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꾸무리한 날은 뮬고메 삶아놓고 따뜻한 온돌방에 배를 깔고 누워서 신문이나
책을 읽으면 좋을 날씨
우리 신랑은 조선소에서 쎄빠지게(뼈빠지게) 일할낀데
나만 호강에 빠져서 시덥잖은 소리하는가?
일이 그리되었으니 우짜것소 ? 이녘은 (당신)욕좀 보고 나는 꿀찜한 친구들을 위해서 어제
능포바다 돌빡(작은바위)에서 따온 맵사리고동(소라를 닮은, 횟집에서 쓰게다시로 잘 나옴 여름에 맛이 일품)
한사발 삶아 놓고, 묵는 것만 있으모 마음이 쾡하니 요 때는 흘러간 한 토막 이박(이야기)이 제격아니것소?
빛바랜 추억사진 한장 척 꺼내놓고... 추억속으로 떠나볼라네
아주 오래 전 내가 국민학교2학년 때
내 짝 이름은 '장재환'
그 시절 학교가 있던 관암마을은 온통 피난민촌이었고
내 짝 재환이도 그 마을아이로 2~3평 남짓 하꼬방집에 살았제
저거할매는 풀빵을 구워 팔고
재환이네 삼촌은 '하청농고'에 우리둘째오빠랑 함께 다닌 친한 친구였고
재환이삼촌은 걸어서3분거리인 우리집에 가끔씩 놀러왔는데 올때는
팔다남은 풀빵몇개를 돌까리조(비료푸대)봉지에 넣어서 우리에게 주기도 했제
나랑, 언니, 동생은 그 풀빵맛이 좋아서 가끔씩 재환이삼촌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했고 삼촌은
얼굴이 하얗고 참 잘 생겼고 웃음 띤 얼굴이 온화했제
늘 군복을 입고 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단불신사(한벌옷)였던기라
재환이할매는 '풀빵할매'로 불리었고 학교로 가는 길엔 풀빵을 구울준비로 화덕에 불을 살리고
노란주전자에 풀빵액을 걸쭉하게 타 놓고 학교에서 돌아오는길엔 풀빵할매의 얼굴은 불에 익어서
복다그리(불에 익어서 빠알간색) 해지고 하얀얼굴에 복다그리한 빛깔이 복숭아빛깔로
되어선 빙그레 웃음을 담던 얼굴
나는 재환이를 생생하게 기억하제
기 죽지않고 당당했던 그 아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울에서 예쁜 동생과 살고 있었는데
생활의 기반이 잡히면 데려 가기로 한 아들이었거든
그 집 할매의 풀빵맛은 알아주는 기똥찬맛으로 소문이 자자했제 할매의 기똥찬 풀빵맛에
용기가 생겼는지 고 작은 체구와 어린나이에 목소리는 우렁차고 노래는 또 얼마나 잘 불렀는지
우리가 3학년이 되었을 땐 음악선생인 '꾀꼬리선생님'이 재환이의 노래실력에 탄복을하고
수제자로 키워서 아침에 전교조례가 있는 날엔 늘상 단상위에 올려세워선
"동해물과 백두산이~~"
이렇게 선창을 부르게 하고 우리는 따라서 불렀제
단상위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노랠부르는 그 얼굴은 빠알간 선홍색이었고 목에는 푸른 핏대가 선연햇고
고음의 목소리는 참으로 매력적이었던기라
그 해 여름 ... 여름햇살은 눈부셨고 우리교실은 서쪽 플라타나스옆 기와건물로 뜨거운 열기를
받아 죽을 지경이었제
그 날 내가 평생 기억할만한 멋진 일이 벌어졌는기라
재환이가 학교에 오면서 백설공주같은 예쁜 공주님을 모셔왔는거있제
나는 그 순간 숨이 막혔제
"엄마야, 세상에 백설공주님이???"
'맹수가, 내 동생이다 서울에서 안 왔나"
"서울? 서울? 엄마야, 공주님같네 참 예뿌다"
나는 그 때만해도 서울이 미국하고 똑 같은줄 알았제
"미국에서 온 거 겉다 고마 내 자리에 앉거라 공주님옷에 때 묻는기라 고븐옷이 꿍캐지모(구겨지면)
안되제"
지금 생각해도 우습네
나는 서울아들은 다 공주님처럼 하얀드레스를 입고 사는 줄 알았제
"내 동생 이뿌지? 여섯살이다 내년엔 유치원에도 갈끼다"
"유치원??? 그기 머하는데고?"
"응 학교가기전에 댕기는곳이 있제"
나는 그날 그 공주님을 위해서 의자를 내 주고 온 종일 서 있었제
쉬는시간에는 여자애들이 우리자리를 에워싸기도하고...
난 마치 내가 공주님이 된것처럼 어깨가 으쓱했제
참 인자 생각나네 재환이동생 이름은 '영주'
영주의손에는 풍선껌이랑 공주인형도 들려있었제 만져보고 싶었지만 때가 묻을까봐
그 때 나는 이레 생각했제
'나도 이 담에 꼭 서울이란델 가 볼끼다 그라고 하얀드레스도 입어볼끼다"
이레 다짐을 하고... 영주는 파마도 햇었제... 동화책에 나오는 구불구불한 긴 머리로 파마한 공주님처럼...
평소에 짖궂기가 영구였던 재환이는 3학년 여름에 서울로 갔제
재환이네 살림기반이 잡힌 모양이었는지?
우리집산 언덕베기에 옹기종기 살았던 하꼬방집아이
아주 작은아이였지만 목소리는 하늘을 찔렀제
개구장이 머스마
그러나 노래는... 가수였제
지금도 TV를 보다가 가수가 나와서 노랠 부르면 혹시 재환이가 아닌가
내가 재환이를 몰라보는 건 아닌가? 하고 문득문득 생각하게 되는기라
세월이 엄청 흘렀으니
'풀빵할매'는 돌아갔을끼고
삼촌은 예순살일끼고
동생은 마흔이 넘었겠네
재환아, 어디에 사노?
꼭 한 번 보고 잡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재환아, 네 고향은 거제시 연초면 죽토리(관암부락) 산 000번지 아이가?
언제 한 번 고향댕겨 가 그리고 얼굴함 보자
네 짝 맹수기 안 보고 잡나 ㅋㅋㅋ 빨랑 나와바라
손 한 번 잡아보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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