 하하 웃었다
"봄바람은 피부뱅을 앵긴다쿠더라 조심하거라"
"예"
어디선가 풋마늘 냄새가 풍겨왔다 바람에 실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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