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여덟살 인생

이바구아지매 2008. 1. 4. 19:39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내가 국민학교에 막 가려고 할 때일이다.

우리집 앞에는 일제시대부터 지서가 있었다.(아주 오래 된 지서)

그 지서에 와리다 순경이  지서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와리다 순경은 왜  와리다 순경인지는 어른이 된 지금도 모른다.

이제는 물어 볼 필요가 없어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월이란 것이 참 뜬금 없다.

내가 와리다 순경을 기억하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어젯밤 꿈속에서

와리다 순경의 아들을 보았다.

 

와리다 순경은 우리 아버지랑 동갑이어서  늘 아버지랑 우리집에서

한 잔 꺾는 친구사이였다.

"총무계장 술 한잔 받으오우다"

"와리다 순경 한 잔 꿀꺽 하시오"

"내레 또 한 잔 꺽으면 업무에 지장 많지비"

"그럼 내가 봐 줄테니 걱정마소"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우리 총무계장 노래 실력은 알아줘야 해

그 실력으로 일본서 공부할 때 밤무대에서 앵콜좀 마이 받았지에이요?"

"햐 그 때가 좋았지 오오사카의 밤 풍경은 내 잊질 못하지"

"글치글치 내도 오오사카 가 봤지비"

"그 언젠가 현해탄에서 윤심덕이가 뛰어 내려서  죽고 난 뒤 히트한 노래

그거 한 번 불러 보소 '사의 찬미' 말이오우다"

"그래 내 한 번 불러 보지요 광막한 광야를 달리던 인생아~"

"어 정말 잘해요 총무계장 근데 와 가수가 아니 됐지비?"

"딴따라라고 못하게 했지요 외동아들이 내 마음대로 무얼 할 수 있었겠소

고작 대판상고 졸업하고 고향와서 면서기 하는 신세가 된거요"

"아 그랑께 날 만냈지비 한 잔 쭉 자자자"

"술이 술을 먹고 허허허"

"갑장 , 우리 아들하고 갑장집 주야하고 나중에 커모 혼인시킵시다

괘안소?"

"허허허 좋소 사돈~"

이렇게 술석잔에 두 갑장은 아들,딸을 핑계삼아 사돈을 맺자 하였다.

그리고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그냥 우리집에서 두 갑장이 널부러져 잠이 드는 건 예사였다.

와리다 순경의 외동 아들은 빼빼마르고 얼굴이 하얗고 예뻤다.

나랑 동갑인 그 아들은 날만 새면 우리집에 와서 나랑 놀았다.

소꿉놀이를 하면서 가만 생각해 보니 그 애는 총싸움, 새총놀이 축구차기등

남자들이 하는 놀이는 하지 않았다.

항상 깨끗한 모습으로  나랑 소꿉놀이를 했다.

그러다가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갔다.

지서사택에 살았는데  우리집에서 겨우 20m 나 되었을까?

그 애 엄마는 지서장의 사모님으로 내가 가면 볼을 만지며  과자도 주고

빵도 쪄 주었다.

참 이상한 건 우리 아버지랑 동갑인데 자식은 어째 나하고 동갑이었는지

그 애 엄마는 젊고 예뻤다.

 

하루는 그 애랑 우리집 마당에서 절구통안에 떡을 만든다며 흙이며 여러가지를 넣어서 범벅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애가 기침을 자꾸만 해댔다.

그러더니 갑자기 코피를 쏟아 내는 것이었다.

놀라서 엄마를 부르고 엄마는 그 애 코피를 닦아 주고 지서사택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도록 우리집에 놀러 오지 않았다.

그 날 새벽에 아버지가 엄마랑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참 와리다 순경은 자식복도 없나 보다 에구 6.25때

아이들과 아내도 잃었다고 하더니  요번 이 자식도 지금 가망이 없는것

같아"

"어짜요 불쌍해서 맨날 허옇더마는 그래가 학교도  못가보고"

"오늘,내일 을 넘기기가 어렵것던데"

"오늘 들여다 봤소?"

"참 죽으모 우짤끼요?"

"애기장을 해서 우리산에 묻어야지 그러나저러나 와리다 순경 자식복도

없다 참 안되었제  폐병아이가 아가 하얀기 귀하게 커는 자식이 그렇다"

"당신은 뭐 귀하게 안 컸나 아들 하나라고 맨날 어무이가 치마폭에 싸서 키워가

우리 오빠가 학교 마치고 오면 당신 못살게 굴었다고 혼을 냈다더만요"

"허허 무슨 소리..."

 

 다음 날 아침

"내 지서에 일찍 가 보고 오께 "

하고 아버지가 아침일찍 가셨다 금방  오셨다.

"아들이 고마 죽었더라"

'야 우짜것노 불쌍해서..."

"내 산에  묻어 주고 오께 "

와리다 순경 아들은  그렇게 죽었다.

우리집 열녀천산에 추운 겨울에 묻혔다. 요맘때...

애기장이라 하여 항아리를 사용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산에는 여우가 살아서 그렇게 묻지 않으면 흙무덤을 파서 시체를

갉아 먹는다고 하였다.

 

난 항상 같이 놀던 아이가  죽자 며칠 기분이 참 이상했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에 와리다 순경은 다른곳으로 가버렸다.

 

어젯밤 꿈속에는 8살 나이의 그 모습대로 하얀 얼굴로 서 있었다.

우리집 마당에서 ...아무런 말도 없이...

 

가끔은 이런 일도 생기나 보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 이렇게 되살아나기도 한다.  지금 그 산 비탈은  응달이라

해도 잘 들지 않는데 혹 누운 자리가 춥다는 뜻인지...

 

내일은 엄마한테 꿈 이야길 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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