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뱃길...

유리창에 빛나는 햇살

이바구아지매 2007. 7. 6. 17:22

"저 봐라 영민이다 영민이가 나타났다"

 

"어데어데 "

 

"저기바라 창문에 코로 비빈다"

 

"와 하하하 영민이 코는 납작코래요 얼레리꼴레리 얼레리꼴레리"

 

"영민이하고  저거엄마하고  염소하고 그리있네 ㅋㅋㅋ 우습다 저게 좀 봐라 쎄(혀)로

 

유리로 홀(훑)는다 더럽거로 우엑"

 

"누런코로 문댄다 저 봐라 오늘 유리청소 더러바서 몬하것다"

 

"조용조용히 좀 몬하것나 앞을 보고"

 

선생님게서 교탁을 회초리로 탕탕치셨다

 

"그리 놀리는기 아이다캤제 "

 

선생님은 날마다 부딪는 이 묘한 광경에 더 이상 아이들에게   놀리지못하게 해도 먹혀들지를 않았다

 

"샘예, 맨날 영민이가 와서 유리창에 누런코로 묻히고 쎄로 홀타묵고 손으로 칙 긋고 이랑께

 

더러바서 유리창청소 몬하겠어예"

 

하고 혁근이가 큰 소리로 내 지르니 아이들은 '와'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하고

 

그런줄도 모르는 영민이는 또 다른 창문으로 옮겨가서 침을 콕 찍어 유리에 긋기도하고

 

코를 누르기도하고 입김을 후후불며 손가락으로 줄을 주욱 그어내려가기도했다

 

햇살이 아쉬운 11월의 4학년 1반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었다

 

영민이는 우리랑 비슷한 또래였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았는데 몸집은  퉁퉁하고 키가 제법 컸다.

 

언제나 얼굴 가득 웃음을 달고 다녔으며, 옷차림은  두둑한 핫바지와   검정교복자킷을  늘 입고 다녔다.

 

그런 영민이의 엄마는 두둑하고 시커먼 누비몸빼를 입고 기장이 긴 허여멀건한 저고리를 입었는데

 

가난이 물어 뜯는 살림살이라 늘 배고픈  형편인데도  영민이 엄마의 가슴은  불룩하여 저고리 앞섶을 비집고  

나오는 젓가슴이 한짐으로  풍만했다

 

씻지도 않는 두 모자의 형색은 거지나 비슷했는데 영민이의 머리엔 모자가 씌어있었다.

 

아직 겨울은 멀었는데 철이른  귀마개가 달린 모자로  꼭꼭 싸맨 모습은  이미  겨울아이였다. 영민이 엄마는

 

앞가르마 반듯하게 타서 머리를 비녀로 꽂았으며

 

늘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는데  열린 입안으로 보이는  하얀 이가  고르게 고았던 영민엄마

 

항상 염소를 몰고 다녔던 두사람을 우리동네 사람들은 '염소네 ' 라 부르기도 했다.두 모자가 살앗던 거처는 뜻밖에도

우리동네 지서에 딸린 숙사였다.

 

숙사는 순경들이 발령을 받아오면 생활하는 주거공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순경가족들은

 

지서와 가까운 우리집에서  셋방살이를  하였으며  숙사는  영민이네와 또 한 집 영민엄마처럼

 

이북말씬지 아니면 강원도쪽 말씬지를 쓰는 자전거를 고쳐주는 일을 하는 아저씨네가

 

각각 방한개씩 차지하고 살고 있었다..

 

관사의 마루는 넓고 길고 멋진 곳이었지만 두 집이 살면서 청소를 하거나 깨끗하게 하는

 

사람들은 아니라서 멋진 지서관사가 꼭 도둑놈소굴처럼  변해갔다

 

자전거 고치는 일을 하던 희경이네는 딸셋과아들하나랑 좁은  한방에서 살았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때만 해도  거지가 참 많았다

 

아이가 말을 안 듣거나 땡강을 부리면 엄마들은

 

"저기 거지가  망태를 매고 와서 잡아간다 뚝 그쳐"

 

이러면 울던 아이가 놀라서 뚝 그치기도 했으니  우는 아기도 쇠갈고리손을  기억했다

 

영민이네도 거지나 다름없었다

 

우리동네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10분거리였는데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수업시간에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을 빼면 거의 영민이가 와서 교실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오전11시경엔 학교앞에 급식빵차가 와서 따끈한 급식빵을 내려 주고 갔는데

 

빵차가 올 때쯤이면  우리반 키큰 친구 두셋이 교문앞에서 빵차가 내려주는 따끈한

 

빵을 받아왔다 곧 오전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은 따끈한 빵을 우리에게 나눠주셨고

 

교실밖에서 유리창에 코를 박고 있던 영민이에게도 빵한개씩 종종 주었다

 

그래도  빵은 대여섯개 정도  남았는데 그 빵은 선생님께서 우리가 착한 일을 하거나

 

청소를 잘하면 주시기도 했다

 

우리는 빵을 받으면 당장 먹지 않고 집에 가져가서 갈라먹었다

 

빵을 받고나면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학교를 마치고 용케 참고 집에 가져 간 기억은

 

지금도 그립다  중학교에 진학 한 후 다른지역에서 온 친구들은 빵배가 들어오는 시간을 기다리며

 

선창으로 달려가서 빵배를 기다리는 즐거움을 말하곤 했는데 빵배가 선창으로 들어온다는 그 말이

 

얼마나 멋진지 그 말을 들을때는  꼭 책에서나, 혹은 영화속 이야기도 같았다

 

 

12월이 왔고  날씨는 더욱 추워져서 햇살이 많이 그리웠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아버지께서

 

"허허허 인제 영민이도 호적이 만들어졌다 어엿한 시조할배아이가"

 

"호적을 누가 만들었어요?"

 

하고 내가 궁금해하니

 

'아버지가 했지 시조 임영민 본적 강원도 홍천 나이13세"

 

하고 아버지가 말씀하셨고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아버지, 우째 시조가13살밖에 안됩니까?"

 

시조라하면 연세가 지긋하거나 옛날에 돌아가신분이 아닌가예?"

 

"영민이네는 그렇지를 못하지 그러니까 영민이르 시조로 만든거야

 

인제 영민이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장가도 가고 다 할 수 있어 참 다행한 일이야"

 

하셨다 

 

"영민이도 참 불상한 아이야  엄마가 강원도 홍천에서 부잣집 딸이었는데  6.25전쟁때

 

 폭격기에 가족이 맞아 죽는 걸 보고  저리 되었다고 해 우리가 사는 거제도에는 다행히

 

 전쟁은 없어서 피난  온 사람들과 수 많은 포로들이  그나마 살 수 있었어 불쌍한 가족들이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영민이네는 염소랑 함게 학교 근처를 맴돌다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훗날 내 친구 결혼식에 갔는데  결혼식 피로연에  오래전 영민이가 그 자리에 있질 않는가

 

얼마나놀랬는지 친구의 귀에다 대고

 

"청경아,, 저 사람 이름이 뭐니??? 안면이 많아?"

 

'임 영민 왜 저 사람 사업 성공해서 돈도 잘 벌고 와이프도 굉장히 미인이다

 

아들도 잘 생겼고  우리신랑 친구라네 그런데 왜 물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우리는 같은 식탁에 앉았지만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쑥쓰러운가

 

 

참 다행한 일이다

 

영민이네가 잘 살고 있다니

 

그런데 참 궁금한 건 날마다 함께 다니던 엄마랑 염소는 어찌되었는지

 

때로는 궁금한 것이 있어도 그냥 모른체 지내기도 한다

 

그것이 현명한 것이라면  ... 그 겨울의 햇살도 찬란했던 것 같다

 

유리창에 빛나는 햇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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