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이바구아지매 2007. 12. 1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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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도 중간쯤 갔다.

다시 중간쯤만 가면 올해도  아듀~~

괜히 마음이 울쩍해진다.

이런 시간엔 지나간 그리움 한자락 되돌아 봄도 좋을 것 같다.

"젊은 연인들" 77년 MBC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은 이 멋진 노래를 들으며

그 시절에 쏟아져 나왔던 영화를 회상해 보는것도 좋은 시간이 되지 않을까?

여기에 소개 한 영화들은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들이었다.

특히 영화배우 이영옥과 나는 쬐끔 닮았다나?

아니 똑 같다고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었다. 

지금 보니 웃음만 킬킬난다.

촌발날리는 포스터며 최고 인기스타였던 그녀가 코믹하기 짝이 없다.

물론 지금도 깜찍한 그녀겠지만...

어쨋든  나를 닮았다는 이영옥이  나오는 영화들을 모조리 보는 열정을

보였다.  ㅎㅎ 이영옥이 나를 닮았다고 강조를 하며 ~~

오늘 아주 오래전에 극장에 가서 봤던 영화를 추억하며 미소지어  볼까?

어째 병태이야기만 잔뜩 나오냐?아니 내가 옮겨 온 것이 병태의 성공한이야기?

그래, 병태 너도  정말 멋있었어.  집에 가서  잠을 자도 병태와 영자가 꿈속에 나타났으니까  지나간 시절이 좋았구나 무지무지~~

 

 

 

이영옥(전 영화배우 47) 70년대 한국 청춘영화의 대명사였던 <바보들의 행진>의 여주인공 영자. 청순하고 발랄한 매력으로 당시 대학생들을 사로잡았던 이영옥은 지난 95년 결혼했다. 현재 안양에서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부자 되세요’ 광고로 대박 터뜨린 왕년의 ‘병태’ 손정환 (2002.4.12)

 
“영화출연은 좋은 추억일 뿐, 광고맨으로 살아온 걸 단 한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지난 79년 대한민국 청년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영화 <병태와 영자>. 이 영화는 서울 관객 30만명을 모으고 그 해 최고의 영화로 꼽히는 등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병태역을 맡아 열연했던 손정환씨가 광고 기획자로 변신, 올해 ‘부자 되세요’ 광고 카피로 또 한번의 ‘대박’을 터뜨려 화제를 모은다. 어느덧 중년의 신사가 된 그지만 톡톡 튀는 감성과 열정은 젊은 시절 ‘병태’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영화를 찍은 것은 좋은 추억일 뿐, 광고기획자로 살아온 것을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는 손정환씨의 멋진 인생.

최근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라 전체가 ‘부자 되세요’ 열풍에 휩싸이고 있다. 그 시작은 바로 신정 연휴 5일과 설 연휴 5일 동안 전파를 탄 BC카드 광고. 탤런트 김정은이 빨간 산타클로스 차림으로 나와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고 외치는 모습은 수없이 쏟아지는 광고들 중에서 눈에 확 띄는 것이었다. 물론 그 반향도 매우 컸다. 새해 초 ‘부자 되세요’는 ‘복 많이 받으세요’를 당당히 물리치고(?) 새로운 덕담으로 자리잡았고 ‘부자 되세요’라는 내용을 담은 카드 메일이 인기를 끌었으며 이동통신업체들의 캐릭터 다운로드 순위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처럼 대한민국을 흔들어놓고 있는 ‘부자 되세요’ 광고를 만든 사람은 바로 광고대행사 다이아몬드 베이츠 코리아의 상무 손정환씨(46).

“사실 저도 얼떨떨해요. 이렇게까지 큰 성원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그냥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말하고 싶었어요. IMF 때 다들 힘들었잖아요. ‘부자 되세요’는 지금보다 조금 더 여유 있고 넉넉하기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의 소망을 뜻하거든요. 그런 소망이 시청자들의 마음에 와 닿은 것 같습니다. 운도 좋았고요. 실제로 광고가 나간 후 BC카드는 시장 점유율이 상당히 올라갔다고 해요(웃음).”

현재 손정환씨는 광고업계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좋다. OB가 좋다’의 OB맥주 광고, ‘사람, 사회, 미래를 위한 가치경영’의 현대그룹 기업광고, ‘최강의 꿈 아반떼’의 현대자동차 광고 등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은 무수한 광고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그러고보니 ‘부자 되세요’의 대박이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럼 그는 언제부터 광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대학 시절 응원단장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배우로 데뷔

 
“아마도 연세대학교 재학시절 응원단장을 한 것이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가을 축제인 정기 연고전에서 응원이 하는 역할은 광고의 매커니즘과 똑같거든요. 올해의 응원 컨셉트를 정하는 것부터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 학생들의 폭발적인 힘을 이끌어내고 그 결과로 선수들을 최대한 고무시켜 승리를 거두는 것까지. 상당히 계획적이에요. 그리고 당시 재학생이 1만명 정도 됐는데 그들 모두 제가 ‘일어서’ 하면 일어나고 ‘노래해’ 하면 노래하거든요. 그 기분은 직접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겁니다(웃음). 또 영화감독님의 눈에 띄어 영화배우라는 외도까지 하게 됐으니 응원단장을 하면서 얻은 것이 정말 많았죠.”

아니, 그러면 그가 영화배우였단 말인가. 이목구비가 뚜렷한 잘생긴 얼굴. 그리고 왠지 낯이 익은 것 같았다. 알고보니 그가 바로 지난 79년 개봉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청춘영화 <병태와 영자>에 ‘병태’로 출연했던 것.

“<바보들의 행진>을 만드셨던 하길중 감독님이 후속편인 <병태와 영자>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병태역에는 실제 대학생을 캐스팅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요. 그래서 적당한 대학생을 물색하려고 78년 정기 연고전에 오셨죠. 사실 축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응원단장이잖아요. 카메라에 저를 찍어보시더니 얼굴의 선이 굵어서 영화를 찍으면 잘 나오겠다고 하셨죠. 당시 저도 군입대를 3개월 정도 남긴 상태였는데 촬영 기간이 두달 반쯤 걸린다고 하길래 ‘그냥 할게요’라고 대답했죠.”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손씨가 당시 최고의 여배우였던 이영옥과 함께 영화에 출연하는 행운을 낚아챈 것. 그가 출연한 <병태와 영자>는 소위 대박을 터뜨렸고 79년 한국영화 흥행순위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그는 영화계의 스타가 돼버렸다. 하지만 손씨는 입대를 연기하라는 영화사나 방송국의 계속되는 설득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날짜에 입영열차를 탔다.

“그냥 저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요. 군대 가기 전 3개월 동안은 열심히 영화를 찍고 그후 미련 없이 입대할 계획이었거든요. 예전부터 마음먹었던 거였기 때문에 아무런 흔들림 없이 입영열차를 탔죠. 당시 저를 좋아해준 소녀팬들이 팬레터를 보내기도 했었는데 모두 군대를 다녀온 후 읽어야 했죠(웃음).”

세월이 흘러 그는 제대했고 영화계에서는 ‘병태’를 잊지 않고 있었다. 복학 후 바로 영화 출연제의가 들어온 것. 이라는 영화였는데 이번에도 그는 바로 OK사인을 보냈다. 제대 후 복학하기 전까지의 시간 동안 영화를 찍으면 좋은 경험이 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영화에서 그는 탤런트 원미경과 호흡을 맞췄다.

“영화 촬영 후 복학을 했어요. 그리고 영화와의 인연을 끊어버렸죠. 영화사에서 계속 출연제의가 들어왔지만 만약 영화를 더 찍으면 완전히 배우의 길로 들어설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영화는 취미 삼아, 재미 삼아 했던 것일 뿐 제 인생의 목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함께 영화작업을 했던 사람들과 꾸준히 연락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를 영화배우로 만들어준 하길중 감독은 운명의 장난인지, 그가 군에 입대하는 날 세상을 떠났고 다른 스태프들이나 배우들과도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다. 그때 만나서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단 한명. 개그맨 전유성씨다.

“유성이형이 아르바이트 삼아 당시에 제 매니저 역할을 했거든요(웃음). 형 덕분에 당시 유명했던 사람들은 다 만나보았죠. 누구 앞에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형의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형이 개그계의 대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형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배우 (왼쪽)한진희와 (오른쪽)손정환



 
아이들 앞에서 브레이크 댄스도 추는 친구 같은 아빠

 
어쨌든 그는 은막을 떠난 후 영화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렸다. 그리고 복학 후 우연히 들은 ‘광고론’ 수업에서 인생의 목표를 찾았다. 응원단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어렴풋이 가졌던 꿈, 광고 기획자로서의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발판을 다지게 된 것이다.

“교수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대학 4년을 다니면서 재미있다고 느낀 유일한 과목이었어요. 그리고 바로 광고회사에 입사원서를 내기 시작했고 당시 광고업계 2위를 달리던 오리콤에 입사하게 됐죠.”

이렇게 그는 오리콤에서 광고기획일을 시작한 후 금강기획을 거쳐 현재 다이아몬드 베이츠 코리아에 들어오게 된 것. 오리콤에서는 그만의 ‘영자’ 김선주씨를 만나 지난 87년 결혼했다. 아내가 다섯살 어리지만 항상 친구처럼 지낸다고.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인 딸 유선이와 초등학교 6학년 아들 석현이를 두고 있다.

“아내는 물론 아이들과도 친구처럼 지내요. 프로게이머가 꿈인 아들하고는 스타크래프트 등 인터넷 게임을 자주 하는데 항상 제가 지죠. 또 아이들과 텔레비전 보는 것도 무척 좋아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저는 젊은 문화에 대해 거부감이 없어요. 보통 제 또래들 보면 방송에서 들을 노래가 없다고 투덜대곤 하는데 저는 참 재미있거든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god는 저도 참 좋아해요. 어쩔 때는 아이들 앞에서 브레이크 댄스도 춰요. 딸이 제발 그러지 말라고 웃으며 말릴 정도죠. 이렇게 말이 통해서 그런지 아이들도 저와 대화하는 것을 즐겨요. 물론 저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웃음).”



 
또 아이들을 통해서 일에 대한 도움을 받기도 한다. 광고회사에 있으니 자연히 요즘 어떤 연예인이 뜨는지 관심을 가진다는 그는 실제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광고모델을 정한 적도 있다고 한다.

요즘은 워낙 바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마냥 아쉽다는 손정환씨. 매일 밤늦게 들어가고 주말에도 일을 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식구들 얼굴을 못 본 적도 많다고. 그래서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요일 오전에는 가족과 함께 가까운 산으로 등산을 간다. 아이들은 힘들다고 싫어하는 눈치지만 등산을 가는 이유는 매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참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또 경쟁이 치열한 광고시장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도 산꼭대기에 올라 산 아래에 펼치진 서울 전경을 보며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정말 많이 받아요. 한치의 낙오도 허용하지 않는 곳이니까요. 보통 하나의 물량에 4, 5개의 광고 회사들이 경쟁을 하거든요. 사실 수학적으로 따지면 5번에 1번 이기면 맞는 거잖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다 이겨야 해요.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죠. 광고를 제대로, 재미있게 하려면 정신력과 체력도 중요하지만 스트레스와 중압감도 즐길 수 있는 타고난 기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악바리’이기도 한 그는 영어를 마스터하기 위해 시작한 영어메모를 지금도 하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연세어학원에서 하루 2시간반씩 영어회화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그의 토익점수는 9백점대로 최상위권에 속한다.

앞으로 여력이 될 때까지 광고를 계속하고 싶다는 손정환씨. ‘병태’와 같은 순수함과 열정, 그리고 광고에 관한 한 철저한 프로의식과 악바리 근성을 가진 그를 보니 ‘부자 되세요’ 이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그의 또 다른 광고를 빨리 만날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출처:엠파스의 now and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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