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뱃길...

보 리 밭 이 야 기

이바구아지매 2007. 7. 12. 18:47

보리가 익어가고, 보리수염 노릿노릿하고, 보리알이 꽉차서  통통하게 살 오르면

 

우리집 앞  일곱대지기 보리밭 손 닿는 곳으로 보리이삭은 남아나질 않았다

 

나도,언니도 보리이삭을 톡톡 따서 타고 남은 불에 석쇠 놓고 보리모태를 구워 먹었다

 

통통한 보리알이 조막손에서 비벼져서 껍질 후후 불어내고 보리알을 입에 톡  털어 넣고

 

꼭꼭 씹으면 그 쫀득쫀득한  보리맛을 잊을 수 있을까?

 

입도, 손도, 시커멓게 선달꾼이 되어도 그 맛에 끌려 저녁밥 먹으라는 엄마의 재촉에도

 

들은척도 않고 있다가  몇번이나 고함소리를 듣고서야 부석아궁이 곁을  나와 물에 고양이세수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숙제도 않고 잠이 들었다.

 

6학년인 언니랑 종일 들판을 쏘다니다가 밤에 딩굴딩굴 잠이 들었다

 

언니는 한 번 잠이 들면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

 

나는 잠귀가 밝아서 언니가 먼저 잠들고나면 내 다리를 언니배위에나 다리위에 얹고 잤는데

 

그 자세가 얼마나 편한지,  늘 그 자세를 취하고 잤다

 

언니는 자고나서도 내가 다릴 올려서 너무 힘들다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래도 그 습관은 내가 결혼해서 우리 신랑한테까지도  그러니 신랑이 죽을맛이라고 짜증을 내다가

 

언젠가부터 그냥 두었다 그냥 뱃살 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나?

 

 

 

그 날 밤에도  내 다리는 언니의 배위에 얹힌채 잠이 들었다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

 

"어데서 이라요? 빨리 일나보소 쎄기쎄기 나가보소"

 

엄마의 놀란 목소리가 큰 방 문을 열고  열었다

 

"또 보리밭에서 난리가 났는갑다 내 이것들을 당장..."

 

하고 아버지는 간짓대를 들고 집 앞 보리밭으로  쫓아가셨다

 

잠귀가 밝은 나도 오똑 일어나 앉았다

 

우리집은  신작로옆이라  길위에서 일어나는 희안한 일을 많이 목격했다.

 

그 날 밤  우리집 아랫방에 세들어 살 던  택시기사가 또 사고를 친 것이었다

 

그 놈의 보리이삭 익어가는 냄새 때문에 그리되었다고도하고  찔레꽃, 인동초, 아카시아꽃향기

 

때문이라고도 변명을 둘러 댄 것 같다 하긴 냄새에 홀려서 친 사고긴 했다.

 

택시기사들은 행동이 좀 얄궂다

 

"웬 년놈들이 이리 쓰대노?"

 

"낮에는 소가 쓰대고, 밤에는 년놈들이 쓰대고 너무 보리밭 다 정치네"

 

길가에 보리밭이 있는집 아지매들의 입은 참말로 글었다(험하다)

 

"밤에는 년놈들이 연애질 한다꼬 너무 보리밭을 헝컬어사니 보리농사 몬해묵것다"

 

안그래도 아지매들의 입은 걸쭉한 말을 내뱉는데 선수들인데 ,

 

6월의 보리밭은  세상을 온통 보리냄새로 소들까지 흐느끼게 했다

 

어느 날 내가 소를 몰고 논둑길로 가다가 보리이삭을 본 소가 나를 아랫논으로 뒷발길질로 걷어차서

 

날리고 코뚜레를 놓친 나는 붕 날아서 보리밭에 쳐 박히고 소는 보리밭을 쓰대댕기며 다 정치고

 

이삭은 닥치는대로 뜯어 먹었다

 

나는 등판에 보리까시렉이 엉망으로 붙어서 찔리고 팔,다리도 보릿수염에 할퀴어서 핏자국이 선연햇다

 

보리까시레기는 따끔따끔하면서 밤 잠을 설치게 했다

 

소는 보리밭의 복새풀을 좋아하지만  보리맛을 알고나면 보리밭을 향해 질주를 해서 계집아이

 

힘으론 소를  몰아가기 어렵다

 

소는 보리이삭이 익으면 흥분이 되는것 같다

 

소가 쓰댄 보리밭은 엉망징창이 되고 이런 일은 낮에 있는 일이고

 

밤에는 평화로운 보리밭이 음밀한 곳으로 변한다

 

바로 처녀총각들이 이 보리밭을 쓰대며 숨바꼭질을 해서 그렇다

 

보리가 익어갈 때쯤   눈에 든 처녀총각은 이 멋진 보리밭 데이트를 즐겼다

 

 

그 날 밤 우리집 아랫방 질나쁜 기사도  손님으로 탄 아가씨를 보리밭으로 끌고 갔다

 

보리밭에서 얼마나 딩굴었을까 아가씨는 죽을 힘을 다해 고함을 치고 아버지는 긴

 

장대를 들고 쫓아가서 보리밭에서 나 딩굴어진 아가씨를 구해 오셨다

 

미친년 광대짖을 한 것 마냥 아가씨는  엉망징창이 된 채   우리방으로 왔다

 

아버지는 몇살인지를 물엇고 집이 어디며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도  물어보셨다

 

나이가 열여섯이라고 한 아가씨는 파마를하고 화장도 햇으며 핸드백에다 판타롱 바지를  입고

 

신발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답답하고 숨막히는 집이 싫어서 뛰쳐 나왔다고 했고 아가씨처럼   보이려고 화장까지 했다고 했는데

 

화장은 엉망이었고 보리깜붕기가 온 얼굴을 먹칠을 한 모습이   흉하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는 세상은 무서운 곳으로 열여섯 나이에 함부로 세상에 뛰어드는 건 잘못이며

 

꼭 집에 돌아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성인이 될때까지 부모님 곁에 있어야 한다고  충고하셨다

 

훌쩍훌쩍 울며 화장과 깜붕기의 색이 뒤석혀 눈물바람을 하고 선 언니에게 난 무어라고 위로의 말도

 

못하고 , 그냥  울엄마의 월남치매를 들이밀었다.

 

다음 날 택시기사는 아버지께 혼이 나서 집을 쫓겨나고 , 집을 나온 언니는  옷을 깨끗하게

 

빨아입고  단정한 모습으로 다시 학교로 가겠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에도 보리밭 이야기는 줄줄히 이어졌다.

 

건너마을 민자언니가 보리밭에서 연애를 하다 아지매들한테 들켰고 다행히 민자언니는

 

동네오빠랑 결혼해서  잘살았다

 

참 민자언니가 낳은 아이이름은 '보리'  동네 아지매들이 우겨서 지은 이름이었다

 

보리로 안하면 그 때 있었던 일을 소문낸다고 엄포를 놓은 때문이기도하고,

 

보리란 이름이면 적어도 배를  골진 않을것이라고 하면서...

 

 

우리양훈이 오빠친구도 설훈이 오빠친구도 다 보리밭에서 연애를 해 보았다고  했다

 

"가시나들 참 부끄럽다쿠대"

 

어린 나는 그 소리들이 다 참 신기했다

 

길가에 섰던 보리밭들은 말짱한 보리가 없었다

 

소가 좋아서 쓰대고

 

사람이 연애한다고 쓰대고...

 

 

 

바람에 보리이삭은 흐흐흐... 흐느끼는 소리를 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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