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뱃길...

6.25가 맺어 준 인연

이바구아지매 2007. 6. 25. 08:22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은  어찌그리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지...

 

병원영안실에서 주검으로 영혼도 아직 육체를 못 떠났는지  관이 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리 갑자스런 죽음을 택하고도 무엇이 서러워서 못떠나는지 육체를 담은 관이

 

쉬이 영안실을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다 모였는데 애통해하는 눈물을 다 보고서도 주검된 아버지의 관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디가  상사병으로 죽으면 그집앞을 못 떠난다는

 

이야긴 들어봤어도  아버지가 그럴리는 하늘아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얼마나 좋아하셨는데요 옛날 21살나이에 아버지는 19살 꽃같은 어머니랑

 

연애결혼을 하셨습니다  그 시절 연애결혼이란 것이 있기나 했었는지...

 

살아계셨으면  여든여섯 나이지요

 

학교다닐때 공부로 라이벌이었던 친구의 여동생을 오랫동안 좋아했었고 훗날 면서기가 되자마자

 

외갓집을 뻔질나게 들락거려 결국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냈다니 ...

 

 

아버지의 관이 움직이지 않자 사람들이 수군수군댔습니다

 

"참말로 희안치요 무슨일이길래 관이 안 움직인다쿠요"

 

"생전에 무신 한이 있었는갑다 그랑께 저런 일이 일어나지?"

 

그 때 달려와서 관을 붙잡고 통곡하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통곡을 하는지 영안실이 쩌렁쩌렁 울리고 다시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형님, 형님 이리가시다니요 이게 왠 날벼락입니까? 언제까지나 사실 것만 같앗던 형님

 

저는 이제 어찌삽니까? 누구를 의지하고 삽니까?

 

형님, 덕화가 왔습니다 눈좀 떠 보십시오  제가 왔습니다 형님 눈좀 떠 보십시오"

 

얼마나 구슬피우는지 그렇게 슬피 우는 사람은 서울에서 소식 듣고 한걸음에 달려 온 삼촌이었습니다

 

"애들아, 면목이 없다 삼촌이 너희들한테 정말 면목이 없구나

 

형님을 이리보내면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자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들어보지요"

 

영안실의 사람들이 외쳤습니다

 

"형님, 이제 가셔야지요  꽃피고 새우는 곳 아름다운 동산으로 가십시다 형님,"

 

삼촌이  관을 쓰다듬자   거짓말하듯 관이 움직였습니다

 

'그렇군 역시 만날 사람을 못만나 서러워서 못 떠나셨군"

 

"에그 쯔쯔 무슨 사연이 있어도 톡톡하게 있는 게야"

 

사람들은 수근거렸습니다

 

삼촌이 관을 쓰다듬자 관은 삼촌말을 알아들었는지 .우리도 따라 차에 올랐습니다

 

삼촌의 눈은 울어서 퉁퉁부었고...

 

삼촌이 서러워하며 눈물바람을 멈추지못한데는 슬픈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 슬픈사연은 6.25전쟁에 맞닿아 있습니다

 

삼촌은  6.25가 일어났을때 평양에서 고등학교를 다�고  고등학교3학년으로  

 

 신의주에 있던 집을 떠나 있다가 학도병으로  졸지에 군인이 되었습니다

 

전쟁이나자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있을 수 없어서 육군으로 자원입대를 하였다고 했습니다

 

삼촌은 그길로 군인이 되었고 부모님은 피난길에 올라서  남으로남으로 피난을 온 곳이

 

바로 거제도였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리란 일념으로 피난지에 머물던 부모님은 병을 얻어 돌아가시고

 

햇볕 밝은 날에는 먼바다의 대마도가 훤히 보이는 굴째봉에 묻혔습니다

 

보릿수나무가 가득한 굴째봉에는 공동묘지가 있었고  삼촌의 부모님은 그기에 누우셨습니다

 

이때 학도병으로 군인이었던 삼촌이 어린나이로 엄청난 일에 당황하고 힘들어할때 아버지가

 

그 곁에 있었다고 합니다

 

"걱정하지마 내가 살아있는동안  부모님의 산소를 돌봐줄테니 아무 걱정하지말고 열심히 살아"

 

이렇게해서  아버지는 삼촌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습니다

 

어린시절에 나는 그 삼촌이 친삼촌일줄 알았습니다

 

한달에 몇번씩 편지가 오기도하고 해마다  이맘때는 우리들의 선물을 한아름씩

 

사서 오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삼촌이 사다주신 공책이랑 연필, 지우개며 자동연필깎기등을 학교에 가져가서

 

친구들한테 엄청자랑도 했습니다

 

"이건 서울사는 우리삼촌이 오실때 사다 주셨어 우리삼촌 소령이다"

 

"와 소령이면 계급이 높은기제"

 

"응 대령하고 나면 별단다고햇어  우리나라 대통령은 별이 다섯개야 우리삼촌도 별다섯개달면

 

대통령할지도 몰라"

 

'와 너그삼촌 참 높다 부럽다 와 우리삼촌은  그리높은 사람이 없을까? 삼촌이 셋이나있는데

 

속상해 명주야, 넌 좋겠다 우짜모 대통령삼촌이 생길거아이가?"

 

이렇게 나는 으시대기도 했습니다

 

모르긴해도 우리선생님도 대단한 삼촌이 있다는것에 놀랐을지 모를일입니다.

 

우리아버진 외동아들이었고 군대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삼촌의 계급은 곧 내 계급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중학생이되었을때 삼촌은 대령이되었습니다

 

"바라바라 우리삼촌이 쪼금만 있으면 별이된다 별 스타란말이야  스타면 얼마나 높은줄 알제?"

 

나는 삼촌의 계급이 꼭  군대놀이처럼  우리들의 놀이에도 어깨가 으쓱하기까지 했습니다

 

 

삼촌이 관을 어루만지자 거짓말처럼 차에 오르고 영구차는 달렸습니다

 

삼촌은 하얀장갑을끼고 계속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혀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삼촌은 아버지랑 6.25가 맺어 준 의형제였습니다

 

우리가 몰랐지만 아버지는 동생의 더 이상 진급에 힘이 되어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고

 

삼촌이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참 훌륭하신 분이셨어  내 대신 산소를 평생동안 돌보시고 내 진급에 큰 힘이 못되었다고

 

편지에 늘 미안하다고 하셨어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야 그럼그럼 정말 친형제보다 더 잘했지"

 

하시며 우리형제들에게 손을 일일히 잡아주시고 우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이제 삼촌도 오래전에 예편을 하셨고 연세도 많이 되셨습니다.

 

학도병으로 군인이 되어서 다시 고향으로 못가고 서울에 살고 계십니다

 

전쟁이 가져다준  상처는 이렇게 우리들에게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도 주었습니다

 

인연은 참 희안합니다 피한방울 안 섞힌 삼촌과 우리오빠들이랑은 너무도 많이 닮았습니다

 

꼭 조카가 삼촌을 닮았듯이 그렇게 말입니다

 

우리아버지가 끔찍하게 생각하신 아버지는 늘 산소에 여러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산소에 가시면

 

이렇게 고하셨습니다

 

"아버님, 덕화랑 제가 왔습니다 절 받으십시오 "

 

하고 향을 피우시고 준비해간 음식으로 산소앞에 놓으시고 술을 붓어 놓고 산소에 떼가

 

혹시라도 벗겨지면 옮겨 심기도하고 풀뜯어주기도하신 아버지는 얼굴도 모르는 분의 산소에

 

당신의 큰아들노릇을 하였습니다

 

 

6.25 전쟁, 그 참혹한 실상은 보지 못했지만 주위에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많이 널려있습니다

 

아버지와삼촌의 인연처럼  세월속에  6.25의 흔적은 그리담겨 아직도 유유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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