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쯔엔이 오던 날(하노이 신부)

이바구아지매 2007. 8. 6. 08:58

 

 

 

 


 

"따르릉따르릉..."

 

"에잇 참 낮잠 한 잠 자려니 간밤 잠도 설쳤는데..."

 

"여보세요?"

 

"지은에미야  지금  날아오이라 어서 와야제 입은 옷에 가나는 언니들한테 맡기고,

 

지금 온단다 어서어서 와서 음식준비해라

 

오늘 일할사람 니 밖에 없다  아이구 나 시방 너무 급해서 전화도 몬하것다

 

아무도 없는데 하노이에서 '쯔엔인가 츠맨가가 온단다"

 

"작은집 가족들은 없어요?'

 

"휴가라꼬 다 외도가고 미국가고 없다 하필요때 와서 우짜노 손님은 많이 오끼라쿠는데

 

진소리짜린소리는 와서 하고..."

 

전화 끊고나니 은근히 부아가 치솟네

 

땡땡여름에  온 종일 뜨거운 불앞에서 잊어먹은 잔치음식을 재생하려니 이건 죽음조

 

속엔 부아가 연신 궁시렁궁시렁 목구멍으로 기어오르고

 

'아니, 입은 옷에 오라니 이건 늘상 울어무이 말씀중 젤 기분이 언짢은 표현이다

 

시비를 걸자니 별게 다 시비네

 

나는 외출복도 변변찮은데 입은 옷이라모 작년에 어무이가 준 데드론 몸빼입고

 

1960년데꽃무니 다오다블라우스 함 입고 가 봐

 

나 오늘 전화 한 통화에 대갈빡에 양족으로 뿔났어 도개비뿔이...

 

그냥 기분도 그런데 신도 플라스틱 신 신고 가?

 

그런데 여름플라스틱 신은 땀나고 걷다보면 발이 자꾸 접칠러져 파이라

 

요번에 장화를 신어야제   비 오는 날 신는 ... 나 이 장화 신고 땀에 절인 발로

 

오늘 내  성질 건드린 사람들한테 발꼬랑내나  실컷 풍겨줘야지...

 

나도 성질 급해서 전화 받고 나서 꾸물대긴 싫고 난타전을 벌여도 가서 벌여야제

 

가나한테 거짓말하고 가는 건 좋지 않아 울든지말든지

 

"가나야, 엄마, 오늘 저기 하늘나라에서 선녀님이 온다네

 

예쁜 선녀가 배가 고파서 엄마가 가서 밥 좀 차려주고 올게 언니들이랑 놀고 있어

 

올 땐 선녀님이 준 선물 받아 올게"

 

가나는 울음 가득 입에 달고 씰룩거렸지만 단오하게 떼어놓고  하노이에서 날아오는

 

신부를 맞으러 출발...

 

 

속력 내어 송정집에 도착

 

 

 

"어무이예 저 왔는데예?"

 

"우째그리 빨리 왔노?  와서 콩국수 한그릇 묵거라 썬하다 얼음이 동동 떠서 억수로 꼬시고 시원네"

 

하고 콩국수 한사발을  들이밀고 난 또 양보않고 단숨에 들이키고

 

"지은아, 니 오늘 옷이 그기머꼬???"

 

'어무이가 입은 옷에 오라캐가 이레 안 왔습니까?"

 

"그래도 그렇제 하노이에서 새 신부가 오는데 니 옷이 그라모 되것나?"

 

"오늘 하루종일 불앞에서 일할낀데 이 옷이 어때서요

 

다 골동품이고마는  얼매나 좋습니까?  신도 장화 신고 왔어요"

 

"허 참 가지가지하네 니 지금 보막으로( 논에 물이 잘 들어가게 물길을 잡아 주는  봇물) 

 

왔나?  보또랑에 물이 만장것는데

 

니가 해 온 꼴은 잔치집에 온기 아이고 보막으로 간다고 해 온 차림새네

 

아무리 입은 옷에 오라캤지만 너무 핸 거 아이가?"

 

"뭣이 어때요  작은집에 가입시더"

 

 

작은집(작은아버지댁)

 

주방바닥엔 온갖  잔치음식 재료가 나와서 하노이 신부를 맞을끼라고   대기중에 있고

 

숙모님은 내가 도착하자마자

 

"나사 몬하것다 이런 음식을 나가 우찌하노 아가, 니가 해바라"

 

"무슨 음식인데 그랍니꺼?"

 

"삼계탕, 닭도리탕, 백숙..."

 

'아니 이게 무슨  잔칫날 음식인가예? 보양식이제"

 

"그랑께 말이다 선이가 이래놓고 저그는 외도에 놀러가삐고 할 줄도 모리는 나가 우짜모 좋노?"

 

참 어이없다  하노이에서 오는 신부가 오자마자 더운 음식에 땀만 쭉쭉 빼겠네

 

우왕좌왕 하는 숙모님의 근심어린 얼굴을 대하니    금새  심술보가 풀리고

 

"함 해 보입시다 안 그래도 속이 허한데 이 별난 잔치음식으로 허한 속 보신하고..."

 

"오늘의 주방장 아니 요리사 (가범귀소지맘) 의 지시를 잘 따르시오"

 

'언냐 니가 요리사고 주방장이다 우리는 심부름꾼이고"

 

"숙모는 어무이랑 오늘 제 전속 시다바리고 주방장의 곤조는 다 익히 알지예 시키는대로

 

해야하는기라예"

 

"예에예 알것심더  시키만 주이소 깊은 산골짝에 가서 산삼이라도 파올게요"

 

"숙모 참말로 산삼 캐 올랍니까? 그런 정신이모 오늘 일은 술술 풀릴낍니더

 

하노이신부 맞기 어렵네  쯔엔이 이 형님이 이레 맞난 보양식을 만들고 있는줄이나

 

알랑가?"

 

"모리제 오늘 첨이라서 눈에 제대로 뵈것나?"

 

"숙모? 그건 숙모 시집올때나 그랬지 지금세상에 누가 부그럽다꼬 고개 쳐 박고

 

아무것도 안  먹고 쫄쫄 굶는다캅디까? 두고 보이소 쯔엔이 오자마자  잘 먹을끼라예"

 

우리는 더운 열기에도  닭도리탕도하고 삼계탕, 부침, 그리고 수육까지 준비하고

 

더워서 비빔국수까지 만들어먹고 시원한 수박을 한 통 깨서 먹고

 

잔치집답게 냄새가 밖으로 풍기니 개가 냄새를 맡고 당이 꺼져라 뛰어올랐다

 

전화를 해 보니 쯔엔을 데리러 공황에 간 시동생과 시누남편이랑이 덕유산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단다

 

우리 요리사 3인조가 밥세 솥까지 해 담아 놓고도 시간이  여유로워지자

 

벳남에서 결혼식한 사진과 비디오를 구경했다

 

아오자이의 쯔엔은 죽은깨가 있었지만 명랑해보이고 귀여웠다

 

사촌시동생은 인물이 훤하고 하노이 신부집엔  식구가 왜 그리 많은지

 

쯔엔의 아버지 형제들은 모두 10남매로  근처에 살고 할머니, 외할머니도 한 집에 산다고

 

집안 분위중 젤 특이한 것은 공산당 계급장을 가득 달고 군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그 모습이

 

꼭 김일성 사진을 거실에 달아 놓은 것처럼 거실 중앙에 떡 버티고 걸려 있는 모습에

 

무슨 훈장이 그리 많이 달렸는지 월맹군시절 월남 공산하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뽐을 내고 있었다

 

지금도 쯔엔의 아버지, 어머니는 인민복을 입고 출근을 하는데 모습이 참 재미있었다

 

숙모도 벳남결혼식에 가서 일주일 있다 와서 본것, 들은 것 느낀 것을 많이 들려 주고

 

이렇게 쯔엔이 오기전에 쯔엔에 대한 약간의  이해를 하고... 노닥거렸다

 

 

오후4시  우리는 모든 음시을 상에 차려 놓고  오늘의 주인고 쯔엔 이야기만 쏟아내고 있었다

 

차문 여는 소리가 나고 

 

'아니 쯔엔이 왔어요 벳남말로 만나서 반가워요... 이 정도도 못하는데 어쩌지 영어로할까?"

 

"그런 말 필요없다 니는 '한님이'(신부를 도와서 절도 시키고 신부옆에서 도와주는 일을 하는사람)

 

나 잘 해라 "

 

하고 어무이가 난데 없는 한님이타령을 또 한다

 

"쯔엔이 결혼식을 다시 올릴건데 무슨 오늘 구식 결혼하는 것 처럼 하려고해요

 

오늘은 한님이 안 할래요 누구한테 절시키려고요 그냥 편하게 인사하고 결혼식을 올린 후에

 

나 정식으로 한님이 한 번 해 볼랍니다"

 

밖은 수근수근 말소리가 들리고 얼른 내 디카를 찾아들고 밖으로 나가고

 

하늘엔 웬 희구름이 그렇게도 둥실둥실 떠 가는지

 

아마 벳남에서 쯔엔을 데려다 주고 가는 모양이다

 

느낌이 좋은 시간 하얀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차에서 내린 쯔엔이 눈이 부신지

 

손 가리고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보았다

 

"삼촌, 쯔엔어깨에 손 올려봐요 내가 멋진 사진 찍어줄게"

 

그래서 인사하고 이런저런 다정한 포즈를 디카에 담았다

 

"바쁘다바쁘 "

 

거실에 다 모여 앉은 가족들 오늘 새 가족이 된 쯔엔을 위해 여러가지 배려를 해 주고

 

"편하게 앉거로 편한 옷 한 벌 주거라"

 

어무이말씀에

 

"뭐로 주모 될낀고' 숙모님이 걱정스런 말을하고

 

'월남아가씨는월남치마가 딱이라요 월남치마 주세요"

 

하고 내가 너스레를 뜨니

 

"월남치매는 없다"

 

"그라모 몸빼주면 되지요"

 

"몸빼? 그거는 안 된다 각시로?"

 

어무이는 지금 격식을 어지간히 찾으시고

 

"숙모, 꼬장주 내오소 쯔엔하고 사이좋게 지낼라모 숙모꼬장주가 젤이다?

 

이렇게 우겨서 예쁜모습으로  있어야 할 쯔엔이 꼬장주를 입고  웃기는 모습으로

 

상머리에 앉고 시키는대로 잘 하는 쯔엔의 옷차림이 나랑 비슷해지니 얼마나 우스운지...

 

배가 고픈지 아무거나 잘도  먹는 쯔엔 , 국물은 안 먹는다고 밀어내고...

 

"오빠, 오빠 먹어"

 

라며 국그릇을 시동생한테 옮겨 주고...

 

"아이구 지서방이라꼬  저리 챙기주는거바라 아이구 참말로 사랑시럽다"

 

우리어무이는 좋아서 어쩔줄을 모르고...

 

 

사진도 몇 장  찍고어주고...쯔엔은 22살 아가씨로 꿈 많을 시기

 

내 의사가 어느정도 통하게 되면 데리고 카페에도 가고 쇼핑도 가야지

 

쯔엔이 생각보다 밝고 활발해서 좋다

 

가져 온 가방속엔 아오자이도 있고

 

오기 전 날 밤엔 엄마랑 한 없이 울었단다 친정엄마가 새로 사 준 옷가지들...(내 짐작이지)

 

딸이  먼 이국땅으로 시집 가는 마지막 밤을 하얗게 새고 온 모양

 

내 다 알지 오랫동안 얼마나 고향이 그리울까?

 

마음착한 시동생은 그저 쯔엔이 좋아서 입을 못다물어서

 

내가 한 마디 했다

 

"삼촌 쯔엔이 얼마나 좋아?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그럼 우리 보는 앞에서 안고 뽀뽀 해 봐"

 

"ㅋㅋㅋ 쯔엔 키스키스 쪽쪽 "

 

쯔엔도 씩씩하게 어른들앞에서도 잘 했다

 

우리어무이는 조카며느리 쯔엔이 좋아서 나보고 하는 말

 

" 이 세상에서 젤 예쁘다 어서빨리 나도 말해보고 싶다

 

지은애비가 와서 통역을 좀 해 도라캐라"

 

"벳남 말은 못해요 영어로면 몰라도 "

 

쯔엔은 똑똑했다 6개월 정도 한국어학원에 다녀서 웬만한 한글은 읽을 수도 있다니

 

나 참 신기한 일도 다 있지 내 동서가 벳남의 하노이신부리니...

 

언제나 우린 웃으며 첫날의 느낌을 완벽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우리 어무이는 벌써 쯔엔 사랑에 열을 올리신다

 

너무나 좋은신게다

 

아마 울어무이 곧 벳남말까지 배운다고 극성을 부리실게다

 

"바라바라 얼매나 참한고 밤에 지가 입었던 빤쭈도 빨아 안 널었나 야무지제

 

나사봉께 여간 똑똑한기 아인기라 우리집안에 똑순이가 하나 안 들어왔나

 

참 기분 좋은기라 "

 

나도 쯔엔의 손을 꼬옥 잡아 보았제... 말이 필요업지 ... 눈으로 말해도 다 통해

 

'나 큰 형님"

 

"형님, 형님"

 

고개 끄덕끄덕 ... 귀여워라... 그건 그렇고

 

"참 큰일났어예 우리어무이 사랑이 쯔엔한테 다 옮겨가면 우짜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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