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슬 픈 소 식

이바구아지매 2007. 4. 3. 14:08

살아가면서 우리는 기쁜소식만 듣고 싶은데 사람사는데는 희, 노, 애, 락 이 있어

 

여러가지 소식을 접하고 산다

 

오늘은 카페에서 동네고치친구인 두원이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접하고

 

언니는  전화로  셋째오빠가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듣기도 민망하게 '오세풍'이란다

 

중풍? 한쪽이 마비되거나 전신이 마비되거나, 입이 돌아가거나, 팔을 못쓰거나?

 

말이 어눌하거나?

 

너무 뜻밖의 소식에  많이 놀랐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

 

설무렵에 그리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지금은 괜찮아졌다고는  한다

 

나는 참 무심했다

 

미안하다  늘 베풀어야만 하는 게 오빠인 줄 알았는데

 

세월이 그리 많이 흘렀나 오빠도 예순의 나이로 간다네

 

오빠...

 

내 생각주머니에 좋은 추억 가득 안겨 준 오라버니 ... 부산서 양정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

 

재직중인 오빠는  참으로 열심히 사셨다

 

교장선생님이 되기 전에는 고3 수학을 25년동안 맡으셨다 

 

대학입시철이면 진학에 대한 의견을 TV에서 토론도 하고 하여튼 아주 열심히 사신 분이다

 

나랑은 나이차가 좀 나서  오빠가 대학에 다닐 때 나는 국민학생이었다

 

우리집은 거제도의 맨 가운데 연초라는 시골에 살아서 도시의 문명의혜택을 많이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유년은 촌티나는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오빠들이 있어서 좋은 문학책을 사다 주었고

 

전기가 들어 오니 일찌감치 전축을 사 와서  클레식과 가곡 그리고 좋은 영화음악과

 

흘러간 팝송의 정겨움에 젖어들게도 해 주었다

 

이렇게 오빠가 내 친구들네집과 달리  문화, 지식,삶을 윤택하게 해 주려는 배려는

 

오빠의 피나는 노력이 있은 댓가다

 

우리아버지는 일찍 직장을 그만 두셔서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못해 주셨다

 

그 결과로  오빠들이 초년고생을 심하게 하였다

 

셋째오빠는 고등학교때부터 수학 아르바이트를 한 것 같다

 

수학박사라고 한 오빠는 8형제의 책가방에서 조금이라도 아버지, 어머니의

 

힘듬을 들어드리려고 악착같이 공부며 과외공부시키기를 얼마나 하였는지

 

방학이면 부산에 가는데 늘 오빠가 머물던 방에는 칠판에 희뿌연 분필가루속에

 

수학문제가 칠판 가득했고 나는 그 칠판지우개를 밖에 나가 시멘트벽에 탁탁 털었다

 

먼지가 뿌엿고 그 허연 분필가루가 금새 목구녕으로, 콧구멍으로 들어가 내 기도가 막힐 것만 같았다

 

머리에도 허연 분필가루를 이고 앞섶에도 자욱하게...

 

그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현상인데도 그 정도였는데 오빠는 그런 일을 평생하셨다

 

그러나 한 번도 오빠한테 고맙다고 해 본 적이 없다

 

오빠는 당연히 동생들을 위해서 그리해야 되는 줄 알았다

 

오늘은 오빠를  떠 올려 본다

 

중학교 수학여행비며 고등학교 수학여행비까지 오빠가 마련 해 준 기억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어머니께서

 

"고마 수학여행 안 가모 안되것나?  우리집에 책가방을 든 사람이 몇 명인 줄 알제?"

 

그 당시 우리집은 대학2명 고등학교1명 중학교2명 초등학교2명 이런식이었다

 

아버지는 그 때 직장을 그만 둔 걸 크게 후회하셨다

 

농사일도 잘못하시는 어중개비로 자식교육열에는 대한민국 최고라고해도 틀린 말이 아닐정도로

 

자식교육에 남다르셨고 욕심이 많으셨는데 많은 자식들이 책가방을 드니 아버지는 많이 힘들어하셨다

 

이런 상황에서 오빠들은 자기 앞가름을 잘 하였다

 

공부를 잘 했고 성실하고 모범생에다 오빠들은 칭찬을 듣고 학교 생활을 했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들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런 현실을 내가  이해하기엔 나이가 어렸을까

 

억지를 부리고 결국 부산으로 오빠를 찾아 갔다

 

오빠는 방학도 아닌 주말에 올라 온 걸 보고 놀라서 물었다

 

무슨일이냐고?

 

"오빠, 나 수학여행 가고 싶어 오빠가 수학여행비좀 줘"

 

"안가도 되는데? 다른애들 수학여행 가는 동안에 넌 공부 좀 할래? 오빠가 가르쳐 줄게"

 

그 말에 서러워서 그만 울어버렸다

 

하룻밤을 오빠의자칫방에서 자고 일어나니 오빠가 날 데리고 시내에 가서  체크무늬 주름치마랑

 

꽃무늬 블라우스랑  검정색 구두까지 사 주었다

 

그리고 흰봉투를 건넸다

 

"이게 뭐야"

 

"수학여행비"

 

얼마나 기쁜지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햇다 고맙다는 말은 아직 못햇다

 

세월은 물흐르듯  흐른다 그 때 그 젊고 핸섬했던 오빠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고

 

나이를 이기는 장사는 없다고 했는데...

 

언젠가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목이 아프다고 호소했고 분필가루를 많이

 

 마셔서 몸이 안 좋다고 해도 그냥 흘러보냈다

 

아무리 형제라고 해도 고마움을 알고 전할 줄도 알아야 한다

 

너무 무심했지 오빠도 늙어가는데...

 

나도  이젠 주위를 돌아보아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시간은 부지런히 흐르고 나의 인사를 받아 줄 사람은 또 시간을 무한정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내일은 전화라도 한 번 드려야겠다

 

늙은 노모 걱정하실거라고 비밀로 하는 통에 가족들도 오빠의 친구를 통해 전해 들었다고 한다

 

많이 죄스럽다 내 나이도 오십을 바라보는데 아직도 철들지 않은 행동을 해서 되겠는가

 

오빠, 건강해지세요 오빠는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철없는 막내여동생

 

오늘에야 철든 말 할게요 오빠,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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