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어"
"왜?"
"버스에서 영호를 만났어"
"그래서?"
"나 쪽 팔고 망신 당하고 쥐구멍 찾는 날..."
"영호가 어쨋길래?"
송정에서 버스를 탔지 쏜쌀같이 달려 오던 차에 짐꾸러미랑
함께 탔는데 마침 버스 중간쯤에 자리가 보였어 차비로1000원짜리 지페를 넣고 막 달려 갔다
자리에 딱 앉았지 휴 하고 느긋하게...
"야, 가시나야,와 그냥 가노 와 아는 척을 안 하노 가시나야 니 그랄래?"
듣기 거북한 말이 설마 나를 보고 그럴거라 생각이나 했을까?
"가시나야,니 참말로 그랄끼가 와 모른척하노"
'참 누가 누굴 보고 그러는지 말뽄새가 기막히다'
창문 밖을 내다 보며 바깥 풍경에 눈을 고정 시킬 찰라
"야, 맹~앵~수~가 니 그랄래? 나 영호다 가시나가 와 모른척 해"
큰 고함소리가 들리는데 이게 무슨 망신 ...맹~수~기는 바로 나
앗 이런 일이 이런 체면구겨지는 주인공이 나라면 어서빨리 대처해야지
"어 영호야, 미안미안 내가 차 탈때 널 못봤지
봤으면 모른척하나 미안미안"
"그래 나는 영호고 니는 맹수기아이가 와 내가 니를 모리것노
니는 연광이랑 결혼해가 서울에 안 살았나 그런데 지금 요개 우짠일이고"
'아직 요기로 내려 온 줄 모르는구나 그럼 이야기 할 필요없지'
"응 추석이라고..."
될 수 있는 한 말도 줄이고 ...
참 민망한 모습인 영호 영호는 낮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지금
어디가로 가고 있는데 입에서 쏟아지는 말이란 것이
세상을 향해 삐딱선을 탄 말만 쏟아 놓고...
저런 모습을 보고 내가 어쩌겠는가?
주절주절 저러다가 차에 오줌이라도 누워버리면 얼마나 곤란한가
"맹수가 니 영호 모리나 니 모린척하모 내 마이 섭섭하다
이 영호가 섭섭하다 이말이다"
나는 이미 버스안에서 체면은 이미 다 구겨지고 더 이상 내가
우스운꼴 안 당하려면 좋게좋게 받아주어야지
그것이 나를 덜 난처하게 하는 모습이 아닐까? 하긴 무슨 현명한 판단이 설까?
영호는 수십년 못 보았지만 아직도 날 기억 해 내고 있다
혹시 옥포에 가나?
옥포에서도 안 내리고 아주에? 그기도 아니면 장승포? 옥수동?
앗 큰일났네
혹 또 날 따라내리면 동사무소앞에 차가 정차하자
"새댁 나 짐 한나만 들어주모 좋것다 다리가 아파서로"
그 말 듣고 후다닥 할머니의 짐을 들고 얼른 먼저 내렸다
영호가 차에서 놀란듯 내다 보았다
할머니 짐을 주고 얼른 횡단보도를 건너서 미용실쪽으로
숨어버렸다
"나 이젠 어쩌나 옛날에도 날마다 신작로에서 쫓아서
하루도 마음 편할날이 없었는데 오죽 쫓았으면 영호 보기 겁나서
소롯길로 댕겼을까 뱀도 떡 하니 길가운데서 혀를 낼름거리며 지키던 길, 열녀천 물귀신도 머리칼 잡아댕기는 느낌인데
그 길로 댕겼을까
그 때 영호가 하도 쫓아서 넘어져서 무릎도 만신창이가 되고
그래도 선생님께 한 번 도 안 일렀는데
영호 생각만 하면 지긋지긋한데 또 차에서 그러니 담에 보면
우리집 따라 오려 할텐데..."
"그럼 한 잔 하지 뭐 나는 영호 가끔씩 본다 내가 먼저 아는 척 하는기라 그기 속 편하다아이가 그냥 좀 비뚤어진 성격이
된 거로 우짤끼고 각시도 갔다하더라 재미없는 인생이지뭐
너무 밉다하지마라 불쌍타아이가"
"참 어이없제 어릴때야 재미삼아 쫓고 쫓겼지만 인제 어른인데
그럼 되나 나는 꿈에도 영호 보기 싫다"
인제 고현 나가는것 겁난다 나 사는데까지 따라오면 우사당하고
망신스럽고..."
"그래 사람이란 훌륭하게는 아니더라도 똑바르게 살 수 있는 토대가 서야 하는거다 얼마나 불쌍하게 다니노 하루도 낮술에 안 취하는 날이 없을끼라 딸내미가 둘이나 있다던데 어찌되었는지..."
고향에 살다 보니 좋건 실컨 성공한 사람도 보지만 잘못 된
꼬인 인생을 사는 친구도 만나게 된다
남편은 늘 인생이 불쌍하다고 말한다
나도 가만 생각해 보면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성인군자처럼 행동은 잘 안된다
그냥 숨어버리고 모른척 하고 싶은 것이다
"야, 맹수가 내일모레면 우리 나가 오십이다
5학년이란 말이다 우리 철좀 들자"
영호가 한 말이 귓속으로 파고 든다
내일모레 5학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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