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길 위에서...

이바구아지매 2008. 1. 29. 20:06

 

 

 오후 3시경부터 걷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를 내며 꼬불거리는 시골길을 걸었다.

혼자서 걸어가면   내 발자국 소리는 둔탁한 큰 소리를 내며

 머슴같이  따라 온다. 

 오랫만에 정다운 시골길을 겨울을 느끼며 걸으니 싸아한  찬 바람 속이지만

 가슴까지 시원한 산소로 가득차서 기분이 맑고 상쾌하다.

 

 신작로에서 내리막길로 가속도가 붙어서 빠른 걸음걸이로  달려  내려오다시피 내지르다가 평평한 길에 저절로 멈춰서  편하게 멈출  찰라엔 이미 돌돌돌 냇물소리가 나는 작은 샛강이 나타나고...

 

   갈아 엎은 논배미들은 푸석푸석한  겨울을 가득 담고 누워 있다.

파르스름한 북새풀이 얼깃슬깃 논바닥에  피어 있는 듯 멀리로 눈에 들어오고. 동넷길로 접어드니 이미 여러집 뒤곁의 굴뚝에서 이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겨울 해 짧아서 일찍 서둘러 저녁밥을  먹고 밤에는 마슬 갈 참인 아낙네들이

겨울해를 깔보고 미리 서둘러 군불을 때는지?...

 

산비탈이 동네길에 내려 앉아 산과 동네길의 경계는 아주 작은 산길같은

좁은 소로,  폭도 무지 좁고 길도 꼬불거려  눈 들어 먼길 바라보면 지렁이와 뱀이 기어가는 모습이다.

 시골길은 자연속의 가장 자연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뻗어내린  소나무가 솔향을 풍기고 전나무가지엔 까치집이  나뭇가지를 착착 포개 기가 막힌 멋진 집을 지어 놓았다.

까치는 최고의 예술가다 라고 감탄하며

 까슬해진  활엽수잎들이 낙엽되어 미처 날아가지 못하고 나뭇가지 끝에 마지막 잎새처럼 누런빛으로, 바람따라 날아갈 채비를 마치고 숨죽이며 달려 있고

 

치렁하고  바싹  말라 까칠해진 망게넝쿨에  햇살의 영양분을 옴팡지게 받아 먹고  잘 익어   물기 다 날려버리고  가벼운 솜털마냥 날아갈  폼을 한 망게가  가득달려 있었다. 빨간색으로...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아서  고스란히 익은채 달려 있는 망게녀석들, 더 가벼워지면 바람따라  함께 날아갈지 모르겠다.

단단하게 잘 다져진 흙길이 시작되는 길 중간중간엔 물웅덩이가

 질퍽이고 논바닥 넓은 곳엔

 심지도 않은 억새풀이 가득했다. 향로성냥 으로 한번  쫘악 그어 불부치면  순식간에 확  붙어서 불꽃바다를 이룰 것 같다.

회색이 가득한 겨울 풍경을 기억하며  혼자서 걸어가는 나도 회색빛 속에 갇혀길이 되었다. 

 

한 참 걷다가 돌아보니  지렁이,뱀처럼 꼬불거린 길을   걸은  흔적이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마치 내 인생의 걸어 온 길, 걸어갈 길도 이런 모양이겠지

턱턱 받치는 돌덩이,  길섶에 일찍 모습 들어내고  발발 떠는 쑥이며  들풀들이 추워서 땅에 바싹 엎드려  오그리며 바람을 피하는 모습이 또한 예사롭지 않다.

 

마늘밭에 쑥쑥 자라는 마늘도 무지 추워뵌다.

가장 지혜롭다는 인간인 나 혼자 두둑하게 옷 입고 지나감이 들에 앉아 겨울바람을 고스란히 맞는

식물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든다.

 겨울들판은 맨몸으로 바람과 살얼음에 신음하는 소리가 나는 듯...

 

다시 인가가 나타나고 대숲울타리에서 사각거리는 댓잎소리와 컹컹 대며 낯선 사람이 왔다는  경계의 목소리로  크게 목놓아 짖는 똥개가 대숲속에서 허덕댄다. 어찌나 경계 를 하는지 대숲사이로 주둥이만 튀어나와 꼭 시커먼 방망이 같다. 똥개는 더 나부대더니 이번엔 귀 한쪽이 나오고  다시 후비고 비벼대서 다리두개가 나오더니 이내 돌아서서 오줌을 갈긴다. 재수 나쁘게 똥개의 수돗물 소리를 실컷  들었다. 오그리며 엉덩이를 내려앉히더니 지나가는  내게 순전히 용심을 부렸다.

 개는 주인에게 충성을 이렇게 한다.

 

너른 들길 차분히 걸어가니 언제 갈꼬 한숨내쉬며 걷던 길이 쑥쑥 굴어

어느새 내 친구 미금이네 집앞 골목에  멈칫 섰다.

예쁘고 공부잘 하던 외동딸 미금이는 부모가 싫다는  이웃집 오빠랑  좋아서 연애를 하여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도망가  교회에서 눈물바람 날리며 결혼을 한 친구다   축복받지 못한 결혼이어서 그런지 아직도 힘들어하며 살고 있다.  꼿꼿한 성격의 아버지는 아직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안타까운 친구 네 집 앞

미금이는  없어도  여전히 동백꽃이 가득 피어 있고 이름모르는 꽃들도 피어 정원이 예뻤다.

친구가  없어서 그런지 고요속에  겨울잠을 자는 모습이 내다 보이는

 집 안 풍경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언덕길을 오르려니  지게를 진 아저씨가 해거름에 들길을 가고 있었다. 어디로 무슨 볼일을 보러 가시는지, 지게본지도 참으로 오랫만이다.

이런저런 풍경을 보며 도착하여  멈춰 선 이장님댁 대문사이로 삽살개가 나부댄다.

" 누가 왔나?"

"안녕하세요 이장님  저 도장 좀 찍어달라고 왔습니다."

"어 이게 누고 총무계장 딸아이가 어서 오너라"

아버지는 이미 먼길 떠나셨는데 아직도 사람들은 그리 부른다.

 

어느새  길에 어둠이 가득 내렸다.

저 길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이번에는  밤길을 .또 다른  느낌으로   걸어 볼 일이다. 

 

겨울해는 정말 숏다리다 별 다른 잔망도 부리지 않았는데  금새  초저녁 별이 나와  별빛을 내려준다.

 

길위에서 저녁  8시까지   걸어보았다. 칼칼한 겨울  바람 맞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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