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뱃길...

밤배

이바구아지매 2008. 1. 2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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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이었다.

 

양훈이오빠가 중학교 1학년이었고  ,나는 국민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맞았다.

 

먼지 풀풀나는  신작로를 따라  쨍쨍거리는 땡볕을 머리에 이고  열심히 걸어다녔던  학교길

 

그리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 선생님께서는  몇가지 당부의 말씀을 하시며

 

 " 통지표는 부모니께 꼭 보여 드려야 한다 .

 

일기는 미루지 말고 그날그날 꼭 써야 하고

 

예습, 복습도  열심히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개학 날  만나자 "

 

라며 선생님께서  주신 생활통지표를 받아 들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양훈이 오빠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통지표엔, 여전히  수,수,수,수 몽땅 수를 받아 왔다.

 

나는 미,미,미, 미, 우,우,  양...

 

 한 학기 성적이 같은 형제인데도 이렇게 달랐다.

 

"가시나  바보 ,  국민학교 공부가 뭐가 어렵노, 그정도는 올백 받고, 올수를 받아야지 성적표가 그기 머꼬...

 

아이고 부끄러워라 니 내 동생 맞나? 명주 니  인자  아버지한테 맞아 죽을끼다"

 

이렇게 말하기가  일쑤였다.

 

2학년   여름방학에도  어김없이 오빠는 의기양양하여 동네가 시작되는 

 

 다리 입구 신작로에서  떡하니  버티고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오빠를 먼저 본 나는  얼른 샛길로  내려서서  논길로  납짝 엎드려  강가로 기어갔다.

 

 논둑사이로  엎드리면 제아무리 잘난 양훈이오빠도  단박에 찾지 못했다.

 

  찰랑대는 벼이삭의 물결이 아무일도 없는것처럼 일렁이면 감쪽같았다.

 

"우짜노 이 성적표 들고   집에 가면 바로 죽음인데 자야,  우리 집에

 

 가지 말고 꽃밭덤붕에 목욕하러 가자 응"

 

"그래  우리 더븐데 목욕하고 집에 가자  "

 

자야,혜야,순아, 화야랑 쪼무래기들이   냅다 달렸다.

 

논둑길로 달려서 금방 꽃방덤붕에 도착하고  그리고 통지표를 강변의 조약돌 몇개로   눌러 놓고

 

옷을   입은채로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나는 이웃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 그리고

 

자야 아버지처럼 우리아버지가 까막눈이었으면, 혜야 아버지처럼 서울에 계셨으면, 순아아버지처럼

 

눈이 잘 안 보였으면, 화야아버지처럼 공부에는  통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면 늘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아버지께서는  못난이 막내딸의  성적을  언제나  욕심을 부리시는지 ...

 

 오빠들은 또 여동생의   통지표를 보고   못잡아 먹어  안달하는지 ...

 

그깟 통지표의 성적이  뭐길래...

 

그 날  나는 어둠이 내리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채 물속에  둥둥 떠 있다 물 밖으로

 

나왔다 들어갔다를 끝없이 반복했다.

 

. 친구들은 한 동안 물장구를 치다가  파란 입술이 되어 파르르 떨더니  춥다며

 

물밖으로 나와 엉터리인 통지표를 들고서도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아버지와 ,오빠가 무서워서

 

 물귀신이 나올  시간에도  강가를 떠나지 못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가시나 성적이  또  엉망이제? 너 혼 좀 나야제 그래가  안 된다"

 

그날 엄마는  화가 나서 큰소리를 내지르며  강가로 날 찾아 오셨다.

 

"가시나야, 물귀신 나올 때가 되었는데 뭐하노  쎄기 집에 가자 

 

 뭘 잘했다고  쓸데없는 고집만 세어가지고 ..."

 

 

어둠이 깔리는 시간에 통지표를 들고 야단맞을 것이 무서워서 미리부터 겁먹고  훌쩍거리며

 

엄마를 따라 집으로 갔다.

 

그날 난 저녁밥도  굶은채   문지방에 서서 두 팔을 하늘로  향해  쭉 뻗은채 이렇게 외쳤다

 

"다음부터 공부 잘 하겠습니다, 다음부터 공부 잘 하겠습니다"

 

이렇게 성적표가 좋지 않아서 받는  벌로 백번을 외쳐야 했다.

 

성적이 나 보다 더 엉망인 언니도  옆에서 같이 벌을 섰다,

 

그래도 나는 다음부터 공부 잘 하겠습니다 라고  정신 똑 바로 차려  한번도   틀리지 않고 외쳤지만

 

언니는 바보 같이 자꾸만

 

"다음부터 공부 못하겠습니다"

 

 

 

하고 엉터리로  말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외치는  고생을 반복해야했다.

 

벌을 서는 와중에도  그런 언니를 힐끗거리며 쳐다보니,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언니가 참 딱해보였다.

 

양훈이 오빠는 이 때 두여동생의  벌세우기를 즐기는 것 같았다.

 

공부가 도대체 뭐길래 ,,  밤낮 우릴 골탕먹이지?  그리고 분명 오빠들은

 

태어날 때 부터 우수한 형질을 만들어 내는 염색체를 구성하는  유전자(DNA))를 타고나서  머리가 좋았고  

 

우리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와 언니가  공부를 못하는건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몰랐다 ?

 

이런 주장을  아버지, 엄머니께  당당하게 우기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  속상했다.

 

그날 밤, 늦도록 팔이 끊어져 나갈만큼 아프게  벌을 섰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언니와 내게

 

"아직 철들지 않아서 공부가 무엇인지 잘몰라서 그렇다 내일부터 책상에 앉아서 아버지, 그리고  오빠한테 착실히

 

배우도록,   공부란,  기초를 잃어버리면 진도를  따라가지도 못하게 되고 흥미를 잃게 된다.

 

공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나침반이 되는 것이란다 너희들이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증거가 되어줄것이야 ?"

 

다음 날은 햇살이 따끔거리는 오후까지  죽으라고 책상에 붙어 앉아서 공부를 했다.

 

(더워서 땀이 삐질삐질 나는데도 죄인처럼...)

 

더운 여름날에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알지도  못한채 ...

 

"명주(어릴 때 이름 호적에 올리지 못한)야, 양훈이 오빠하고 부산에 가거라  문표 오빠가 니 데리고 부산

 

 오라고 연락이 왔다 방학동안 부산에 가서  오빠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하고 엄마가 갑자기 부산갈  준비를 서두르라고 하셨다.

 

이미 해는 늬엿늬엿  서산으로 지는데  급하게 준비를 하고 양훈이오빠랑 부산 가는 밤배를 탔다.

 

어둠이 내리는  밤배를 타고  일찍 나온 별과 함께 바닷길을 달렸다.

 

 

 

 

 

"명주야, 너도  공부 잘 할 수 있어 오빠가 알기 쉽게 가르쳐 줄게,

 

 오빠도 처음부터 공부가 쉬웠던 것은 아니야  하지만

 

날마다 예습과 복습을  열심히 했지 . 

 

그리고  독서도 많이 하고 , 그랬더니   공부가 점점  재미있어지더라.

 

우리가 위인이라고 부르는   헬렌 캘러는 말이야  

 

세상을 볼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작가겸 사회사업가가 되었잖아

 

물론  설리번 선생님께서 언제나 헬렌 캘러의 곁에서 눈이 되어주었지만 말이다 ..."

 

양훈이 오빠는 또

 

설리반 선생님이  헬렌 켈러에게 늘 들려주었다는 

 

 말을 책을 읽고   기억했다가  내게도 들려 주었다.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다. 네가 원하는 것은


성취하지 못할지라도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을 얻게 되리라.


시작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설리반>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그 날  부산으로 가는 밤배를 타고  난간에 기대선채 오빠가 들려주었던 헬렌 캘러이야기는

 

밤하늘을 수 놓은  별처럼 기억속으로 들어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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