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아, 고구려

이바구아지매 2008. 7. 28. 20:09

 중국의 통화시에 비가 내린다. 우리가 머문  호텔이 보인다. 바라 보이는  멋진 건물이  동방가일호텔이며 다리는 옥황산대교라고 부른다.

밤 경치가 환상적인 곳이다.

 집안시로 가는 도중에  잠시 내려서  볼일보러 가고  풍경도 구경한다. 이곳에는 꿀이 흔하고 싸서 설탕보다 꿀값이 더 싸다고 한다.

 우리 동포들이 사는 모습

 곳곳에 붉은 벽돌공장이 보인다. 이 돌로 집을 짓는 것이다. 똑 같이 생긴 공장에서 찍어 낸 것 같은  집들이 지어진다.

 길림성 집안시의  들판에  벼가 푸르게 자라고 있다.

 남자 화장실  저 뒤로 돌아가면 여자화장실이 나온다.  우리 일행중 개구장이 아저씨(북파공작원)는 가이드가 볼 일 보는 생생한 모습을 찍어서

날 보여 주어 나는  너무했다고 그러지 말라고 했다. 장난이 지나치다고 ㅎㅎ착한 노인걸 가이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벌을 치는 통들...주로 아카시아 꿀이란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북한의 만포시로 가는 철길... 이 길로  가는 열차를 꼭 타 보라고  서 길수 교수님은 고구려 유적 답사기에

적어 놓았다. 달리는 열차에서 지나가는 시골풍경을 보면 어린시절 우리의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라고...

 내가 공부한 책 ,  고구려를 이해하려면 많은 자료가 필요해서 백방으로 현지에서 수소문하는 모습에 교수님이 흐뭇하게 웃으며

많은 도움을 주셨다.  이번  여행에 함께 했던  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걸핏하면 나타나는 공안들... 슬프다. 고구려는 엄연히 조상들의 땅인데  지금은 마음대로 갈 수가 없다. 이런 분통터질...

 고구려의 후예,  그녀는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 어머니 다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말하며 고구려의 자긍심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보고 난 소리없이 마음속에 눈물이 흘렀다. 너무도 감동해서 그리고 아직 고구려의 후손들이 모국의 형제자매라고

 반가워 해 주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찬란한 문화가 꽃 피웠던 국내성(집안)

 타이머신을 타고 과거의 어느시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아, 장군총 ...내 팔을 꼬집어 본다. 정말로 내가 고구려 땅을 밟고 서 있는 게 분명한가?

 도굴꾼들이 마구 뒤집어 벌집처럼 쑤셔버린 왕릉 ...광개토대왕릉...어떻게 이렇게 관리하는지 속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장군총 , 동양의 피라미드 , 장수왕릉 , 그 앞에 내가 섰다.  장군총의  내모 난 구멍으로 내다 보는 사람들은 중국공안들.

참 버릇도 없는 것들, 왕의 릉에 멋대로 들어가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아 답답하다. 그들이 주인행세를 한다.  두 눈을 부릅 뜨고

의심하는 눈초리를 하고 저들은  함부로 하고...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역시 도굴꾼들이 돌을 들어 내고 도굴한 구멍이

현재 저런 모습이다.

 멀리로 보이는 연기나는 곳이 또한 북한땅이다. 북한의 구리제련공장인데  국경너머 중국으로  오염물질이 넘어오는 것을  막아보려고

굴뚝을 높게했다.

 

 광개토대왕비  안으로 들어가서도  중국인들의 험악한 눈초리를 감내하면서 꼭 죄 지은 사람마냥  가이드의 설명만 듣고

헐레벌떡 나와야 했다.  광개토대왕의 혼령이 날아다닌다면 얼마나 슬퍼할까? 우리는 마음속으로 울었다.

말은 안했지만 역사란 이렇게 흘러 가고 있다. 얼마쯤만 더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후손들은 고구려를 영영 잊어버릴지도

모를일이다. 역사의식을 고취시켜 주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울었다. 마음으로, 너무 슬픈 현실앞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우리는 어쩌면 봄마저도 빼앗겼는지 모른다.

 어린 가람이도 침묵한다.

장수왕릉 옆에 있는 '딸린무덤', 마치 고인돌 같기도 하다 딸린무덤은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고 한다

장수왕릉의 5기 딸림무덤 중 1기이다 도굴당한채  파괴되어 있다

 

2008년7월21일 아침 04시에 눈을 사정없이 부벼 떴다.

아니 그냥 눈을  손가락으로 벌렸다고 해야 옳겠다.

이틀 밤을  머문  통화시의  밤 풍경이 무지 아름다웠다고 기억하며 계획에 없던  우리만의

멋진 데이트를 즐기려 나갔다. 장마기간이라 그런지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렸다. 주룩주룩 

남편과 어제 약속한대로 날씨랑은 상관없이  호텔에서 바라다 보이는 화려한 조명으로

 우릴 유혹했던  옥황산에  올랐다. 비,우산,안개와 함께 이국땅에서...

어제 아침에도 거닐던 옥황산대교 (옥황산을 오르는 길목의  야경이 빼어난 다리)

 이미 비 오는 날 산에 오르는 재미도  몸에 배여서  디카로 찍찍대면서 발로 비를 툭툭 차며

 중국인들은 비 오는 풍경을 어떻게 스캐치하는지 담아 보니  별별 풍경이 다 쏟아져 내

디카속으로 저장된다.

이른 아침 빨간 혹은 파란색의 우의를 입고 자전거 앞에 달린 리어카에  야채를 가득 싣고 낑낑대며 부부가 같이 자전거 패달을 밟아  밀고 가는 모습도 흥미롭다.

리어카를 앞에 달고  가는 이유가 궁금하여 남편한테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도둑질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균형감각이 불안 해 보이는 세개의 바퀴로 굴러 가는 삼륜차들이 빗물을 튀기며 달려간다.  비를 맞으며 산책도 하고 중국을 느껴보는것도  이번 여행을 두배로 멋지게 보내는 우리부부만의  알뜰 실속형이 되지 않을까.

 

산에는 나무계단으로 넓직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산에 올랐다.

미궁,구룡정, 그리고 사슴이 가득한 울타리속도 보고  둘러보니 푯말에 '옥황산 공원'이라고 적혀 있다

 입장료가  8원이라고 적힌  입구에서 중국어를 대충 끼워 맞춰 읽어 보고 있으니 아주

작은 창문이  갑자기  왈칵 열리더니 8원을 달라고 요구한다.

이른시간에 잠깐  산에  올라보겠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웬 황당시츄에이션?

30cm가량의 작은 문속으로   내의만 입고  덥수룩한  머리의 노파가 고개를 내밀며

8원을  외치는 통에 중국사람들의  상술에 혀를 내두른다.   노파는 돈번다고   잠도 안자나?

 그리고 이런 멋진 공원에  깔끔하지 못한 모습으로  노파가 외국관광객을 맞는건

 보기에도 좀  거슬린다? 우리네 정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쨋거나 쌀라거리며  서로 동문서답을 한다. 말이 안통하니  남편이 제법  유창한

영어로  우린 그냥 산에 올라왔을뿐이다. 라고  쏘아주니 노파가 기가 죽는지 문을 싹

닫아 버린다. 눈치하나는 빨라가지고...ㅋㅋㅋ

순간 사진을 못 찍은게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닫힌 문으로 쏘아주었다. 다음부터 손님받을 준비부터 하고 돈을 요구하셔  그랬다는...($%^&)

아홉마리 용이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구룡정에 도착하니 체조인지 쿵후인지 하여튼

중국 전통무술로  몸을 단련하던 아저씨가 날더러 타이완에서 왔냐며 반겨 주고

기꺼이 사진속의 모델도 되어 주니 기분이 다시 업 된다.

1시간정도 산에서  비를  맞으며  통화시를 내려 다 봤다.  넓고 넓은 중국도 비를 

고스란히 맞는구나.     당나라 시인 두보가 퍼뜩 떠오른다.

'춘야희우('봄날에 내리는 비를 반가워하다)

"좋은비는 그 내릴 시절을 알고 있나니

봄이 되면 내려서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구나~"

 

이른 아침 남들이 자는 틈을 타서 산에도 다녀 오고 우리가   머문 호텔 근처를 돌아도 보고

호텔 부매니저한테 많은 걸 물어보기도 하였는데 그곳에서는 아직 외국관광객을 맞을만큼

영어 실력이 유창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찍 호텔 레스토랑에 들러서 조참권(중국의  아침 식권)을 내고  아침을 먹었다.

 

 

 07시 58분에 길림성의 집안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찬란했던   문화와 대영토를 가졌던 고구려를 느껴 보기 위하여,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우리민족의 자긍심이 되어 준  큰 나라 고구려를 찾아간다..

가면서 차창밖으로 달려 오는 길림성의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디카가 창문에 부딪기도 하고 하마트면 창밖으로 빠뜨릴 뻔도 하고   궁금해서 질문하려고

현지가이드에게 끝 없는 질문을 쏟아내니  같이 차에 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른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같다고 어제는 나를 유심히 지켜 본 분이 부르시더니 한 권의 책을  보라고 주셨다.

'서길수 교수의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라는 책이다.

많은 도움이 될거라고 하시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혹시 학교에 계시는 분이냐고 물어보니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셨다.

밤에는 남편이 밤 새워  책을 읽고  나는  이동하는 차에서 주로 읽었다.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한 때는 고고학을 해 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도 꾼 적이 있었다.

특히 고분군이며 유물 등 옛것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차는 끝없이 달린다. 고구려의 2번째 수도였던 집안으로 가기 위해서  버스로 2시간30분

정도 달려 갔다. 106km를  이시간에 달린 것이다. 이번 여행은 주로 차로 이동하는 여행이어서  3박4일동안 탄 차시간은 우리나라에서  타는 차시간의 3년치에 해당한다는 가이드의 말에  놀란다. 

 

고구려의  땅이 얼마나 넓었는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확인하게 되니 가슴이 넓어지고

뿌듯해 옴을 느낀다. 차창밖으로 다가오는 생전처음 만나 볼 집안시(고구려의 수도 국내성)를

나름대로 알아 본다.

 

집안(Jian),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국내성의 현재 지명이며 길림성 동남쪽에 위치한다.

AD3년경 고구려 제 2대 유리왕이 홀본성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였는데  427년까지 가장 오랜기간

(424년) 수도로서 가장 찬란했던 번성기를 누렸다. 약 2만여개의 고분군과 수많은 유적지가 있다.

광개토대왕비, 태왕릉, 장군총 등 고구려의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하고 있어 찬란했던 고구려의

발자취를 밟아 볼 수 있다 

 

집안시에 들어서자 현지가이드가 차에 오른다.  밝고 명랑하게 웃으며

 '김명애현지가이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우리에게 반갑다고 인사하며 1학년

1반이라고 부르겠다고 한다.

 우리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고구려사를 잘 공부하고 돌아가시길 바란다고 한다.

까무잡잡하고 마른  그녀는 집안시는 온통 무덤도시이며 우리가 여행하는 것은

무덤여행이라고 하였다. 가끔은 웃기는 농담도 톡톡 던진다. 집밖에서  실컷 놀다가

집안으로 들어왔다면서 집안을 강조한다. 집밖이 아니라고...

 똑똑하고 야무지게 설명하는 그녀는 조선족 학교의 과학선생이었단다.

그녀가 집안시의 역사,문화며 생활상을 빠짐없이 설명을 잘 해 주었고 나 또한 열심히 듣고

질문을  종종하니 1학년1반 반장으로 임명 해 주어서  그녀와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이야기 나누며 친해졌다.

차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차창밖으로 거대한 무덤군들이 하나,둘 나타나더니 곧 산봉우리인지,

무덤군이지  구분이 안될정도로 경주에서 본 거대한 무덤군들이 쏙쏙 나타나서 인사를 한다.

현지가이드는 우리에게 어떤 것이 무덤인지 알아맞춰 보라고  자꾸 질문을 던졌다.

차는 곧 도착하고 우리는 내려서  이슬비로 부슬거리는 고구려의 수도 집안시를 밟았다.

이제 광개토대왕도 만나고 그의 아들 장수왕이며 국내성터,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내가 제일먼저 한 일은 바로 땅을 밟아 보고 흙냄새를 맡는 것이다. 바람맛도 느껴보고... 여기가 고구려땅이로구나. 수천년을 고구려의 후예로  살아 온 사람들을  만난다.나와 같은 말을 지금도 쓰고 있고 대한민국을 모국이라고 말하는 동포들을 고구려땅에서 만나서 어깨동무 해 보는 기쁨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소지맘이 풀어 놓는 고구려이야기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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