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뱃길...

소나기 지나간 자리

이바구아지매 2007. 7. 3. 12:01

그 날 명주는 다른날과는 달리 멱을 감으면서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야야야, 명주야, 니 와 그라노 배가 아푸나? 똥누고잡나?"

 

눈치가 빠른 혜야가 물었다

 

"아이다아이다  나 통지표 집에 가가모 맞아줄을끼다  우짜모 좋노?

 

얼매나 걱정이 되는지 모린다  혜야, 니는

 

 통지표 가가모 너그 할매가 머라쿠것노?"

 

'암말도 안 하고 실건욱에 잘 얹어놔라 안 잊어삐고  개학때 가가거로"

 

이랄끼다 도장도 콕 미리 찍어서..."

 

"자야, 니는 통지표 가가모 너그아부지가 뭐라하노?"

 

'나 우리아부지가 통지표로 주모 이랄거로"

 

'가마이있어바라 글이 너무 잘다 머라꼬 써 놨노 당최 눈이 나빠서"

 

"맞다맞다 너그아부지 까막눈이제 이럴때는 까막눈도  얼매나 좋노  순아야, 니는 너그옴마가

 

뭐시라쿠것노?"

 

'응, 울옴마는말도 안하고 묻도 안할거로 ? 옴마, 이기 통지표다 수, 우, 미, 양, 가 이런기 적히있다

 

함볼래?"

 

'가수나가 공부하모 뭐하노 공부잘하모 어데 쓸데가 있다쿠더나?"

 

"이럴거로 울엄마는 공부하모 어데쓰 묵는지 알라고도 안한다"

 

순아는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너그는 다 부모 잘 만나가 욕도 한 번 안듣고 기분좋것다 나는 우짜것노 오늘 집에 가모

 

바로 초상친다 "

 

'맞다 너그 오빠들도 다 방학내가 왔제 공부는 또 얼매나 잘 하노 맡아놓고 일등만 하는 오빠들땜에

 

명주는 오늘 십겁하것다 고마 우리 물속에 숨어있자 물밖에 안나가모 안 되나"

 

순아가 억지같은 소리를 해대고 물속에 오래 있으니 배도 실실아파오는데

 

"우리 물밖에 나가까?"

 

자야가 말했지만 아무도 나갈 생각을 안하고 헤엄치며 발을 동동 구르며

 

'나잡아바라 나 잡으모 백만원주께"

 

하고 헤엄도 젤 잘치는 순아가 헤엄쳐갔다 깊은곳으로

 

하늘은 시커먼 먹구름을 이고 있더니 금방 비를 막 쏟아부었다

 

"소나기다 지나가는  비아이가 다 물속으로  잠수 비 안 맞거로 다같이 물속으로 코잡고"

 

풍덩 , 물박에는 빗소리만 토닥토닥  물속에는 네마리의 인어들이 코로잡은채

 

물속나라에 앉았다

 

제일먼저 물밖으로 떠오른 혜야는

 

"야, 해가 났다 나온나나온나"

 

순식간에 소나기가 지나가고 세상은 옴팡지게 젖어 있었다

 

'옴마야, 내 통지표 물에 다 젖었것다 큰일났다"

 

명주가 놀라서 쫓아가니 돌돌만 통지표가 스르르 풀려서  비에 젖어 펜글씨가 마구 번져서

 

글씨는 그림이 되어 있었다

 

"우짜모좋노? 글짜도 그림이 되삐고 통지표도 몬쓰것다"

 

"할 수 없지머 집에 가자 "

 

얼마나 물장구를 쳤는지 해는 다 지고 논둑길로 가는데 귀에서 따뜻한 물이 사르르 흘러내렸다

 

'명주야, 니 공부몬했다고 쫓아내모 우리집에 온나 나하고 같이 자거로"

 

순아가 걱정하는 명주에게 밤에 오라고 했다

 

다시 신작로길 지서앞 질러가는 길로가니

 

하늘색 반팔옷을 입은 이순경이 건덜건덜 나오더니

 

"명주야, 니 오늘 통지표 받았제 아저씨한테 먼저 보이는기다 함 보자

 

너그아부지가 니 오는가 세빠지게 요서 기다리다 안 갔나"

 

"선생님이 그랬어예 순경은 나쁜짓 한 사람 잡아가는기지 통지표보는기 아이라고예

 

부모님 말고는 아무도 보모 안된다꼬예"

 

"앗따 고 주둥아리 참 야물다 순경을 겁도 안 내고 ... 쎄기쎄기 집에 가바라"

 

이 순경은 의자를 사쿠라나무 그늘아래 내 놓고  오는사람 가는사람을 다 잡아서 씨잘대기 없는

 

말을  궁시렁거렸다 지서앞으로 올라가는 논둑길은 노디경사가 심해서 누가 

 

잡아주어야 올라가기 쉬웠는데 다리가 짧은 아들이 올라가는거는 힘이 들었다

 

"아저씨, 다리가 짧아가 안 올라가 집니더 퍼뜩 와서 잡아올리주이소"

 

"그래 그라모 통지표 베주끼가?"

 

"그라모 울아부지한테 이야기하지마이소"

 

넷은 기어코 순경아저씨의 도움을 받고서야 지서앞에 올라섰다

 

지서엔 박정희 대통령 사진이 덩그렇게 걸려있고  벽에는 순경모자 순경몽둥이랑

 

수갑이 걸려있고 , 호루라기도 걸려있고, 급사언니가 가방에 서류를 넣고 있었다

 

본서에 가려고 준비를 하다가  아이들을 보고 깜짝 놀라서

 

"명주야, 너그가 말라꼬 지서에 들어오노?"

 

'이순경아저씨가 통지표 안뵈주모 잡아간다캤다"

 

"참말로 아들한테 몬하는소리가 없네 개안타 안 뵈 주도 된다"

 

'안된다 아저씨가 우리로 수갑채아가 본서로 잡아간다캤다"

 

"아들한테 와 쓸데 없는 소리를 해사예  개안타 언니빽이 더 쎄다

 

걱정말고 가거라"

 

"사실은 언니야, 통지표 비에 젓어가 글짜가 다 몬알아묵거로 됐삣다

 

우짜모 좋노 학교에 가가야 되는데"

 

"그래 함 보자 이거 안되것네 그라모 며칠뒤에 지서에 온나 등사판에다

 

밀어가 맨드라주께 알긋제 "

 

지서의 급사언니는 얼마후에 이순경이랑 결혼을 했다

 

그러니 언니빽이 더 쎌수 밖에

 

언니는 방학이 끝 날 무렵에 등사기로 통지표를 다시 맨들어주었고

 

명주는 그 날 집에 가서 공부잘하는 오빠들앞에서 바보, 축구, 돌대가리 소리를 듣고

 

문앞에 두손 들고 서서

 

"다음부터 공부 잘 하겠습니다"

 

이 말을 백번하는게 벌이었는데 한참 말을 하다보면 말이 헛나와서

 

"다음부터 공부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이 꼬이기 시작하모 오빠는 앞에서 틀릴때마다 머리를 톡톡 꿀밤을 주며 다시 하라고

 

했고 그 말을 오십번이나 하다가  틀리고 하니 또 처음부터하고

 

이렇게 공부잘하겠습니다란 말은 얼마나 어렵고 서럽게 했던지 끝내 명주는 울어버렸다

 

"오빠야, 니가 해바라 안 틀리는가 내가 그말 핸기 수백번도 더 된다

 

오빠야, 공부만 잘하모 젤이가? 순경도 안 잡아가는데 와 오빠야가 나한테 벌로 씌우는데"

 

하고 엉엉 울고 나서 저녁도 굶은채 잠들었다

 

 

 

그런 날 밤 꿈에도 명주는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산도,들도, 바다도 훨훨나르는 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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