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이야기

희망의 마라톤

이바구아지매 2007. 11. 5. 20:25

 

환 데 후카해협 언덕 기슭에서 가까운 바다를 내려 다 보니 미역과 다시마가 자라서 수면위에 일렁이고 있었다.

드넓은 바다에 둥둥 떠 다니던 미역들...

 

부슬부슬 비 내리는 일요일, 간 밤에 잠을 설쳐 꿈도 꾸지 못한채 아침을 맞았는데 묘한 인연인가?  나는  이곳에 와서 특별한 동상앞에  서 있다

 

 테리 팍스가 생전에 달리던 모습

1루니에 새겨진 테리 팍스

 

전국에 그를 기리는 동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빅토리아에서 이미 몇 개의 동상을 보았지만 그렇게 강렬한

느낌이 오지는 않았다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던 대영제국의 통치자 빅토리아여왕

동상과 조지 밴쿠버동상이며 한국참전용사 동상이며 이런 것들은

 " 와 높구나"

이런 정도였다

 

눈으로 확인하고  노트에 기록되어지는 동상은

테리 팍스 "희망의 마라톤"으로 캐나다의 아름다운 영웅이

된 청년이야기...

 

 

그의 동상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Dreams are made passible if you try"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진다

Somewhere the hurting must stop"

어디에선가 통증은 틀림없이 멈춘다

 

현지가이드의 설명으로  테리 팍스는 이런 인물이었다

1958년 7월28일 캐나다 동부 위니팩에서 출생한 그는

1966년 밴쿠버의 포트 코키틀램에 정착하였다

 

어린시절 팍스는 다이빙을 가장 좋아하고 운동하기를 즐겼다  그에게는 어린시절부터  몇 가지 특징적인 것이 있었는데...

 첫째 축구,럭비,야구,농구등 모든 운동을 좋아했다

둘째로  키가 매우 작아서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더 노력해야 했다

셋째 그는 매우 경쟁적이었다

넷째  대단한 결단력의 소유자였다

 

이 정도로 보면 나랑 좀 비슷하다는 생각이???

키가 작고 결단력이 있는 것

나의 키는 156cm  이 키는 작은편인데 테리 팍스의 키도 작았다니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실감?

 

남편은 결혼초에도 늘 내가 작은아이라고 어찌나 놀렷는지

우리는 사소한 그런  일로 다투기도 하여 하루는 내가 야마꼬(꼬마야)를 탈출하는 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키 작아서 못하는 게 뭐가 있어 밥을 못해 높은데 물건을 못내려 (의자놓고 내리면 되고) 말을 못해,  나무를 못 타, 수영을 못해  한 번 만 더 야마꼬라 놀려 봐 밥을 안 해 줄거야 그러고 키 작은 것 말 안해도 내가 안다구 오늘이후로 절대로 야마꼬란 말 하면 안 돼 제일 속상하단 말이야"

 

그 후론 아직 한 번도 놀리지 않는다

 

잠깐 나의 이야기가 또 갓길로  새게 하였군

 

다시 돌아와서   당차고 다부진 테리 팍스는1977년  18세에오른다리에 골형성육종(bone cancer)에 걸려 3일 후에 오른쪽  다리 무릎아래서부터 절단을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다리하나로 뉴욕 마라톤을 달린 운동선수 에 대한 내용을 책으로 접하게 되었고 그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 암 치료 중인 다른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거야

난 할 수 있어 꼭 해 내고 말거야"

 

이렇게 캐나다 횡단 달리기를 결심하였다

 

1979년 희망의 마라톤을 위해 약 5000km를 달리기 연습

그해 여름 43km를 정상인보다 10분 뒤진 기록으로 완주하였다 1980년 9월 테리는  다리에 암이 퍼져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되었는데...

 

그 해 4월에 캐나다 동쪽 끝에서  달리기 시작하여 대서양끝에서부터 태평양을 향해 총143일 동안 5,373km에 이르는

거리를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렸다

 

의족으로 매일 마라톤 완주에 가까운 거리를 달린 그의 성과는 초인적인 정신덕분이었다고...

 

테리는 144일째 되던 날 9월1일 그의 23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암이 폐로 전이되어서 달리기를 중단하고

사망하였다

 

암 치료법을 찾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든 캐나다 국민들에게 알리려는 목적에서 시작된 테리의

"희망 마라톤"은 그가 죽은 후 1981년' 테리 팍스 재단 설립'으로 이어졌다

 

테리 팍스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높이고 암 치료와 연구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려는 그의 꿈에 현재 세계57개국 나라에서  매년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우리나라에도 해마다' 테리 팍스 런' 을 실시하고 있음)

 

캐나다는 해마다9월에 '테리 팍스 런' 이 열리는데 전 국민이 1$씩 내고 달린다고 한다  흐뭇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이만하면 테리 팍스에 대한 나의 관심은 대단한 게 아닌가?

가이드의 설명이 이만큼은 아니었지만 나의 관심을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캐나다가 사랑할만한 사람임에 확실하다

캐나다사람들은 빅토리아여왕보다 그의 공주 레이크 루이스보다 더욱 사랑한 사람이다

 

캐나다  돈 1$에  최초로 캐나다 사람 '테리 팍스'가 새겨졌

다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학교도 세워지고 테리 팍스 재단도 세워졌다

 

내 블로그를 찾았던 한나님도' 리더스 다이제스트' 책에서

아름다운 청년 이야기를 읽었다 하니 내가   좀 늦은편이다

 

그래도 좋다

 

자신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누군가에 희망과 빛이 되려 했던 용기 있는 테리 그에게서 배워야 할 교훈이다

 

내 아이들에게도 이야기 해 주고 이웃들에게도 용기가 , 희망이 필요한 분들이 이 내용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번 캐나다 여행에서 얻은  최고의 소득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몇가지 참고하였다

위키백과사전,네이버지식인,네이버 블로그, 다음 블로그

참 많이 뒤졌다.

 

아름다운 청년 테리의 미담이 가득 담겨 있는 위키 백과사전의 내용은 남편한테 해석을 부탁하니 몇 줄 해 주다가

스르르  잠 들어 버리고 ...

 

팍스는 1980년 4월12일 뉴펀들랜드주 세인트 존스시의  대서양에 한 다리를 적시면서 그의 희망의 마라톤을 시작했다

그의 생각은 그가 BC주 빅토리아에 도착해서 그 다리를  태평양에 적시는 것이었다

 

그는 대서양의 물을 두 개의 큰 병에 담았다

하나는 기념으로 가지고 또 하나는 태평양에 쏟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팍스가 한 일을 한 적은 없었다. 

 

얼마나 감동적인가  이  글은 위키 백과사전에서 남편이 해석 해 준 것이다(자고 일어나서) 

 

마지막으로  테리가 응급실로 실려 가고 있을 때  방송기자가 물었다

"테리, 다음번엔 어떤 일을 하실건가요?"

테리는 끝까지 프로 정신을 잃지 않고 용기 있게 말했다

"당신들은 내 달리기를 멈추게 할 생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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