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향 수

이바구아지매 2008. 2. 5.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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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예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빙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잊힐리야.

 

 

지줄대는:낮은 목소리로 자꾸 지껄이는

해설피:해가 설핏 기울어 그 빛이 약해진 모양

짚벼개:볏짚으로 만든 베개

함추름:함초롱의 변형. 담뿍 젖어 축촉하게

안해:아내의 고어

성근:사이가 뜬 혹은 섞여 있는

서리까마귀: 찬 서리가 내리는 가을철의 까마귀

우지짖고:울어 지저귀고

 

 

 

 * 이 시는 정지용님의  "향수" 입니다.

고향에 못 가는 , 고향이 너무 멀리 있는 분들께

눈 감고 그리는 시간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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