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새로운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찾아 간
김영삼 전 대통령생가 ~여기는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1383-3번지
대계마을 바닷가 ~아마도 이 바닷가에서 어린 소년 김영삼은 대통령의 꿈을
키우지 않았을까? 집에서 좇아 나와 신작로길 건너서 바닷가로 달렸을 소년
김영삼
대통령생가를 들어가는 입구 ~새로 개축하기 전에는 이런 모양이 아니었다.
계단을 다시 만든 모습으로 의미가 있는 듯
김홍조옹과 1960년 5월 24일 밤 9시경에 공비가 쏜 총에 쓰러져 돌아가신 고 박부련여사의 사진
경남중학교 3학년 학생시절(왼쪽)장목소학교시절(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마당 왼쪽에 서 있는 흉상~ 새로 개축하기전에는 이 자리에
아랫채가 있던 곳이다.
민주화를 위해 단식에 들어간 당시의 모습 23일간의 단식을 한 민주화의 굳은의지...이 땅에 민주주의란 이름을 싹 틔운 분이다.
로이터통신이 긴급 타전한 뉴스 87년 6월28일 민주항쟁을 이끌다가 닭장차에
강제로 끌려 실리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서울대학교 4학년, 이화여자대학교3학년 학생이었던
청년김영삼,처녀손명순~ 두 사람이 결혼하여 신접살림을 이곳 대계마을
3년정도 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의 장목소학교 졸업사진 ~가운데 안경을 끼고 손을 모아 쥐고
다리를 벌려 앉은 사람이 아마도 담임선생 '세도야마'(일본인 선생으로 유명한 일화를 남긴 급여이야기... 대통령이 된 직후에 새도야마선생을 찾아 일본에 수소문을 해 보았으나 1953년에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접함 )선생이 이닌가 싶다.장교가 되고 싶었지만 키가 작아서 못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대도무문~올바르게 가는 길에 누가 가로 막을 쏘냐.
입구에서 오른쪽에 있는 절구통
부산에서 온 교사들 ~이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린 분은 바로 이분이라고 이야기하며 추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먼 길 온 것에 의미를 두며
사진도 찍고 방명록에 서명도 하고.
뒷켯에 있는 몽돌우물 ~ 전에는 이 우물을 못 본 것 같은데 멋진 우물이 있어 무지 반가웠다. 대계마을 바다에 몽돌이 가득한데 그 몽돌로 우물을
만들어서 독특하고 멋지다. 물도 맑고 우물가의 정겨움도 느껴보고
아이들이 물에 비친 모습을 보며 좋아하였다.
우물속에 하늘이 떠 있다.
윤기나는 장독대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열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대통령의 생가 예전엔 대통령의
조카가 살고 있기도 하였다.
현재는 시에서 관리한다.
오른쪽 돌담길 중간쯤에 난 나무대문 ,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 밭고랑사이엔
겨울초가 파릇하게 가득했다. 저 바다 건너로 봄이 오고 있는 듯.
대통령생가의 오른쪽에 있는 아랫채의 동쪽벽에 도로명주소가 붙어 있다.
대계란 ~닭의 대가리란 뜻
4짝 문 인상적이었다. 친정집에도 문이 이런 모습이다.
대통령의 흉상 ~정말 잘 만들었다. 모습이 똑 같다. 청년김영삼의 모습같다.
생가의 본채
동네의 어느 집 두름밭에 매여 있던 암소 , 눈이 끔뻑끔뻑 두름밭에 매여서 짚을 아그작아그작 씹기도 하고, 말린 고구마줄기를 씹기도 하고
방안 풍경 왼쪽 천정밑에 걸린 두 분의 영정사진은 대통령의 할아버지,할머니, 오른쪽의 사진은 아버지,어머니 그리고 방안 풍경.
이 장농은 비극의 순간을 기억한채 유물로 전시되어 있다.
1960년5월24일 밤9시경 공비가 쏜 총탄에 어머니 박부련여사가 돌아가셨다.그 당시의 일을 연세 지긋한 분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신다.
"00아이가 니가 왜 이라노?"
박 부련여사가 외친 외마디 그 소리에 총알이 튕겨나가서 장농과 대통령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참으로 후덕한 분으로 멸치어장집 안주인은 인근주민들에게 덕을 배풀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뜻밖의 죽음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신 김영삼 대통령의 성적표
책상 그리고 자료가 될 만한 좋은책들
고 박부련 여사가 쓰신 경대
대통령의 할아버지, 할머니
버스는 이 곳에 선다.
바닷가로 내려 가다 만난 보리밭 ,보리가 파릇파릇 자라서 봄이 머지않은 것을
느길 수 있었다.
몽돌이 어찌나 고운지 춥지만 않다면 누워서 딩굴고 싶었다.
이 바다는 대구가 많이 잡히는 곳이다.
올 겨울에 정말 질 좋고 맛난 대구가 많이 잡혔다.
멸치도 많이 잡힌다. 질 좋은 이곳 멸치는 칼슘왕으로 통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부친께서는 멸치어장을 하셨다.
일제시대에도 이곳 멸치는 알아주는 작은 생선으로 오랫동안
멸치와 대구는 유명세를 타기도 한 바다의 보고다.
훗날 멸치는 '민주멸치'란 이름으로 불려질만큼 유명한 멸치가 바로 이곳
대계마을 바다에서 맛을 낸다.
그물을 손질하는 할아버지 곧 바다로 나갈것이라고 하셨다.
설도 쇠고 이젠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것이라며 허전한 둣모습을
선물하셨다.
나라는 '거제도' 를 말한다 ㅎㅎ
"모리오빠, 맞나요???"
'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승포에서 보내는 편지 (0) | 2008.02.10 |
---|---|
봄이 오는 소리 (0) | 2008.02.10 |
설, 그 고운 빛깔 (0) | 2008.02.09 |
고 향 역 (0) | 2008.02.06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0) | 2008.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