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때 막걸리에 대한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동네마다 집에서 밀주를 담궈먹었는데 우리동네 옆 죽토에선 거제제일의 술 맛을 자랑하는 ' 연초양조
장'이 있었고
설, 추석, 같은 명절에는 마을마다 도가에서 가져 온 막걸리를 주전자로 한 되씩 마을 이장댁에서
받아서 오곤 했는데 노란 양은 주전자에 가득 담은 막걸리는 걸음을 걸을 때마다 출렁거려 아까운 술이
지나간 길에 솔솔 뿌려졌고 그게 아까워서 넘치지 말라고 아예 주전자 부리에 입을 대고 빨아먹기도 하
고 좀 위생적으로 한다고 주전자 뚜껑에다 부어 마시고 집에 도착하면 볼이 발갛고 입에선는 술냄새가
진동 하였다 "니 술 마싯제" 하고 엄마가 물으면 "아니" '아이긴 뭐가 아이고 가시나 얼굴빛이
볼그리한데 입 좀 벌리바라 아이가 술냄새야 어릴 때 술 마이 무모 죽는다이 큰 일 난다
저 욱에 지섭이네 머스마도 술로 마이 묵고 술이 취해서 안 죽었나 니 죽기 싫으모 술 무모 안된다
알긋나?"
그래도 그 술맛은 달달지근해서 또 먹게 되었다
술도가의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때 내 짝이어서 막걸리만 보면 내 짝이었던 그 머스마가 떠오른다
'원성희' 얌전하고 귀엽게 생긴 초등학교 첫학년때의 짝꿍이었는데 둘 다 얌전이라서
별 특별한 기억도 없이 일년을 보내고 2학년이 되어서 다시 반편성을 했는데 나는 1반이었고 짝이 다른
남자애로 바뀌어서 성희가 우리반인지 2반인지가 궁금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졌나 분명히 우리학년에 없었다
전학을 갔을까???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다
스물한살이 되던 여름이었다 몹시 찌는 여름 날 집 마루에 누워 있었다
빨간색 합팬티를 입고 빨간 티셔츠를 입고서 ...
'따르릉 따르릉' 소리에 얼른 일어나 앉으니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에서 성희가 내렸다
술을 한 통 싣고
"어 성희네 덥다 어쩐일이니?"
"응 물 한잔 마시려고"
"그래 요기 마셔?"
"넘 덥지? 지금 술배달 해 ?"
'너 정말 오랫만이다 지금 뭐하니? "
"방학이라서 집에 오니 술배달을 시키네?"
"참 너 전학갔니?"
"초등학교 1학년때 짝이었잖아 그 후로 너 못 본 것 같애"
"나 한 해 꿀었어?"
"왜?"
"몰라 ? 공부못한다고?"
"그때 그게 공부야 ? 어느 대학에 다녀? "
"경상대학 너는?"
"응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했는데 직장에 가 보니 대학을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재수도 겸하지 욕심을 내는데 잘 될려나 몰라
그래 열심히 하니 보기 좋다야 아버지 도가일 많이 도와 드려"
"아 지긋지긋해 술도가에 질렸어 "
"그래도 너네집 술맛이 최고야 돈도 잘 벌고 ㅋㅋㅋ"
"그래 그럼 배달 때문에 갈게 잘있어 열심히 해서 대학도 가고..."
성희는 자전거 패달을 신나게 밟았다
온 종일 무더운 여름 날 술배달을 했단다
다음 날 우리엄마가 어디서 듣고 온 소문인지
"도갓집 아들이 죽었단다 아이구야 싹해라 불쌍해서 우짝고?"
"엄마, 머시라캣소? 성희가 죽었다고요?"
"맞다 니하고 동무였제?"
"우째 죽었는데예?"
"술 배달 하다가 억시기 더븐께 고마 자전거를 방천에 세아 놓고 열녀천에 바로 뛰들어가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꼬 안하나"
'엄마, 어제 우리집에 와서 덥다캐가 물 주었는데 ... 옷이나 벗고 준비운동도 하고 들어가야제"
"아이구 조심해야되것다 아도 참 잘 생깃더마는 아들도 그 아 하나뿌이낀데..."
참 실감 안 나는 일이었다
집에 다니려 갔던 그 며칠사이에 그런 사고가 났다
도가를 지날 때면 성희가 생각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 패달을 굴리던 그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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